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투어> 볼음도에서 하룻밤
<문화투어> 볼음도에서 하룻밤
  • 남길우
  • 승인 2014.09.02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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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음도에서 하룻밤

‘우리역사교육원’, 강화 볼음도 은행나무 앞에서 ‘백종제’ 지내

‘우리역사교육원(원장 : 전창건)’ 회원들이 9일부터 10일까지 1박2일 일정으로 강화군 서도면 볼음도(乶音島)에 하계 수련회를 다녀왔다.

‘우리역사교육원’ 소속 회원 12명은 지난 8월 9일 강화 외포리 선착장에서 1시 10분 배로 출발했다. 갈매기의 배웅을 받으며 석모도를 끼고 빠져나간 배는 주문도, 아차도를 지나 1시간 10여분 동안 항해했다. 바닷길은 섬들이 둘러싸고 있어 아득한 수평선을 보지 못한 채 볼음도 선착장에 2시 20분쯤 도착했다.

일행은 숙소에 짐을 꾸리고 2006년 그러니까 8년 전부터 이곳 마을에 터전을 마련한 건국회 수석부회장 전석환(81·이북5도문화재위원) 선생의 안내로 마을을 돌았다.

백중사리로 만조가 된 바닷가에 자리 잡은 900년 가까이 된 ‘볼음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304호)와 뒤켠에 비스듬히 누워있는 ‘팽나무’를 돌아보고 가뭄에 물이 졸아든 볼음저수지를 한 바퀴 돌았다.

이 은행나무는 고려 초기쯤 강원도에서 홍수에 떠내려 온 가지를 어부가 주워서 꽂은 것이 오늘날 둘레가 10m 크기로 자랐다고 전석환 선생은 그 유래를 들려준다.

또 이 섬의 이름에 대한 유래는 조선 인조 때 명나라로 가던 임경업 장군이 풍랑을 맞아 이곳에 체류하던 중 조금과 사리로 인해 보름을 기다리다가 보름달을 보았다고 해서 원래 만월도(滿月島)라 불렀다고 전한다. 그 후 우리말인 보름달의 발음을 따라 서글로 표기하다보니 볼음도가 됐다고 말한다.

인근엔 노랑부리백로, 저어새의 번식지로 20여 종의 새들이 먹이를 찾아 모여드는 마을 저수지를 둑을 따라 일행은 마을을 한 바퀴 돌면서 볼음도에 전해오는 역사와 마을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하계수련회 겸한 9~10일 1박2일 일정

이번 행사의 백미는 야외에서 빔을 활용한 특강이었다.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송준희 교수의 ‘천손민족의 비밀’ 특강에 이어 박완서 선생의 ‘파동 의학’이란 주제로 특강이 이어졌다.

강의에서 박완서 선생은 “내 몸을 인식하는 사고체계의 혁명으로부터 참 나를 찾는 지혜”라고 주창하면서 “모든 물상이나 인체에 고유의 파장이 있다”고 말하고 “그 정상적인 파장을 기준으로 이상 파동이 점지되면 정상이 아니라는 분석을 통해 병 검진의 메커니즘으로 의료학계에서 활용하고 있다”고 피력했다.

또 박완서 선생은 “모든 것은 파동의 결정체”라고 말하고 ‘향후 파장의 간섭과 공명을 이용한 엄청난 연구 과제”라고 덧붙였다.

다음날 10일 오전 11시, 70, 80년대 통기타 하나 들고 전국을 누비며 젊은이들의 심금을 울렸던 작곡가 전석환 선생의 싱어롱 시간도 가졌다. 일행은 ‘정든 그 노래’를 시작으로 우리들에게 익숙한 노래를 합창하면서 추억을 되살려 냈고 회원들에겐 단합의 시간이 됐다. 특히 의미 있는 것은 우리 가락으로 곡을 붙인 전석환 선생의 곡을 우리역사교육원의 주제가로 지정 받기로 했다.

이어 점심식사 후엔 오학림 교수의 ‘우리역사용어바로알기’란 특강이 이어졌다. 우리들이 흔히 잘못을 범하기 쉬운 기본적인 용어 21가지를 선정해서 묶은 소책자 ‘우리역사용어바로알기’를 우리역사교육원의 첫 총서로 묶어내는 등 알찬 하계 야외 수련회가 됐다.

한편 9일 오후 5시 ‘우리역사교육원’ 회원들은 볼음도 은행나무 앞에서 일행이 준비 한 떡과 과일 등 제례음식을 정성껏 차리고 ‘백종(중)제’를 지냈다.

백중사리로 출렁이는 바닷가에 서있는 900년 가까이 된 ‘볼음 은행나무’와 ‘팽나무’ 앞에서 백종제를 올렸다.

본디 마을 사람들은 팽나무 앞에서 지내다가 나중에 은행나무에 6·25 출어금지 전까지 풍어제를 지냈던 곳이다.

‘원래 백종은 100가지 종자를 모아서 나눔과 생산에 활용하는 우리나라 고대의 농신제일이었던 것이 삼국시대 이후 불교의 우란분회 영향으로 그 원래의 민속적 의의를 상실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윤부용 우리역사교육원 교수는 분석했다.

한편으론 떠나지 못하는 원혼들을 불러 제 갈 길로 편히 떠나가게 하는 날의 의미를 살려 회원들은 황해에서 희생되고 수장된 천안함과 연평해전 그리고 최근 세월호 원혼들의 극락왕생과 동시에 나라의 부강을 함께 기원했다.

음력 7월 15일 보름은 백종날로 10일 동안 ‘백중사리’가 이곳 서해엔 계속된다. 1년 중 바닷물이 들고나는 조금과 사리의 물 높이가 4~5m 이상 큰 폭의 차이를 보이는 시기라고 이북5도 문화재위원 전석환 선생은 설명했다.

백중을 전후해 밀물의 수위가 만조 시 최고치가 된다. 지구와 달, 태양의 위치가 일직선상에 있으면서 달과 지구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을 때 백중사리는 발생된다. 이 경우 달의 인력에다 태양 인력까지 합쳐지는데다 좁은 바다라서 더욱 조수간만의 차가 높아진다.

“이때는 바닷가를 접한 연안에 바닷물이 많이 들기 때문에 해수침수 피해가 속출하고 비가 많이 오면 피해는 더욱 커지기 때문에 바다에 나가자 못하게 하는 풍속이 있다”고 송준희 교수도 부언했다.

백종(중)일

백중은 백종(百種)·중원(中元)·망혼일(亡魂日)이라고도 한다. ‘백중’은 이때쯤 과일과 채소가 많이 나와 100가지 곡식의 씨앗을 갖추어놓은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절에서는 재(齋)를 올리고 공양을 드렸으며, 민간에서는 100가지의 과실을 차려 제사를 지내고 남녀가 모여 음식을 먹고 노래와 춤을 즐겼다.

가정에서는 한창 익은 과일을 따서 사당에 천신차례를 올리고 백중잔치를 한다. 백중을 전후로 장이 섰는데 이를 백중장(百中場)이라 했다. 머슴이 있는 집에서는 이날 하루는 일손을 쉬고 머슴에게는 휴가와 돈을 주어 백중장에 가서 하루를 즐기도록 했다.

백중장이 성시를 이루면 씨름판과 장치기 등의 놀이도 펼쳐진다. 또한 한 해 농사를 잘 지은 집의 머슴을 소나 가마에 태워 마을을 돌면서 사기를 북돋아준다. 백중 때가 되면 농사일이 거의 끝나서 농부들은 호미를 씻어두는데 이를 ‘호미씻이’라고 한다. “이점을 볼 때 과거 우리 민족의 주업인 농산물 생산과 관련된 놀이가 불교에 습합되면서 종교성향으로 흘렀다”고 박완서 선생은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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