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5주년 기념 특별한 만남 - 이규혁
창간 25주년 기념 특별한 만남 - 이규혁
  • 남길우
  • 승인 2014.08.04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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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피드 스케이터로 산다는 것

6번째 올림픽을 끝으로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막상 선수생활을 마감한다 생각하니 아쉬움은 없었나?이제 선수가 아니라고 생각하니 당연히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가 된 후 30년 가까이 계속 스피드 스케이터로서 살아왔으니까.사실 아직 실감이 나지 않을 때가 많다. 밥을 먹다가도 이렇게 조절 안하고 막 먹어도 되나 하는 생각에 빠지기도 하고, 연습을 하러 가야될 거 같기도 하고…….

이를 악물고 달리는 모습이 개인적으로도 정말 감동적이었다. 가슴에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눈물을 흘리신 분들도 많았다고 들었다. 모 방송에서 보니 나이가 어렸을 땐 표정관리가 됐는데, 나이가 드니까 표정관리가 더 안됐다고 말을 해서 웃었다. 올림픽 경기 장면을 나중에 모니터링 했는지 궁금하다. 어떤 생각이 들었는가?잠깐 잠깐 봤다. 표정보다는 스케이트를 타는 자세와 구간 구간 어느 정도 성공과 실패가 있었는지가 눈에 들어왔다.얼음을 밀 때 좋은 느낌 나쁜 느낌이 있는데 이번 시즌에 좀 나쁜 느낌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올림픽 시합 중에 좋은 느낌이 들었고, 대회 초반부 기록이 예상했던 것보다 좋아서 마지막 대회가 덜 아쉬울 수 있었던 것 같다.

올림픽을 6번이나 도전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 24년간 올림픽에 출전한다는 것은 정말 보통 일이 아닌 것 같다. 철저한 자기관리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 같다. 나만의 자기관리 비결이 있다면? 6번 출전에 의미를 많이 두신다. 처음부터 올림픽에 6번 도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못했을 것 같다. 실패를 했기 때문에 다시 도전 할 수 있었고, 그게 비결이라면 비결이다.자기관리 비결은 쉴 수 있는 시간은 쉬고 재충전을 하는 것. 365일 운동에만 전념하면 더 지루해지고 의욕이 줄어드는 것 같다. 내 경우엔 그랬다.

오랜 기간 선수생활을 하면서 중간 중간에 슬럼프도 많았을 것 같다. 가장 힘들었던 때는 언제였나?참가했던 올림픽이 별 소득 없이 끝날 때마다 한 번씩 심하게 앓았다. 슬럼프가 가장 심하게 왔을 때는 대회전 우승후보로 지목됐던 1998년 나가노올림픽이 끝나고 나서였다. 당시 세계 신기록 보유자였는데 예상보다 나쁜 성적으로 경기를 마친데다 부상까지 겹쳐서 많이 방황했다.슬럼프에 빠진 상태에서 출전한 99년 아시안 게임에서는 후배에게 금메달을 내주면서 한동안 더욱 힘들었다. 사실 나는 어려서부터 운동을 열심히 하는 선수는 아니었다. 부모님께서 두 분 다 스케이트 선수 출신이셔서 주변에서도 넌 잘할 수밖에 없다고 치켜세우는 부분도 있었고, 스스로 느끼기에도 타고난 점이 좀 있었다. 내 실력에 대해 의문을 갖지 않았다가 후배한테 지고 나서 큰 자극이 됐다. 나 자신에 대해 좀 더 객관적으로 되돌아볼 수 있었다.  

슬럼프는 어떻게 극복했나?그냥 더 열심히 했던 것 같다. ‘부족하니까 슬럼프가 온 것이고, 노력밖엔 대안이 없다.’고 생각했다.

세계 신기록도 수립하고, 월드컵에서 12번 우승하고, 세계 스프린트 선수권 대회에서도 4번이나 종합우승을 차지하는 등 다른 여러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  유독 올림픽에서만 메달이 없는데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올림픽은 일단 긴장감부터 틀렸다. 올림픽 메달을 따는 방법을 몰랐던 것 같다. 

이규혁에게 올림픽이란?결국엔 올림픽을 제패하지 못하고 선수생활을 마감하며 아쉬움이 남지만, 20년 전에 메달을 땄으면 지금처럼 고마운 마음을 못 느끼고 은퇴를 했을 것 같다. 올림픽은 나를 많이 힘들게도 했지만 많은 가르침을 준 대회다. 

# 빙상계 로열패밀리!

아버님(이익환)이 스피드 스케이팅 국가대표, 어머님(이인숙)이 피겨 스케이팅 선수, 동생(이규현)도 피겨스케이팅 국가대표였던 빙상계 로열패밀리이다. 가족 모두 빙상인이었던 것의 장점과 단점이 궁금하다.  단점은 하나도 없는 것 같고, 장점만 있었던 것 같다. 부모님께서 선수 출신이셨기 때문에 선수의 심리상태에 대해 잘 아셔서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시고, 오히려 무관심하게 대하셨다. 쓸데없는 잔소리를 일체 하지 않으시고, 믿어주시고, 다른 일에 신경 쓰고 고민하지 않고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게 해주셨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큰 혜택을 받았다고 생각한다.예전엔 부모님께서 연맹 일도 하셔서 특혜를 받는 건 아니냐는 시선을 접하기도 했었는데, 기록경기기 때문에 혜택을 받고 싶어도 받을 순 없었다.(웃음)

보통 운동선수들 중에는 본인이 힘든 점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자식에겐 운동을 시키고 싶지 않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부모님들의 경우엔 오히려 선수가 되는 것을 권장하셨던 것 같다.부모님께서 시켰다기 보다 자연스럽게 스케이트를 접했다. 초등학교때 전교생이 스케이트를 타는 학교에 입학한 후 자연스럽게 시작했다. 본인의 경우는 어떤가? 자식에게 스케이트를 시킬 것 같은가?  적극 추천까지는 아니어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스케이트를 권할 것 같다. 특히 사내아이라면 스피드 스케이팅을 시키고 싶은 마음이 있다. 

스케이트 처음 시작하던 날을 기억하는가? 당연하게 다가왔는지 아니면 특별한 느낌이 있었는지 궁금하다.너무 오래 돼서 처음 스케이트를 신었을 때 기분이 어땠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진첩에 동생이랑 어릴 때 얼음위에서 노는 사진이 있는데, 재미있어 보이고 즐거워보인다는 생각을 한 적은 있다.

만 13세 중학교 때 국가대표가 되었다. 스케이트 선수 외에 다른 꿈을 꾸어본 적은 없는가?전혀 없다. 부모님이 스케이트 선수니까 당연히 내가 선수가 되어야 하고 잘해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 당시에는 아들이나 딸을 낳아도 운동선수로 대를 이어야 한다는 생각까지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때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그저 전교생 앞에서 상 받는 게 어린 마음에 마냥 좋았다.(웃음)

이제까지 출전한 대회중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는 어느 대회인가? 인터뷰하면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다. 재미있는 질문이기도 하다. 질문을 받는 순간의 감정에 따라 그때그때 답이 바뀐다.예전에는 1등을 하거나 좋은 성적으로 환호를 받은 대회가 마음에 많이 남았는데, 최근에는 결국 무관으로 끝난 마지막 올림픽이 기억에 남는다. 소치 올림픽은 경기 전 성적을 봐도 메달권은 아니었다. 그동안은 메달에 집착해서 여유가 없었다면 경기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마음을 비웠더니 전체적인 시합을 볼 수 있는 눈이 생겼던 것 같다.

# 스피드 스케이트에 대한 단상

사실 꽤 오랫동안 스피드 스케이팅이 비인기종목이고 그렇게 큰 주목을 받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스피드 스케이팅에 대한 인기가 높아진 게 2010년 모태범, 이상화, 이승훈 등 젊은 선수들이 메달을 따면서 부터가 아닌가 싶다. 스피드 스케이팅에 대한 달라진 위상을 느끼는가?과거에는 국내에서 스피드 스케이팅보다 쇼트트랙이 더 주목을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오래전부터 스피드 스케이팅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하나 딴다면 쇼트트랙이상의 주목을 받을 것으로 생각해왔다.그걸 내 스스로 하고 싶었고, 그래서 더 메달에 집착한 부분도 있었던 것 같다. 후배들이 좋은 성적을 거두고 스피드 스케이팅에 대한 관심도 많이 늘어나서 기쁘게 생각하고 있다. 

스피드 스케이팅에 대한 관심도의 상승과 더불어 선수들의 연습환경도 많이 개선이 되었는가?스피드 스케이팅에 대한 관심은 예전보다 훨씬 많아진 것 같은데, 아쉽게도 연습환경은 아직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단거리 선수의 경우 링크가 춥다고 느껴지는 순간 부상 위험이 생긴다. 또한 몸을 따뜻하게 만들기 위한 워밍업의 시간도 늘어나게 된다. 후배들이 더 효과적으로 연습할 수 있도록 시설이 지금보다 개선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후배 스케이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개인적으로 가장 힘든 질문중 하나다. 스피드 스케이터로서의 내 인생이 정답은 아니기 때문에….개인적인 상황과 몸의 형태가 다르기 때문에 자기 스타일에 맞는 방식으로 다르게 도전해야 한다고 본다. 간혹 강박관념으로 한 순간도 쉬지 못하고 재충전의 시간을 갖지 못하는 것은 조금 안타깝게 생각될 때도 있다.‘잘 안될 때는 한 템포 쉬면서 점검하는 것이 다음 스텝을 나가기에 좋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 이규혁에게 더 궁금한 것들

스피드 스케이팅의 매력은 무엇인가?정직함! 실력만 있으면 누구나 1위를 할 수 있는 스포츠라서 좋다.

스케이트 외에 좋아하는 운동이 있다면?웨이크보드와 골프. 스키도 좋아했었는데 겨울스포츠라 10년 이상을 못탔다. 골프는 내 성격이랑은 잘 맞지 않는 운동이긴 하다. 한 번에 결과를 내는 운동이 아니라 18홀을 아우르며 스코어를 관리해야 하는 운동이니까.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그래서 재미를 느끼고 극복하고 싶은 정복욕이 생긴다. 

선수생활을 마감하며 ‘나는 아직도 금메달을 꿈꾼다’는 책을 낸 것으로 알고 있다.   책 출판은 올림픽 전부터 준비를 시작했다.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막막하기도 했고,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부족한 점들이 많아서 책을 내야 하는지도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용기를 내게 됐다.올림픽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준비하는 선수의 심리상태,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느낀 점 및 30여년을 스피드 스케이터로서 살아오면서 순간순간 느낀 감정과 그 시간들에 대한 정리가 됐다. 

스피드 스케이터로서의 삶을 마감했다. 사람들에게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은가?세계 신기록을 내고, 아시안 게임, 세계 선수권, 세계 스프린트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는 것에 이어 올림픽 메달을 통해 ‘이규혁=완벽한 선수’로 기억되고 싶었다. 그래서 6번이나 올림픽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결국 실패로 끝났지만….최고는 아니지만 최고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했던 스케이터로 기억해주시면 좋겠다.

이제 스케이트 선수로서의 인생 1막을 끝내고, 또 다른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갈 것 같은가?운동선수를 오래해서 사회생활에서는 남들보다 뒤쳐진 느낌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하던 남들 보다 더 노력하고 열심히 해야 할 것 같다.우선 올해 석사 종합시험을 치르고, 국가대표 1급 지도자 자격증을 딸 계획이다. 학업을 마무리한 후 앞으로 어떤 일을 할지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지만, 스피드 스케이팅 관련분야에서 일하고 있을 것 같다. 나와 스피드 스케이트는  뗄 수 없는 관계니까.

“올림픽 메달 때문에 항상 스스로 좀 부족한 선수라고 생각했고, 결국엔 약간 부족한 선수로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하지만 반면에 올림픽이라는 대회 때문에 좀 더 많은 것을 배웠고 선수로서 성숙할 수 있었다.”는 그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그러나 우리는 그를 절대 부족한 선수로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누구보다 스포츠맨 정신에 부합되는 선수이며 누구보다 큰 감동을 전해준 선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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