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골프장에 현금 찾아가지 마세요
더 이상 골프장에 현금 찾아가지 마세요
  • 김태연
  • 승인 2023.11.0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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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피와 카트비는 카드로 결제하고, 캐디피는 현금으로 결제하는 방식 자체가 번거로웠던 골퍼들에게 ‘캐디피 카드결제 소식’은 반갑기만 하다.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이 지폐와 동전을 들고 다니며 물건을 구매했다. 하지만 신용카드가 대중화되고 모바일화폐 등이 발달하면서 현금을 전혀 가지고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일각에서는 대한민국을 포함한 전 세계 시장경제가 ‘현금 없는 사회’로 변화할 것이라고 예측하지만 여전히 현금이 필요한 곳들이 존재한다. 압구정 로데오나 이태원 맛집 등에서 발레파킹을 맡길 때, 지인의 경조사에서 축의금이나 부조금을 전달할 때, 그리고 골프장에서 캐디피를 지급할 때이다.

 

캐디피를 현금으로 내는 이유

 

난생 처음으로 라운드를 나가는 사람들은 생각지도 못한 난관에 두 번이나 부딪히게 된다. 첫째는 나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왔다고 생각했는데도 좀처럼 내 마음대로 컨트롤 되지 않는 골프공 때문이요, 둘째는 복잡한 비용산정 방식 때문이다. 

그나마 그린피나 카트비는 신용카드로 분할결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처음으로 라운드를 나온 사람도 큰 불편 없이 결제가 가능하지만 캐디피는 반드시 현금으로만 결제해야 한다는 것은 선뜻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다. 다들 캐디에게 준비해온 현금을 지불하니 분위기에 맞춰 좀처럼 쓰지 않던 현금을 내려니 괜스레 공돈이 나가는 기분까지 들지도 모른다.

대중교통이나 일부 매장에서는 아예 현금결제가 불가능한 곳까지 생기고 있는 세상이지만 캐디피는 무조건 현금으로 지급해야 한다니…. 세금 신고는 제대로 되고 있는지 의심스러운 마음까지 생길지 모른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캐디피를 현금으로 지급한 이유는 캐디가 골프장에 고용된 근로자가 아닌 독립적인 개인사업자 형태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카트비나 그린피는 골프장에서 신용카드로 결제한 뒤 정산이 가능하지만, 캐디에게 온전히 지급하는 캐디피는 골프장에서 부가가치세를 지급해줄 수가 없는 것이다. 

근로기준법에 명시되어 있는 근로자는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을 뜻한다. 그간 일부 판례에서는 캐디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상 근로자로 해석하기도 했으나 또 다른 판례에서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정의하는 등 엇갈린 태도를 보이고 있다.

 

캐디는 정말 골프장 근로자가 아닐까

 

현금 사용이 낯설어진 골퍼 중 일부는 ‘캐디들이 카드리더기를 들고 다니면 되는 것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갖기도 한다. 배달대행업체 라이더들만 봐도 스마트폰에 연결하는 작은 카드리더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결제를 도와주니 불가능할 것도 없어보인다.

하지만 현행법상 결제대행업체는 카드로 결제된 금액을 지급받는 사람의 상호와 주소를 카드 이용객에게 알려주도록 되어있다. 그런데 캐디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분류되어 따로 사업자 등록을 하지 않고 근무를 하기 때문에 카드결제 시스템 도입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골프장 측이 캐디를 고용해 카드결제를 대신 받고 인센티브 형식으로 계산된 급여를 지급하면 되는 일이 아닐까? 캐디가 골프장 근로자가 아니라는 법원의 해석 역시 말장난처럼 느껴져 마음이 답답했다. 

실제로 신입 캐디의 경우 골프장 측에서 인근에 마련해준 숙소에 머물며 업무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골프장 특성상 대부분 인적이 드문 산속이나 바닷가에서 근무해야 하기 때문이다. 골프장에서 숙식을 제공받으며 지속적으로 근무를 하고 있음에도 골프장에 속한 근로자가 아니라니,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다.

법원은 그간 판례에서 캐디는 골프장의 직접적인 지휘·감독을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하지만 경력이나 실력과 무관하게 라운드에 투입된 캐디는 무전기를 소지하고 다니면서 골프장 관계자로부터 게임 진행에 관련된 지시를 받게 된다. 경기가 지연될 때는 다음 타임에 예약된 골퍼를 위해 골프장 측 직원이 직접 캐디에게 속도 조절 등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으니, 골프장의 직접적인 지휘·감독을 받지 않는다는 해석이 무색해지는 부분이다.

 

연말부터 캐디피 카드결제 가능

 

반가운 소식은 다가오는 연말부터 캐디피도 카드결제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평소 신용카드나 스마트폰을 통해 결제하는 사람의 경우, 캐디피 지급을 위해 현금을 인출하는 것이 번거로웠는데 이같은 불편함이 사라진다니 다들 캐디피 카드결제를 반기는 분위기다.

그린피와 카트비는 카드로 결제하고, 캐디피는 현금으로 결제하는 방식 자체가 번거로웠던 골퍼들에게도 캐디피 카드결제 소식은 반갑기만 하다. 한 번의 결제로 라운드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지불할 수 있으니, 헷갈릴 일도 전혀 없다.

별도의 사업자등록도 하지 않고, 골프장의 정규직 근로자로도 등록되어 있지 않은 캐디들에게 지불하는 비용인 캐디피도 카드로 결제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것은 금융위원회이다. 기존의 요건을 완화해 이르면 올 연말부터 캐디피의 카드결제가 가능하도록 추진 중인 것이다.

금융위원회가 혁신금융서비스라고 명명한 캐디피 카드결제 시스템은 캐디피를 카드로 결제할 수 있는 화면으로 이동되는 링크를 QR코드로 담아 캐디가 소지하고 다니면서 비용을 지불받는 형식이다. 

 

연 2조원에 달하는 초대형 시장

 

캐디피 시장의 규모는 연 2조원 상당으로 생각보다 그 규모가 훨씬 크다. 캐디피 카드결제가 현실화되면 골퍼들은 골프장을 찾을 때마다 현금을 찾을 필요가 없어 좋고, 기업 고객들은 지출 증빙이 더욱 수월해지며, 정부 차원에서의 세수 확보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인류 최초의 경제활동은 수렵 및 채집을 통한 자급자족 생활에서 시작됐다. 의식주에 필요한 물건을 직접 생산하고 소비했던 시기로 거래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으니 교환 수단이 되는 화폐는 존재하지도, 필요하지도 않았다.

자급자족 경제가 발달하면서 인류는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었다. 생계유지를 위해 필요한 만큼 소비를 해도 물건이 남는 ‘잉여’가 발생하자 상대방과 물건을 교환하는 물물교환 경제가 시작됐다. 

활동을 통해 얻은 것들로 의식주를 해결하는 자급자족 사회를 거쳐 필요한 물건을 교환하는 물물교환경제를 지나 화폐경제에 도달했다. 자본주의 경제라는 개념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화폐와 금융의 발전이 선행되어야 했다. 

현금 없는 사회는 화폐경제의 진화물이다. 다양한 이유로 인해 시대의 흐름이 된 현금없는 사회는 이제 골프장 캐디피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말 올 연말부터는 캐디피를 카드결제하는 시대가 올 것인지, 그 귀추가 주목되는 순간이다.

 

 

GJ 김태연 이미지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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