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신인의 오구 플레이
대형 신인의 오구 플레이
  • 박한호
  • 승인 2022.08.2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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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구 플레이로 위기를 맞은 KLPGA 대형 신인 윤이나. 오래전 라운드에서 친한 친구들을 속인 필자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가슴 한구석에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 이번 논란은 윤이나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게 될지도 모른다.

 

부끄러운 기억

 

내기골프에 한참 맛이 들어 거의 매주 골프장을 드나들던 20여 년 전 어느 날, 의기양양하게 모인 골프 꼴통(?)들이 매번 하던 대로 룰 미팅에 들어갔다. 버디가 나오거나 트리플 보기 이상이면 배판, 세 명 이상이 타수가 같거나 꼴찌가 원하면 무조건 배판, 새삼스레 다시 말하지 않아도 되지만 워낙 친하게 토닥거리며 지내는 사이고 조그마한 틈이라도 있으면 우기는 놈이 최고라 매번 라운드 할 때마다 한 번씩은 짚고 넘어가야 직성이 풀리는 분위기였다. 

첫 홀 순서도 뽑기로 정하지 않고 잘생긴 사람이 먼저 치기로 해 캐디에게 잘생긴 순서를 정해달라며 심술궂은 장난을 치기도 했다. 잘 치는 골프는 아니었지만, 모두가 그만그만한 실력이기에 내기골프를 해도 누가 큰돈을 잃거나 따지도 않아 편안한 마음으로 늘 같이 어울려 다닐 수 있었다.

웃고 떠들며 그렇게 시작한 라운드 4번홀에서 필자의 티샷이 심한 슬라이스로 우측 숲속으로 날아갔다. 친구들이 겉으론 안됐다 싶은 표정을 짓는 듯 했지만, 속으론 처음 몇 홀에서 따고 있던 내게 ‘쌤통이다’라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것 같았다. “지금 친 공은 T 빨간색 2번이야” 나름 정해진 룰대로 플레이하는 분위기고 공연히 공 찾으러 갔다가 슬며시 알까기(?) 했다는 의심을 받기 싫어 방금 친 공에 대해 먼저 말을 했다. 

숲 초입 비교적 평평한 곳에 공이 보였다. 자세히 확인해보니 T 빨간색 2번이었고, 그린 방향으로 방해하는 나무도 없는 너무 좋은 곳에 놓여있었다. 

“내 공 여기 있다”는 외침에 친구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 필자의 티샷은 그보다 훨씬 안쪽으로 들어간 것으로 생각돼 모두가 공이 살았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않았기에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하지만 분명 브랜드에 번호 색상까지 똑같은 공이었으니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세컨샷을 그림같이 온 그린 시키자 모두들 박수를 쳤고 그 영향이었는지 어렵게 홀 아웃한 친구들로부터 얼마의 돈을 받아 챙길 수 있었지만 찜찜한 그 무언가가 강하게 뒤통수를 잡아당기는 기분을 뿌리칠 수 없었다. 

사실 퍼팅을 하려고 공을 집어 드는 순간 ‘내 공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이미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겉으로 보이는 것은 똑같았지만 표면 까짐이 기존 사용했던 공과는 다르다는 것을 필자는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몇 푼내기 돈에 군침이 당겨 천연덕스럽게 친구들에게 공을 확인시켜주는 위선을 떨기까지 하고 말았다. 

그날 필자의 나머지 홀 플레이는 엉망이었고 그 홀에서 딴 돈의 몇 배를 더 잃고 뭔가 개운치 않은 무거운 기분에 짓눌려 어두운 얼굴로 라운드를 마칠 수밖에 없었다. 

 

대형 신인 윤이나의 등장과 몰락

 

올해 KLPGA에는 대형 신인 선수가 등장해 화제가 되었다. 한동안 스타 선수가 없었던 투어에 멋진 스윙과 시원한 장타로 많은 골퍼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윤이나의 등장은 단연 뉴스거리가 될 수밖에 없었고 KLPGA 인기를 한층 더 끌어올릴 것이란 기대를 하기에도 충분했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프로 선수로서는 입에 올리기에도 부끄러운 오구(Wrong Ball) 플레이를 하고 그 사실을 바로 알리지 않고 한 달여가 지나 신고해 골프계를 놀라게 했다. 룰을 몰라서 그랬을 리는 없고, 순간적인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거나 떠도는 말처럼 부모나 코치가 그냥 넘어가라고 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분명 잘못된 태도였다. 

 

투어 선수들의 오류

 

작년 ‘대유위니아 MBN 여자오픈대회’ 1라운드에서는 상금랭킹 1위를 달리던 박민지가 프로비저널볼이라고 말하지 않고 플레이 했다가 벌타를 받았고, 올해 ‘맥콜. 모나파크 오픈대회’ 최종 라운드에서 좋은 성적을 기록하던 박결이 경사진 벙커에서 수차례 모래를 밟아 스탠스를 개선했다가 벌타를 받는 일도 있었다. 

KLPGA 투어 선수들의 룰에 대한 인식과 지식이 누리는 인기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쉬운 일들이었다. 이런 룰 위반은 몰라서 그랬다면 선수 자질의 문제고, 알고도 그랬다면 프로 선수로서 분명 용서받을 일은 아니다. 

문제가 된 윤이나에 대해 대한골프협회(KGA)에서는 3년 동안 KGA 주최, 주관대회 출장을 금지하는 중징계를 내렸다. KGA 징계에 따라 KLPGA 투어도 윤이나에 대한 징계 절차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잠시 잘못된 생각이 골프 선수 생활에 지울 수 없는 오점으로 남게 될 것 같아 안타깝다. 참고로 윤이나 선수 사건에 대한 L 골프전문지의 설문조사에 의하면 70.2%의 골퍼들이 ‘미래가 있는 선수인 만큼 기회를 줘야 한다’는 의견이었고, 골퍼 본인들이 골프장에서 부정 플레이를 했다는 질문에는 66.7%가 ‘그렇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KLPGA에 바라는 점

 

KLPGA는 아마추어 골퍼들에게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고 지금의 인기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협회에서는 양적 성장만큼 소속 선수들을 위한 교육을 위해 어떤 노력을 얼마나 하고 있는지 되돌아봤으면 한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대회를 개최하고, 엄청난 중계권료와 부대사업으로 재정도 넉넉할 테니 단지 보이는 것에만 신경 쓰지 말고 선수들이 보다 성숙한 발전을 할 수 있도록 새로운 시스템을 마련하면 좋겠단 생각을 해본다. 

선수들은 현실적으로 시합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KLPGA 회원이 되고, 2부, 3부 투어에서 일정 성적을 거둬 상금이 많은 1부 투어로 진출하는 것을 최대의 목표로 삼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그 기간 동안 골프규칙이나 기본적인 소양을 위해 노력하고 공부하는 것보다 스윙을 연마하는 것에만 전념할 수밖에 없다. 이해한다. 하지만 좋은 스윙과 스코어로 게임에서 이기기만 하면 훌륭한 프로선수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골프계의 지도자들도 이제부터는 그저 좋은 성적을 위한 스윙을 훈련시키는 데만 집중하지 말고 프로골퍼로서 갖추어야 할 자질과 소양에 대한 교육과 조언도 늘 같이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지울 수 없는 상처

 

오래전 라운드에서 친한 친구들을 속이고 몇 푼내기 돈에 흔들려 잠시 바르지 못한 행동을 한 필자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가슴 한구석에 찡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 것을 보면 이번 일은 윤이나가 골프클럽을 놓는 순간까지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직 어리고 모든 면에서 충분히 큰 발전을 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으니 이번 실수를 거울삼아 새로운 선수로 커나갔으면 좋겠다. 

한 달이 아닌 20년이나 지나서야 지난 잘못을 고백하고 있는 필자는 윤이나에게 어떤 말을 할 자격도 없고 부끄럽기만 한 마음이 더 크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필자도 더 늦기 전에 그때 그 친구들을 골프장으로 초대해 옛날의 개구쟁이 같았던 분위기를 추억하며 가슴에 무겁게 자리하고 있는 잘못을 고백해야겠다고 다짐을 해본다. ‘잘못했다. 친구들아!’

 

 

GJ 박한호 이미지 KLP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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