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부족 사태와 골프장 때리기
물 부족 사태와 골프장 때리기
  • 나도혜
  • 승인 2022.10.1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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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단체 ‘멸종저항’이 최근 프랑스 남부에 있는 한 골프장의 홀을 시멘트로 막는 극단적인 시위를 벌였다.

이 사건을 해외 토픽으로만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는 한국에서도 물 부족 시대에 골프장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환경단체의 골프장 저격

 

최근 환경단체 ‘멸종저항(Extinction Rebellion)’ 프랑스지부가 벌인 시위가 국내에서도 화제가 되었다. ‘멸종저항’은 프랑스 남부에 있는 한 골프장의 홀을 시멘트로 막는 극단적인 시위를 벌였다. 이런 시위가 벌어진 건 가뭄 탓에 프랑스 전역에 엄격한 물 사용 제한 조치가 시행되고 있는데, 골프장만이 물 사용 제한 조치를 제대로 받지 않은 탓이었다. ‘멸종저항’은 SNS에도 시위 사진을 올리며 ‘가뭄으로 농업용수 공급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데 이 레저 산업은 물을 독점하고 있다’는 등의 글을 올리며 항의를 이어나갔다.

이 사건은 그저 하나의 ‘해외 토픽’으로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한국에서도 기상이변으로 말미암은 가뭄이 이어지고 있고, 골프장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도 점점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싸이 흠뻑쇼에서 시작된 논란

 

얼마 전 ‘싸이 흠뻑쇼 논란’은 한국 골프장도 물 부족 시대에서, 큰 논란의 당사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가뭄이 이어지는 가운데 유명 가수의 콘서트에서 물을 과도하게 쓰는 게 옳으냐, 아니냐는 논쟁으로 시작된 논란은 어느새 ‘골프장이 흠뻑쇼보다 물을 더 많이 쓰는데 왜 제지하지 않느냐’는 논란으로 번졌다. 

물론 단발적인 논란이었다면, 단순한 해프닝으로 취급해도 무방했을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특정인이, 혹은 특정 업계가 예상치 못한 유탄을 맞는 건 항상 있는 일이니까.

하지만 지금 상황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기상이변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예측되며, 그만큼 골프장의 과도한 물 사용 논란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거기에다 불 난데 기름을 붓듯, 물 특혜 논란까지 터지며 여론이 더욱 나빠지고 있다. 골프장이 물 부족사태의 원흉으로  미운 털이 박히고 있는 것이다.

 

농어촌공사의 농업용수 판매 문제

 

최근 한 언론에서는 농어촌공사가 골프장에 농업용수를 판매했다는 걸 문제 삼으며 크게 보도했다. 논란의 핵심은 농사를 짓는 데 써야 할 저수지 농업용수를 골프장에 팔았다는 점이다. 문제가 된 신덕 저수지는 작년까지만 해도 저수율은 70~80% 정도를 기록하며 저수량에 여유가 있었지만, 올해는 30%를 기록하는 등 물이 크게 부족했다. 그런데 이 저수지에서 골프장이 올해 끌어다 쓴 물만 24만톤에 이른 것으로 조사되며 논란이 불거진 것이다. 물론 골프장이 무료로 물을 쓴 건 아니다. 농어촌공사는 골프장에 톤당 68원에서 81원가량을 받고 물을 팔았고, 상당한 이익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농어촌공사는 이 조치가 불법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공사에 있는 자원을 활용해 수요를 창출하는 건 적법한 조치며, 저수지에 남는 물이 있다면 사용하는 것 역시 적법한 조치라는 것이다. 또 가뭄이 심해져 저수율이 떨어진 5월 말부터는 골프장에 물을 팔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물이 떨어져 농사를 망친 주변 농민들의 분노는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러한 일이 신덕 저수지뿐만이 아니라, 전국 14곳에서 벌어진 것으로 드러났다. 게다가 골프장에 공급되는 물값의 변동이 크다는 점, 농민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농업용수가 공급되고 있다는 점 역시 논란거리로 꼽히고 있다. 

 

논란의 핵심과 여론

 

결국, 기상이변으로 말미암은 가뭄 속에 ‘농민들은 물이 부족해 농사를 망치고 있는데, 골프장은 석연치 않은 이유로 농업용수를 공급받고 있다’는 게 논란의 핵심이다.

아직 이 논란에서 골프장이나 농어촌공사가 불법을 저질렀다고 볼 사안은 없다. 돈을 받고 농업용수를 골프장에 판 것은 어디까지나 적법한 수익 사업의 일환이었다는 게 공사 측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즉, 이 사건은 아직 불법으로 번지지는 않았다.

문제는 여론이다. 그렇잖아도 골프장의 과도한 물 사용 논란이 부각된 후, 이 문제에서 골프장 편을 드는 여론은 많지 않은 게 사실이다. 몇몇 언론이나 단체가 앞장서 골프장이 지나치게 물을 쓴다고 비판하면, 다른 곳에서도 그 입장에 따른 보도를 이어나가고 여론도 이에 편승하는 현상은 이미 ‘싸이 흠뻑쇼 논란’ 때도 불거졌고, 이번 골프장 농업용수 공급 논란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논란이 이어지면 시간이 지날수록 골프장을 향한 여론이 나빠지고, 국가에서도 나서 골프장의 물 사용을 지금보다 더 제한하는 등의 규정을 만들 가능성도 있다. 어떤 당이 정권을 잡든, 또 지자체를 어떤 당이 차지하든 대부분의 여론이 골프장의 과도한 물 사용을 비난하며 제제를 요구한다면, 정부나 지자체에서도 이에 따를 가능성이 작지 않다.

 

골프장 물 부족에 대비하기

 

앞에서 소개한 프랑스 골프장 시위를 다룬 국내 온라인 커뮤니티의 반응에서도 골프장을 향한 좋지 않은 민심을 엿볼 수 있다. 네티즌 대다수가 시위대 편을 들고 있는 것이다. 포털 사이트의 뉴스 댓글도 마찬가지다. 남초냐 여초냐, 또 정치 성향이 어떠냐는 이유로 항상 다투는 국내 여러 커뮤니티가 이 사건에서는 한결같이 시위대의 편을 들고 있다. 이러한 여론이 확대되면 결국 온라인은 물론 오프라인에서도 골프장의 과도한 물 사용 문제가 심각하다는 여론이 대다수를 차지할 수 있으며, 이후 골프장에 실질적인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결코 기우는 아닌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골프장은 어떻게 움직여야 할까. 무엇보다도 물 사용량을 줄이는 게 우선이다. 내일 당장 물 사용량을 크게 줄이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장기적으로 물 사용량을 줄여나가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고 연구해야 한다. 

불가능한 요구가 아니다. 이미 국내외의 몇몇 골프장은 빗물이나 처리장의 물을 재활용하는 방법을 통해 물 사용량을 크게 줄이는 데 성공한 바 있다. 이제 골프계가 적극적으로 나서 이런 모범 사례를 연구하며 골프장 전반에 걸쳐 물 사용량을 줄여나가야 할 것이다. 이제 ‘물 부족 국가’, ‘물 부족 시대’는 근거 없는 프로파간다가 아니라 당면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GJ 나도혜 이미지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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