골프 히스토리 : 골프의 기원과 한국 골프사 속 이슈
골프 히스토리 : 골프의 기원과 한국 골프사 속 이슈
  • 나도혜
  • 승인 2023.06.3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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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를 치다보면 문득 골프는 언제 어떻게 시작된 스포츠인지, 골프룰은  언제 생겨났는지, 최초의 프로골퍼는 누구인지 등 골프 관련 역사에도 궁금증이 생기기 마련이다. 골퍼들의 호기심 해소를 위해 이번호부터 기초상식으로 알아두면 유용한 골프 역사에 대해 연재한다.

 

여러 가지 골프의 기원설

 

골프의 기원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바로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양을 기르던 목동들이 나뭇가지로 돌맹이를 날리던 일종의 민속놀이가 오늘날의 골프로 발전했다는 설이다. 이외에도 네덜란드 지역에서 아이들이 실내에서 즐기던 놀이인 콜프(kolf)가 현재의 골프가 되었다는 설, 로마 제국의 군사들이 스코틀랜드를 정복했을 당시 군사들이 즐기던 놀이가 스코틀랜드 지방에 남아 전해 내려오며 골프가 되었다는 설, 네덜란드에서 오래전부터 전해내려온 구기 종목의 일종인 콜벤(아이스 하키와 비슷한 스포츠)이 14세기 무렵 바다를 건너 스코틀랜드에 전해졌다는 설까지…

 

골프가 영국 귀족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때

 

여러 골프 기원설 중 어떤 것이 정설인지는 그 누구도 확인할 길이 없지만 확실한 것은 골프가 15세기 중엽 스코틀랜드 지방에서 시작되었으며 귀족들이 즐겨하는 스포츠로 발전하면서 골프의 인기가 더욱 높아졌다는 것이다.  

스코틀랜드 귀족들 사이에서 골프의 인기가 뜨거워지면서 활쏘기 훈련이 소홀해지는 사태까지 벌어졌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한때 골프 금지령이 내려진 적도 있었다. 귀족 사회를 휩쓴 골프의 인기는 1834년 윌리엄 4세가 귀족들이 만든 골프장에 ‘R&A(the Royal & Ancient golf club)’라는 이름을 붙여주면서 영국 내의 골프클럽이 통합되는 계기가 됐다.

 

한국 골프의 시작

 

우리나라 최초의 골프장은 바로 1900년경 함경남도 원산항에서 한국 정부 세관 관리를 하던 영국인들이 세관 안에 있는 유목산 중턱에 만든 6홀짜리 골프장이었다. 이는 골프 강국인 이웃 나라 일본보다도 1년을 앞섰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고, 이후 댄트라는 미국인이 1919년 착공을 시작해 지금의 효창공원 자리에 9홀짜리 골프장을 만들었다. 

효창원골프장은 조선시대 정조대왕의 어린 장자였던 문효세자의 묘가 자리했던 곳으로 일제강점기 시절 왕실의 재산을 관리하던 총독부 소속 이왕직이라는 인물에 의해 관리되고 있었다. 효창원골프장은 1917년 남만주철도주식회사(이하 만철)를 위탁 경영할 당시 만철의 주도로 외국인 관광객 유지를 위해 기획되었지만 전 세계를 휩쓸었던 스페인 독감으로 인한 팬데믹 때문에 건설이 지연되기도 했었다. 이처럼 효창원골프장은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1919년 9월에 착공을 시작할 수 있었고, 1921년 6월 1일자로 공식 개장에 성공했다. 

 

효창원골프장을 가장 많이 찾은 사람

 

효창원골프장을 가장 자주 방문한 사람은 누구일까? 효창원골프장을 가장 많이 찾았던 사람은 바로 영친왕이었다. 영친왕은 우리나라에서 골프가 본 궤도에 오르기까지 가장 큰 공헌을 한 인물 중 하나로 대한제국의 마지막 왕위 계승자이기도 하다. 영친왕은 대한제국 최초의 골퍼로 효창원골프장에서 종종 라운드를 즐겼다고 한다. 이후 1927년 서울 청량리 지역에 ‘경성구락부’라는 18홀 코스의 골프클럽이 운영되기도 했다. 

 

서울컨트리클럽의 시작

 

국내에서 골프가 점차 인기를 끌며 부산이나 평양, 대구 등 지방 대도시에도 골프장이 생겨났지만, 이는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끔찍한 시기를 맞아 모두 사라져버렸다. 

이후 해방 이후에 이승만 대통령이 군자리골프클럽 복구를 지시하며 다시 우리나라에도 골프장이 생겼지만 1950년, 골프장을 복구한 지 한 달 만에 6.25 전쟁이 시작되며 국내에서 골프장은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그러다 6.25 전쟁이 휴전에 돌입하면서 전장 6,500야드에 18홀(파72) 골프장인 서울컨트리클럽이 문을 열면서 대중들은 다시 골프를 접할 수 있게 됐다. 이후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에서 골프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면서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유명 프로 선수들이 탄생하기 시작했다.

 

한국 최초의 프로골퍼

 

우리나라 최초의 골프연맹은 1937년 결성된 조선골프연맹이며, 연덕춘은 우리나라 최초의 프로골프 선수로서 1941년 그의 나이 26세에 일본에서 개최된 오픈대회에서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스코틀랜드의 귀족 스포츠에서 시작된 골프는 당시 국내에서도 고위 관료나 부유한 가정에서만 즐길 수 있는 스포츠였지만, 연덕춘의 가정환경은 그리 넉넉지 못했다. 

다만 연덕춘은 군자리코스 주변에서 태어나 성장기를 거쳐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골프를 치는 사람들의 모습을 접할 수 있었고, 17세의 나이에 캐디로 근무하면서 정식으로 골프를 배울 수 있었다. 연덕춘은 1934년, 19세의 나이에 홀로 배를 타고 일본으로 향해 골프를 본격적으로 배우게 되었고, 국내 최초로 프로골퍼 자격을 취득한 뒤 일본 골프 무대에 진출했다. 

일본의 내로라하는 프로골퍼들을 꺾고 연덕춘이 우승을 차지하면서 일제강점기 시절에 겪어온 갖은 수모와 치욕을 조금이나마 설욕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 국내에서는 골프가 일부 부유층들이 누리는 사치성 스포츠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연덕춘의 우승은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했다. 한국프로골프협회(KPGA)는 ‘덕춘상(최저타수상)’을 제정해 대한민국 최초 프로골퍼인 연덕춘을 기리고 있으며, 그가 사용했던 골프클럽은 지난 2012년 등록문화재 제500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힘든 시기에 국민에게 힘을 주었던 스포츠

 

골프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이 변화한 것은 바로 1997년 사상 초유의 국가 부도 사태를 겪었던 IMF 시절 박세리가 세계 무대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부터였다. 박세리는 당시 절망에 빠졌던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존재였고, ‘귀족 스포츠’로 통하던 골프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데 기여하였다.

 

 

GJ 나도혜 이미지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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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귀 2023-07-05 13:28:02
오호 골프역사 효창원이라는 역사속 골프 문회른 오늘 처음알았네요.역시 기자님은 궁금한걸 알려주시네요.
매번 기사 잘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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