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운영 정운범 회장의 일과 골프 : 꾸준히 도전하고 노력하라
(주)운영 정운범 회장의 일과 골프 : 꾸준히 도전하고 노력하라
  • 김혜경
  • 승인 2022.09.2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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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대 규모 전력·전자기기 종합생산업체 (주)운영을 이끌고 있는 정운범 회장은 “골프는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말한다. 골프와 인생, 둘 다 꾸준한 노력은 기본이지만 요행은 금물이고, 욕심을 내면 낸 만큼 화를 얻게 되고, 마음을 비우면 비운만큼 잘 풀린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Profile

정운범

(주)운영 대표이사

(사)한국JC특우회 32대 중앙회장

 

챔피언 전적

캐슬파인GC 2007년, 2008년, 2010년

덕평CC 2017년

 

훈장집 막내 아들

 

나는 충남 부여에서 3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내가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아버지가 아프셔서 5학년 때 돌아가시는 바람에 아버지와의 추억이 많지 않은 것이 큰 아쉬움이다. 훈장이셨던 아버지께서 자식들에게 예의범절을 강조하셨던 기억이 있다. 

부유한 편은 아니었지만 별 어려움 없이 지내다가 아버지가 위암으로 돌아가신 후 가세가 좀 기울었다. 

우리 식구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큰 형의 주도하에 서울로 이사를 왔고, 나는 고등학교를 서울에서 다니게 됐다. 평범하게 학창시절을 보냈고 착실한 학생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운영 전기의 설립

 

 

가정 형편을 고려해 고교 졸업 후에 대학 진학 대신 취업을 택했다. 당시 큰 형이 대학교 3학년이어서 넉넉지 않은 가정 형편에 대학생을 2명이나 뒷바라지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진로를 취업으로 잡았다.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한 회사가 전력·전자기기 산업 관련 업체였는데, 사회에 첫발을 내디딜 당시만 해도 해당 분야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었고 고등학교도 인문계를 나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고 느꼈기에 더 열심히 회사 생활을 했다.

다행히 적성에도 잘 맞아 회사 내에서도 빠르게 인정받으며 성장해나갔고, 1978년 만 23세의 나이에 청계천에서 직원 서너 명을 데리고 산업용 트랜스포머 생산을 주력으로 하는 운영 전기를 설립하기에 이르렀다. 학업을 지속하지 못한 아쉬움은 사업이 어느 정도 안정된 후 야간 대학에 다니면서 풀었다. 

 

창립 44주년 맞은 운영

 

㈜운영 천안 사옥 전경

 

㈜운영은 국산 트랜스포머 개발을 시작으로 각종 자동화 제어기기 부품과 NCT(Noise Cut Transformer) 등 다양한 제품군을 생산하고 있는 업체로 전기 업계에서 종합 솔루션 제공회사로 정평이 나 있다. 특히 주문제작에 의존하던 트랜스포머를 최초로 규격화해 제품의 기술력 향상에 이바지해왔으며 지금까지 1,000여 종에 이르는 제품을 표준화하는 등 생산성과 품질 향상, 원가 절감에 기여해왔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2008년에는 대한민국 기술대상 대통령 표창을 수상하는 등 국내 트랜스포머 시장에서 연구개발 선도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1978년 창업 이래 국내 최대 규모의 전력·전자기기 종합생산업체로서 다양한 기종을 생산하고 있으며, 국내 최초로 Micom을 탑재한 제어기술을 도입해 전력제어장치의 첨단화는 물론 RS-485 통신기능을 통한 원격감시가 가능한 제품을 개발하기도 했다.

품질에서도 ISO9001, KS, UL, CE, CSA, TUV, Q마크 등의 품질인증을 획득했으며 제어 분야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전력보호기기 사업인 누전경보기(ELD), 지락검출용 계전기(GFR), 영상변류기(ZCT), 계기용 변성기류(CT, VT) 등을 개발했다. 이를 통해 현재 대기업 및 관련 중소기업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으며, 노이즈 제거용 트랜스(NCT), 밧데리 자동충전기를 개발·시판 중이다. 또한, 디지털화된 제품을 개발해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까지 널리 수출하고 있다.

20대에 젊은 패기로 시작한 회사를 지난 44년간 꾸준히 성장시켜 전력산업의 종합 솔루션을 제공하는 중견 전력·전자기기 제조업체로 자리매김시켰다. 그동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대한민국에서 어느 정도 인정받는 사람이 됐고, 인정받는 업체로 성장시켰다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골프는 내 인생의 활력소

 

사업과 더불어 내 인생을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골프이다. 내 인생은 골프를 하기 전과 골프를 시작한 후로 나눌 수 있을 정도로 골프 시작 후 180도 달라졌다. 사업을 하면서 항상 바쁘게 시간에 쫓기며 살았는데 골프를 시작하고 나서부터 인생의 예술적 의미를 발견하듯 주변을 돌아보고 삶의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됐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잠시의 여유도 허락하지 않을 정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게 아니라 바쁜 척했던 것 같다. 

건강 관리를 위해 처음 시작한 운동은 테니스였다. 20대 중반부터 한창 테니스에 빠져있다가 같이 테니스를 치던 친구들이 하나둘 골프로 옮겨가게 되면서 나도 따라 골프를 시작하게 됐는데, 그때가 38살 때였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접하게 된 골프가 이젠 나에게 있어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싱글 골퍼 입문

 

골프에 입문한 후 필드는 일주일에 1번 정도 나가고 매일 아침 연습장에 나가 꾸준히 연습했다. 첨엔 연습을 해도 똑같이 느껴지고 오히려 공이 잘 안 맞는 느낌이었지만 꾸준히 하다 보니 어느 순간에 실력이 점프했다. 연습장을 진짜 열심히 다녔다. 늘 제자리걸음인 것 같은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지만, 꾸준히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실력이 확 늘어있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시작한 지 8개월 만에 80타를 치고, 1년 안에 79타를 쳤다. 처음 골프 입문을 도와준 친구를 1년 만에 이겼다. 실력이 급속도로 좋아지다 보니 주변에서 단기간에 싱글이 된 비결이 무엇이냐고 많이 물었는데, 기본 운동신경에만 의존하지 않고, 매일 일과를 시작하기 전 아침 6시부터 골프 연습을 꾸준히 한 것이 도움이 됐다. 

골프의 매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냐는 질문도 많이 받는데 똑같은 골프장에서 천 번을 쳐도 똑같지 않은 점, 항상 끝없는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키는 점이 내가 생각하는 골프의 치명적인 매력이다. 

 

클럽챔피언 되기

 

캐슬파인 클럽챔피언

 

골프 실력을 어느 정도 쌓은 후 리베라CC 클럽챔피언전에 첫 출전 했다가 82타로 예선 탈락했다. 과거 챔피언들의 스코어를 보니 이 정도면 나도 겨뤄볼 만하겠다 싶었는데 평상시 치는 것과 챔피언전에서 치는 것은 확연히 달랐고, 패기 있게 응했지만, 첫 도전은 실패에 그쳤다. 

하지만 이후에도 도전을 멈추지 않고 플라자, 캐슬파인, 덕평 등에서 열리는 클럽챔피언전에 출전했고 2007년에 캐슬파인GC에서 첫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했다.  

 

덕평 클럽챔피언

 

챔피언 도전은 이후에도 이어져 2008년, 2010년 캐슬파인 챔피언, 2017년 덕평 챔피언이 되었다.  

클럽챔피언이 되고 나니 골프에 대한 애착과 실력이 더 향상된 것 같다. 챔피언이 되기 전에도 골프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갖고 있었지만, 챔피언이 되고 나니 아무래도 주위에서 많이 알아주었다. 그래서 챔피언으로서의 기본적인 조건은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에 챔피언이 되기 전보다 더 노력하게 됐고, 그러다 보니 당연히 골프에 대한 애착도 더욱 커지고, 기량도 더 향상되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챔피언전

 

도전했던 클럽챔피언전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나에게 4번째 챔피언 타이틀을 안겨준 2017년 덕평 챔피언전이다. 비가 아주 많이 오는 날 대회가 열렸고, 아마 고수들이 많이 출전했던 대회라서 기억에 많이 남는다. 

첫날 비가 엄청나게 내린 가운데 83타로 5, 6위권을 기록하고, 둘째날 73타를 치면서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 마지막 날까지 페이스를 지켜 75타를 치면서 덕평CC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했다.  

하지만 플라자CC에선 아직 한 번도 챔피언 자리에 못 올라봤다. 2001년 플라자CC 챔피언전에 나가 2라운드까지 4타차로 앞서다가 마지막 라운드에서 6오버파를 쳐서 오히려 2타 차이로 역전패 당한 걸 보면 플라자CC와는 인연이 없는 것 같다.

 

나만의 골프 즐기는 법

 

나는 지인들하고 운동할 때 항상 내기를 하자고 한다. 그냥 골프를 치는 것도 좋지만 내기를 하면서 오는 압박감과 승부욕을 즐긴다. 내기를 하지 않으면 집중력이 저하되고, 홀 아웃할 때까지의 긴장감이 결여돼 좋은 스코어를 갖기가 어려워지는 것 같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조그마한 내기를 걸고 치는 것이 집중력과 긴장감을 가지며 골프의 묘미를 한층 더 즐기기에 좋은 것 같다. 

가까운 지인들과 조그마한 내기를 하며 승·패에 너무 연연하지 않고 부담 없이 오랫동안, 건강하고 재미있게 운동하는 것이 향후 내가 하고 싶은 골프다. 

 

골프 예찬

 

나는 지금도 골프장에만 가면 그저 즐겁고 행복하다. 모든 골프장은 저마다의 특색이 있을 뿐만 아니라 골프 그 자체가 너무 좋기 때문이다. 오래 공을 쳤는데도 골프장만 가면 설렘을 느낀다. 생각하는 의도대로 됐을 때 특히 롱퍼팅을 성공했을 때 이루 말할 수 없이 좋다. 

봄이면 파릇파릇 돋아나는 잔디 속에서 봄바람을 맞으며 치는 재미가 있고, 여름이면 푸른 녹음 속에서 땀 흘려가며 치는 재미, 가을에는 휘날리는 낙엽 속에서 단풍을 즐기는 재미가 있다. 겨울이라고 운동을 안 할 수 없다. 겨울은 또 그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다. 눈밭에서 볼을 친 적도 있고, 꽁꽁 언 필드나 그린에서 볼이 통통 튀기도 하지만 그 모든 순간이 재미있다. 나는 골프를 한다는 그 자체가 너무 좋다. 맑은 공기 마시며 자연을 벗 삼아 라운드하기에 건강에도 큰 도움이 되는 운동이다. 주위에서 건강하게 골프 치는 비결에 대해 묻는데 매일 아침 사우나를 하며 몸을 푸는 것이 큰 부상 없이 골프를 즐기는 비결인 것 같다.    

 

알고 보면 로맨티스트

 

(사)한국JC특우회 회장 취임식에서 아내와 함께(2015년)

 

가족은 아내(민정애)와의 사이에 아들 둘을 두고 있다. 지금도 아내와의 첫 만남을 생각하면 정말 인연인가 싶다. 고3 방학 때 지방으로 무전여행을 떠났다가 상주에서 당시 여고생이었던 지금의 아내와 우연히 만나 펜팔을 하게 됐고, 그 인연을 이어가 6년 연애 끝에 결혼했다. 

사실 처음에는 처가에서 반대가 심해서 어렵게 결혼을 진행하고 결혼 후 5년간 처가에 왕래를 하지 않았다. 

그러다 인근 지방으로 출장 갈 일이 있을 때마다 처가에 들려 장인어른과 장모님께 마음을 전하게 되면서, 관계가 풀리게 됐고 지금은 우리 사위가 최고라고 하신다.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나 하나를 믿고 따라준 아내가 지금 생각해도 참 고마울 따름이다. 

아내는 우리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23년간이나 정성으로 모셨고, 사업으로 바쁜 나를 대신해 두 아들의 훈육과 교육에 힘썼다. 또 지금도 고추장, 된장을 직접 담가 먹을 정도로 살림에 열성이다. 여러 가지로 나에게는 참 고마운 사람이다. 

 

가족 단결도 골프로

 

아내, 두 아들과 함께한 필드 나들이

 

뭐니 뭐니 해도 나에게 최고의 동반자는 아내이다. 아내와 함께 골프를 즐기면 마음이 편안하고 흐뭇하다. 그래서 아내와 함께 골프를 할 때가 가장 행복한 것 같다. 남들은 부부가 같이 공을 치게 되면 싸운다고 하는데, 우리 집은 오히려 필드에 나가면 사이가 더 돈독해진다.

1달에 2번 정도 나와 아내, 큰아들, 작은아들이 모여 골프 회동을 한다. 나는 싱글, 두 아들은 80대, 아내는 90대 초반의 실력으로 네 명이 모여 핸디를 주고 간단한 내기를 하며 게임의 묘미를 더한다. 

아들들은 젊으니까 거리가 우세하고, 나는 오랫동안 쌓아온 내공으로 승부한다. 아내는 또박또박 치는 편이라 우리 가족끼리의 승부도 참으로 흥미롭다. 그래서 며느리들한테도 아이들을 어느 정도 키우고 나면 골프를 배우라고 회원권도 끊어주면서 적극적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을 작정이다. 

골프장에서 하루를 보내면 아무래도 평소보다 대화도 많아지고 서로 간의 속마음도 더 알게 돼 더없이 편하고 좋다. 가족들끼리 같은 취미를 갖고 함께 즐길 수 있다는 것이 큰 행복이다. 가족 골프는 나뿐만 아니라 아마 많은 골퍼의 즐거움이자 로망일 듯하다. 

 

봉사의 생활화

 

 

봉사도 내 삶의 한 축으로 생각해 젊었을 때부터 사회활동과 봉사에 관심을 가지고 28세에 (사)한국JC(청년회의소)에 가입해 사회봉사에 앞장서 왔고, 지금도 (사)한국JC특우회 멤버로 활동 중이다. 2015년 제32대 한국JC특우회 중앙회장도 맡았었다. 한국JC특우회 32대 중앙회장직을 수행하면서는 현역 회원과의 관계 개선, 현역 회원 배가운동, JC인의 긍지와 자부심 고취, 특우회 활성화 등을 위해 특히 노력했다.  

 

 

한국 JC는 리더십과 지역사회 개발과 세계 평화와 인류 복지 향상을 위한 기여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다. 한국JC특우회는 한국 JC 회원으로 활동하다가 명예롭게 전역해 한국 JC특우회에 가입한 회원으로 구성된다. 이 단체는 회원 상호 간의 우의와 친목을 돈독히 하며 한국JC의 발전을 지원하고 국가와 사회 발전에 기여함과 아울러 나라 간의 이해와 우의를 증진시켜 인류의 번영과 세계 평화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JC특우회 활동을 통해 장학사업을 하여 어려운 청소년들이 학업을 계속해 나갈 수 있도록 돕고, 외국인 근로자에게 기금을 전달하고 있다.  

 

골프와 인생

 

나는 내 분야에서 꾸준히 한길을 걸어온 사람이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꾸준한 재투자를 통해 사업을 확장하고자 했고, 약간의 오르막과 내리막은 있었지만 꾸준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 절약을 생활화하고 사업을 통해 수익을 실현한 이후에는 기술 개발과 재투자를 통해 회사를 키워왔다.  

기술력을 바탕으로 산업용 트랜스포머(Transformer), 무접점 전자 릴레이(SSR), 스위칭 파워서플라이(SMPS), 노이즈필터(Noise Filter), 누적 경보기, 각종 계전기 등 각종 전력보호·전자기기, 전력보호·제어 토털 솔루션의 국산화를 통해 연 20%대의 매출 신장을 이뤄왔다. 2015년 4월 24일에는 경기도 군포시에 있는 생산시설을 천안시 성환읍 성월리로 이전했고, 오랜 준비 기간과 투자로 천안공장을 건립하고 특허제품과 규격화된 다품종 소량생산방식의 생산능력을 갖추게 됐다.

(주)운영의 경쟁력은 전력 노이즈로 인한 자동장치 오작동, 불량 발생을 사전에 방지해주는 노이즈 컷 트랜스포머(NCT) 등 각종 특허제품과 함께 규격화된 다품종 소량 생산방식의 생산능력에서 찾을 수 있다. (주)운영은 보호기기 분야의 디지털화 및 지속적인 신제품 개발에 전념하는 기업으로 자동화 및 산업플랜트 분야에 관련 제품을 공급함으로써 전기산업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내가 느끼기에 ‘골프는 인생의 축소판’이다. 꾸준한 노력은 기본이지만 요행은 금물이다. 욕심을 내면 욕심낸 만큼 화를 얻게 되고, 마음을 비우면 비운만큼 잘 풀리는 듯 하다. 

일도 마찬가지이다. 마지못해 일하는 것보다 주어진 일을 즐기면서 열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다 보면 큰 어려움 없이 풀려나간다. 앞으로도 골프와 인생을 통해 얻은 교훈을 실천하며 꾸준히 노력하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

 

 

GJ 김혜경 이미지 GJ DB,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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