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복본 2 - 골프 뿌리를 찾아야 미래의 골프에 힘을 얻는다
골프복본 2 - 골프 뿌리를 찾아야 미래의 골프에 힘을 얻는다
  • 남길우
  • 승인 2013.09.13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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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이 힘들 때 방황을 멈추고 잠시 되돌아본다. 고향에 가기도 하고 어머니를 찾아보기도 한다. 이는 근원을 찾는 행위다. 그리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 역사든 인간사든 근본적인 것을 놓치고 무작정 흘러왔다. 본류를 벗어나 지류로만 흘러와서 확대 재생산의 놀음 위에서 방황하고 있다. 근본적인 동아줄도 모르고 발버둥 치면서 뿌리를 모른다. 그런 토대가 없으니 지금 어떤 것에 기대서 힘을 쓰고 추진할 에너지를 갖겠는가. 골프도 복본이 필요하다. 그 근원적인 것을 알고 요즘의 것을 받아들여야 비로소 이론적으로나 실제 힘의 원천을 그대로 받을 수 있다고 본다. ‘더 멀리, 더욱 정확히’라는 골프의 목표치를 획득할 수 있으리라 본다. 골프에서도 복본이 필요하다. 골프저널 창간 24주년을 맞이해 골프의 뿌리를 찾는 기획을 시작해 본다.편집자 주
 
TEE 이야기각 홀의 플레이를 시작하는 장소인 티잉 그라운드에서 티샷할 때 볼을 올려놓도록 만들어진 작은 액세서리를 'Tee' 또는 페그티(teePeg) 혹은 'Peg tee'라고도 부른다. 그냥 부르기 좋게 ‘티(Tee)’라고 약칭한다. 소재는 나무가 대부분이나 플라스틱이나 녹말·쇠로 된 것도 있다. 이 두 가지는 서로 내용이 얽혀있다.최고의 골프 룰이 만들어진 것은 1754년의 일이다. 이 룰에 따르면 ‘티업은 컵으로부터 1클럽 이내에서 해야 한다’고 되어있다. 지금 막 플레이를 끝낸 그린의 컵 바로 옆에서 티샷을 하게 되어있는 것이다.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이야기 같지만 그 당시의 그린이란 페어웨이의 일부, 단지 링크스를 조금 짧게 깎아 좋은 상태의 그린이었으니까 티샷에는 별 무리가 없었을 것이다.1777년에는 이 룰이 개정되어 컵에서 4클럽 이내, 1875년에는 8클럽에서 12클럽 이내로 개정되기에 이르렀다. 현재와 같은 티잉 그라운드가 따로 만들어지기는 1893년부터의 일이다.이와 같은 흔적은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에 가보면 짐작이 간다. 그린에 붙어있다시피 티잉그라운드가 만들어져 있다. 이 무렵까지 티업할 때에는 주변의 모래나 흙을 소복이 쌓아 하나의 좌대(座臺)를 만들어놓고 그 위에 볼을 올려놓은 다음 티샷을 했다.그래서 골퍼들의 손은 늘 더러워지기 일쑤였고 불편했고 나중에는 작은 모래통이 마련되기까지 했다.지금과 같은 페그티가 만들어진 것은 1920년의 일이다.이 불편함에 착안한 이가 미국 뉴저지 주에서 치과의로 있던 윌리엄 로웰(William Rowell)이었다. 그는 나무로 만든 티페크를 착안, 획기적인 반응을 얻으리라고 기대했으나 상상 밖으로 골퍼들은 이에 냉담했다.그는 못과 같은 페그티를 창안해 특허를 내고 센세이션을 기대했으나 뜻과는 반대였다. 골퍼들은 오랜 습관대로 손으로 모래를 쌓아놓고 티샷을 하는 것이었다.이를 세계에 보급시킨 것은 당대의 명프로 월터 하겐이었다. 새로 만들어낸 티 페그가 전혀 팔리지 않자 윌리엄 로웰로부터 특허권을 사들인 메이커 측에서는 2년간이나 고심하던 중 1922년 그때 마침 미국 전역을 순회 중이던 윌터 하겐과 조 커크우드와 링크된다.당대의 명프로 윌터 하겐과 커크 우드의 순회경기는 전국 각 골프장에서 팬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받던 때라 티페그 제조회사에서는 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제안을 했다.‘만약 당신들이 순회경기 중 티샷을 할 때마다 티페크를 사용해 준다면 1천 5백 달러의 사례를 지급하겠소.’ 이를 마다할 그들이 아니다. 이들은 수많은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못처럼 생긴 티를 꽂고 그 위에 공을 올려놓은 다음 호쾌한 티샷을 하는가 하면 갖은 묘기를 다 발휘했다.이 선전효과는 적중했고 티페그의 물결은 미국 전역으로 그리고 전 세계로 번져 나갔다.요즘은 나무대신 플라스틱 티가 등장, 공해문제로까지 발전했지만 어쨌든 골퍼들은 치과의사였던 윌리엄 로웰 씨에게 고마워해야 할 일이다.
 
골프클럽골프채만큼 많은 소재의 변화가 있는 용품도 드물 것이다. 조금 더 멀리 보내려는 골퍼들의 욕망에서 비롯된 발전적 방향이다. 골프채를 말하는 클럽(Club)은 원래 나무를 뜻한다. 곤봉, 타봉(駝峰) 등이 그 본래의 뜻이다.감나무(퍼시몬)로 헤드를 만들고 호두나무(히커리)로 샤프트를 만들어 골프클럽이라고 했다.퍼시몬은 메탈이 나오기 전까지 감나무로 만든 명품들이었고 히커리는 호두나무 과에 속하는 나무로 유연하고 내습성이 있어 애용됐다.1400년대 그 무렵은 보통 2~3개의 골프클럽으로 플레이했는데 골프클럽은 모두 손으로 만든 수제품이었다. 활이나 화살 등 무기를 만들던 장인들이 정성 들여 만든 것을 보면 골프클럽의 발달사에서 골프클럽과 무기와는 상당한 연관성이 있다.요즘 신소재에 의한 신병기라는 것도 알고 보면 군수산업이나 우주산업에서 파생된 재료가 그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스틸, 불랙, 보론, 그라파이트가 그렇고 티타늄 역시 그렇다.본격적으로 아이언 샤프트가 개발된 것은 하스켈 볼이 등장하고 난 후였는데 처음에는 그다지 환영을 받지 못했다.미국인 알랜 라드가 구멍(코어)이 뚫린 샤프트를 개발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 성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아이언 샤프트가 미국골프협회에서 정식으로 공인된 것은 1926년의 일이다.하이테크놀리지의 과시인지, 지금 날마다 새로운 용품들이 등장하여 페어웨이를 누비고 있다.타구거리는 자꾸만 늘어나고, 골프클럽의 강점이 골퍼들의 테크닉을 능가할 정도이니 이러다가는 골프의 형태가 어디까지 갈지 모를 일이다.‘비싸다고 모두 좋은 것은 아니다. 쓰면 쓸수록 안심감을 주는 클럽이 그 사람에게 가장 잘 맞는 골프클럽이다’고 어느 전문가는 정의를 내리고 있다.재미있는 것은 티처럼 나무라는 클럽(Club)과 모임 동호인이라는 뜻의 클럽이 모두 골프클럽으로 애칭 되고 있다.
 
딤플 전쟁공의 표피에 딤플(Dimple)이라는 자국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대략 1845년 이후다, 딤플은 정말로 우연한 일로 비롯됐다.역사상 처음 등장한 골프볼은 페더볼이었다. 페더볼은 소가죽이나 말가죽을 2장내지 4장을 오려 봉한 후 그 속에 거위의 깃털을 다져넣어 만든 것으로 그 당시 상당한 고가품이었다. 이 페더 볼은 1400년부터 1800년까지 4백 년 동안 사용됐다.다음에 등장한 것이 고무나무 수액(樹液)으로 만든 거터 퍼처볼이다. 이 볼은 시장에 나오자 골프계는 술렁이기 시작했다. 원시적이긴 했으나 기계로 찍어내는 공산품화 한 제품이었으므로 대량생산이 가능했고 따라서 값도 싸졌다. 얼마 후 골퍼들은 이상한 현상을 체험하게 된다.처음 새 공을 칠 때 보다 공이 헐어서 표피에 상처가 많이 생길수록 거리가 더 나가는 이상한 현상이었다. 새 공은 수액으로 찍어내 표피가 맨들맨들한 것이었는데 볼을 오래 쓸수록 돌에 부딪히기도 하고 러프에 들어가 상처가 나기도 했다. 그런데 이때부터 비거리도 늘고 탄도도 좋아지는 현상이 생겼다.그래서 골퍼들은 새 공을 쓰기 전에 칼이나 톱으로 공의 표피를 지그재그로 그어, 일부러 상처를 냈다. 그러자 비거리가 놀라울 정도로 늘어났다.이는 공기정항곡선(空氣抵抗曲線)의 원리였다. 실제로 같은 여건 속에서 타구해본 결과 표피가 맨들한 경우 70야드 나갈 때 곰보가 생긴 공은 2백 야드가 나갔다.이때 비로소 딤플(Dimple)의 절대적 중요성이 인식됐다. 오늘날 우리가 쓰고 있는 하스켈볼이 1898년 창안된다. 개발자 코번 하스켈은 공 표피에 딤플을 정식으로 도입했다. 공의 표피에 곰보자국이 3백개냐 5백개냐, 볼 메이커마다 경쟁이 붙기 시작했다.
 
라지볼 천하라지볼이 천하를 통일한 건 1990년부터다.골프의 사용구가 이때부터 비로소 전 세계적으로 통일된 것이다.골프볼의 유형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되어 사용되어 왔다. 스몰볼과 라지볼이다.‘스몰볼’은 일명 영국형, ‘라지볼’은 통칭 미국형이라는 불렀다. 스몰볼은 직경 41.15mm(1.62인치), 중량 45.93g이고, 라지볼은 직경 42.67mm(1.68인치), 중량 45.93g으로 두 볼은 중량과 규격은 똑같은데 다만 겨우 1.52mm 차이의 직경이 다를 뿐이다.두 볼의 자존심을 건 싸움(?)은 58년간이나 계속됐고 끝내는 미국의 라지볼의 승리로 끝나버렸다.영국에서 이른바 스몰볼 사이즈의 볼이 공인(公認)된 것은 1921년의 일이다. 그리고 미국에서 라지 사이즈의 볼이 공인된 것은 1932년이었다.실로 60년간에 걸친 영국과 미국의 각축전은 볼의 역사이기도 하다.영국이 주장하는 스몰볼의 메리트는 ‘비거리가 뛰어나다, 좀처럼 구부러지지 않는다, 바람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그러나 미국의 입장과 주장은 또 달랐다. ‘라지볼은 비거리는 약간 뒤진다고 해도 파워만 있으면 문제될 게 없다, 그린에서 잔디결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다, 그린 위에서 잘 구르기 때문에 목표지점으로 정확히 보낼 수 있다, 스몰볼과 중량이 같으므로 비중이 가벼울 뿐더러 잔디에 파묻히지 않는다’는 이유 등이다.두 볼이 공용 됐을 때 골퍼들은 자기의 취향에 맞춰 어느 쪽 공이든 쓸 수가 있었다. 비거리를 요구하는 골퍼는 스몰볼을 택했고 퍼팅의 절묘함을 희망하는 골퍼는 라지볼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1990년부터는 스몰 볼은 코스에서 영원히 사라져야 했다.골프의 발상지는 스코틀랜드였지만 골프의 완성과 산업의 발달은 역시 미국이었다.국력도 가세했던가. 60년간의 싸움은 끝내 막을 내리면서 골프의 헌법기관이라고 할 영국의 로열 앤드 앤시언트(R&A)는 ‘세계 골프의 유일한 사용구’를 끝내 라지볼로 선언하고 말았던 것이다. 지금 골퍼들이 사용하고 있는 볼이 바로 그 볼이다.
 
골프의 전당골프의 전당에 들어가기란 엄청 어려운 일이다.세계무대에서 내로라하는 골프스타는 상금 획득도 목표지만 가장 큰 영예인 ‘세계 골프의 전당’에 입성하는 것을 최대의 이상과 목표로 삼고 출전하고 있다.미국 골프의 전당이 3개 있으나 하나는 미국인만을 위한 것이고 또 하나는 PGA전용일 뿐 말 그대로 세계 골퍼를 위해 존재하는 곳은 노스캐롤라이나 주 파인허스트에 있는 ‘세계 골프의 전당’ 뿐이다.1974년 9월 11일 개원한 ‘세계 골프의 전당’은 엄격한 기준 아래 후보가 등록되고 매년 골프기자협회(GWAA) 구성원들이 최종 인선권을 갖는다. 선출위원회가 지명해야 하고 골프기자협회에서 75%를 득표해야 한다.‘골프의 전당’에는 1930년 이전 전근대파, 이후 지금까지 근대파 그리고 세계 골프계에 공헌한 인물 등 3장르로 나뉘어 있다. 여러 난관이 있었지만 초대 회장 돈코레트의 다음과 같은 집념이 결국 결실을 본 것이다.‘야구나 축구보다 수백 년이나 전통이 앞선 골프인데도 한평생 외길을 매진한 영웅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전당이 없어서는 말이 되지 않는다. 적어도 골프에서만은 지역에 국한할 것이 아니라 범세계적으로 영웅들을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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