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봉산업 송삼원 대표의 일과 골프 : 골프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태봉산업 송삼원 대표의 일과 골프 : 골프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 김혜경
  • 승인 2022.08.01 17: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골프는 인생’이라고 정의하는 그는 많은 역경과 고난을 이겨내고 우승을 성취함으로써 삶에 자신감을 주는 것이 골프인 것 같다고 말한다. 또 ‘골프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의 기록을 경신하기 위한 여정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핸디 1, 베스트스코어는 비공인 65타, 공인 69타이며, 장기는 벙커샷이다.

 

클럽챔피언전 통산 14승, 제1회 부산일보 골프대회 우승, BMW 지역대회 3승, 2019년 부산 MBC배 골프대회 준우승 등 다수의 수상경력을 자랑하는 태봉산업 송삼원 대표는 한국아마추어골프의 전설 중 한 명이다. 현재 다승 클럽챔피언 5위에 랭크되어있는 그는 골프는 인생의 축소판이며,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말한다.

 

PROFILE

㈜태봉산업 대표이사

한국미드아마추어골프연맹 부회장

양산시골프협회 회장

 

주요 전적

제1회 부산일보 골프대회 우승 

BMW 지역대회 3승 

2019 부산 MBC배 골프대회 준우승 

2019 전국 아마추어골프대회 단체전 우승(경남 대표)

 

챔피언 전적

동부산CC 2004년, 2008년, 2009년

보라CC 2005년, 2006년, 2007년, 2014년, 2016, 2019년

통도 파인이스트CC 2008년, 2010년, 2011년, 2012년

에이원CC 2012년

 

승부욕 강한 아이

 

나는 경상남도 창녕군 길곡면 시골에서 4형제 중 3남으로 태어났다. 하루에 차가 한두대 정도 겨우 다닐 정도로 작은 마을로 용성 송 씨 집성촌이었다.  

초등학교는 약 4km 정도 떨어져 있는 곳으로 다녔는데 거리가 멀어 친구들과 빨리 가기 내기를 하며 학교에 갔던 기억이 있다. 

축구, 씨름 등 어린 시절 다양한 운동을 좋아하고 잘했던 걸로 기억한다. 어려서부터 승부욕이 강해 지기 싫어하는 성격인데다 체력도 타고나고 운동신경도 좋은 편이라 운동을 하면 일등을 도맡아 했다. 

 

인생의 멘토 나의 어머니

 

고향 마을 입구에 있는 어머니 비석. 열녀, 효부, 효자상을 19회나 수상하셨다.

 

유년기를 돌아보면 어머니가 계셨기에 오늘의 내가 있을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한마디로 어머니는 내 인생의 멘토이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힘들거나 어려움에 부딪히면 항상 가족들을 위해 헌신하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극복할 수 있었다. 

내가 어렸을 적에 아버지가 중풍에 걸리셔서 늘 병마에 시달리셨는데, 어머니는 그러한 아버지를 35년 동안 지극 정성으로 보필하시면서 우리 4형제를 키워내셨다. 이러한 사연이 동네와 시골 면사무소, 군청에까지 소문이 나서 어머니는 창녕 군민대상 열녀상, 성균관 유림대상을 비롯 열녀, 효부, 효자상을 19회나 수상하셨다. 

아버지가 병환으로 누워 계시다보니 부유하지 못한 환경에서 자랐다. 어린 나이였지만 나는 “얼른 커서 사업을 해서 어머니와 가족을 경제적으로 풍요롭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항상 했다. 가족들 때문에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보며 돈을 많이 벌어서 꼭 호강시켜드려야지 하는 마음과 함께 내가 가난한 것은 내 잘못이 아니지만, 자식이 가난한 것은 내 잘못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기술을 배워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회사를 만들고 나처럼 가난한 환경에 있는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겠다는 꿈을 갖게 됐다. 어린 나이에 그런 생각을 한 걸 보면 또래답지 않게 생각이 좀 많은 아이였던 것 같다. 

 

새로운 출발

 

가정형편이 어렵다 보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고, 부산에 가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신발 제조 회사를 다녔는데 당시 신발 제조업은 전성기를 누렸고 해외 수출도 잘 되는 전도유망한 업종이었다. 이 회사에 근무하며 회사 운영 전반에 대한 기술과 노하우를 습득해 향후 창업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다졌다. 

어떤 일에 대한 기술과 노하우는 시간이 지나면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수많은 좌절 속에서도 항상 더 나은 것을 향해 연구하고 노력한 자에게 주어지는 땀의 결실이다. 성실하게 직장생활을 하며 노력했기에 이 시기를 통해 내 사업을 할 수 있는 내공을 다질 수 있었다. 

 

태봉산업의 시작

 

월급쟁이 생활을 마감하고 1995년 자동차 소음·진동을 차단하는 부품을 제조하는 회사 ㈜태봉산업을 창업했다. 사업을 시작하고 IMF 등 여러 난관 속에서도 안주하지 않고 오직 기술과 노하우를 배양하는데 혼신의 노력을 다한 결과 자동차용 소음·진동에 대한 흡차음용 우레탄폼을 개발 특허출원해 자동차 내장제 부품 전문업체로 성장 발전했다. 

현재 울산과 아산에 회사를 운영 중이며 매출은 약 600억 정도다. 주력제품은 자동차 흡차음제로 경력 35년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차량 운행 시 내·외부에서 불특정하게 발생하는 소음, 진동 방지에 다수의 특허 및 실용신안권을 보유하고 있다.  

물론 사업을 하며 탄탄대로만 걸은 것은 아니었다. 처음 회사를 창업해 1인 다역을 하며 운영하던 시기에 고객사의 부도로 자산의 대부분을 상실했던 고비도 있었지만, 거의 회생 불능 상태에서 직장생활에서 터득한 나만의 기술력으로 특허를 출원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지난 2011년에는 지방 기업 최초로 신용보증기업 스타기업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성실함과 발 빠른 영업력은 중견기업으로의 성장을 도운 힘이다.  

내 경영철학은 “만사불여일행. 만가지 일보다는 한가지 실행이 중요하다”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남보다 한 발 더 빨리 움직이고 결과를 도출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경쟁력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미래 먹거리로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고 있는 아파트 층간소음에 획기적인 소음, 진동 저감 제품을 연구·개발해 특허출원 대기 중에 있으며, 자동차 소음에서 얻은 기술을 타 업종에 접목해 매출 신장을 기대하고 있다.

또 생업으로 인해 미뤄두었던 학업은 늦은 나이에 대학교와 부산대 경영대학원을 수료해 마무리했다. 또래 친구들과 추억을 쌓지 못한 것이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이지만 원로(?) 학생으로서 학교 발전에 도움이 되려고 노력했다는 데 자부심을 갖고 있다. 

 

원인불명의 바이러스 감염

 

인생을 살아오면서 가장 큰 위기를 맞았던 때는 원인불명의 바이러스에 감염됐을 때이다. 2015년 유관단체 단체장으로서 해외 행사 일정을 소화하던 중에 감기 기운이 좀 있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간단한 감기약만 복용하고 일정을 마무리하고 귀가한 적이 있다. 

이후 집에서 몸조리 중 오한과 발열로 인해 근처 대학병원으로 긴급 후송돼 원인불명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감염 의심으로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받고 서울로 이송해 치료를 받았다. 

특별한 치료방법은 없고 오로지 중환자실에서 자신만의 의지력으로 회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체중이 30kg대로 떨어졌다. 결국, 5개월의 시간을 견딘 후에 일반병동으로 이관됐는데, 당시 체중 감소와 왼쪽 부분 마비로 타 기구에 의존하지 않고 걸을 수만 있으면 좋겠다는 희망으로 버텼다. 그리고 1년 동안 눈물 나는 재활 훈련을 했고 다행히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다. 

 

골프 입문과 싱글 스토리

 

 

내 인생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골프다. 골프는 IMF 시절 박세리의 US여자오픈에서의 맨발 투혼을 보고 감명받아 1999년 11월에 입문했다. 또 사업을 하다 보니 주위 사람들을 만나면 골프 이야기에 몰두하는 분위기에 편승해 골프를 하게 됐다.

타고난 운동신경과 근력으로 씨름, 축구 등에서 아마추어 고수급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기에 골프 또한 쉽게 고수 반열에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골프 입문 7일 만에 동료들과 생애 첫 라운드를 무모하게 강행했다. 

처음 골프장에 가서 클럽하우스 벽에 붙어있는 클럽챔피언들의 이름을 볼 수 있었는데, 라운드 중 그들의 기록이 아른거려 캐디와 동반자에게 어떻게 하면 그들처럼 될 수 있는지, 특전은 무엇인지 등의 질문을 하며 궁금증을 해소했다. 그리고 나도 꼭 클럽챔피언에 도전하리라고 마음 먹은 것이 골프에 몰입하게 된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다행히(?) 술을 안 마시다 보니 골프에 열중할 수 있었고 근처 골프장에서 배운지 4개월 만에 싱글을 달성했다. 사실 골프를 시작하고 가벼운 내기를 할 때마다 잃으니 더 오기가 생겼다.  3~4개월 동안 아침 운동을 1시간씩 하고 출근했고, 퇴근한 뒤에는 연습장 문을 닫을 때까지 연습했다. 열정적인 연습이 빠르게 싱글이 된 비결인 셈이다.  

특이점이 있다면 레슨은 받아본 적이 없이 혼자 독학을 했다는 점이다. 회사를 운영하다 보니 연습할 시간이 항상 부족해서 나만의 연습방법을 연구했다. 틈날 때마다 골프 관련 서적을 완벽하게 이해가 될 때까지 수백 번 정독해 읽었고, 연습장 및 필드에서 그대로 구현될 때 성취감을 느꼈다. 이것이 최단 시간에 정상의 경지에 이를 수 있었던 나만의 비결이다. 

가끔 주변에서 고수가 되는 법을 묻는데 고수가 되는 데 특별한 것은 없다. 모든 것은 책에 다 나와 있다. 단, 잊지 않도록 매일 책을 보고 기본을 충실히 하는 게 중요하다. 대신 처음 배울 때 정확히 배워야 한다.

 

생애 첫 클럽챔피언 되기

 

 

처음 골프장에 갔을 때부터 클럽챔피언에 대한 동경의 마음을 갖게 된 나는 골프 입문 5년 만에 챔피언이 되었다. 골프에 입문한 뒤 2년 만에 에이원CC 클럽챔피언전에 나가 준우승을 하면서 자신감을 얻었고, 2004년 동부산CC에서 생애 첫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했다. 이 기록은 현재까지 골프 입문 후 역대 최단기간이자 최연소 챔피언 기록으로 지역 골프계에서 회자되고 있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클럽챔피언이 되고 골퍼로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것 같다. 주위의 시선을 받고 있다는 생각에 행동에 있어서도 올바르게 잘하려고 노력하게 되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면서, 멘탈도 더 좋아지고 모든 면에서 성장한 것 같다. 클럽챔피언은 다른 사람에게 귀감이 되어야 하는 만큼 앞으로도 이러한 노력을 계속 이어갈 것이다.

 

잊지 못할 클럽챔피언전

 

2019 보라CC 클럽챔피언전

 

골프를 하며 짜릿했던 기억도 감동적인 기억도 많다. 2007년 통도 클럽챔피언전에서 18홀에서 동타를 만들어 연장전에 돌입해 연장 7홀에서 유리한 기회를 포착해 우승을 차지한 것, 2017년에 불편한 몸으로 보라 클럽챔피언전에 출전해 우승한 것, 2019년 보라 클럽챔피언전에서 마지막 날 역전 우승을 차지한 것은 정말 잊지 못할 추억이다. 

2019년 당시 투병 후 신체적으로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테스트 겸 즐기자는 입장으로 참가 신청을 했고 1, 2라운드까지 선두와 7타차이가 나던 것을 파이널 라운드 18번홀에서 역전하고 보라 클럽챔피언에 오른 것은 지금 생각해도 감개무량하다. 

크게 앓고 난 후 클럽챔피언전에 계속 도전할 수 있음에 감사한 경기였다. 또 이 대회를 통해 ‘골프는 어떤 결과가 나올지 끝까지 지켜봐야 안다, 장갑을 벗어봐야 안다’는 말을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다.   

 

가장 자랑스러운 기억

 

 

그동안 동부산 3승, 보라 6승, 통도 파인이스트 4승, 에이원 1승 등 클럽챔피언전 통산 14승을 기록했다. 이외에도 제1회 부산일보 골프대회 우승, BMW 지역대회 3승, 2019년 부산 MBC배 준우승, 전국 아마추어골프대회 단체전 우승(경남 대표) 등의 전적을 보유하고 있다. 

여러 대회에서 많은 우승을 차지했지만 갑작스러운 병으로 골프를 그만둘 수도 있었던 상황에서 재기해 2019년 전국아마추어골프 메이저대회인 부산 MBC배 골프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기록과 앞서 2015년 경상남도 대표로 출전해 전국 아마추어골프선수권대회 단체전 우승을 견인한 것이 내 골프 인생에 가장 자랑스러운 기록이다.

 

 

나는 골프를 통해 자신감과 성취감을 맛보았다. 골프를 통해 비즈니스에도 도움을 받았고, 원인불명의 바이러스에 걸려서 투병 생활을 하던 중에도 ‘꼭 건강해져서 다시 골프를 치고 싶다’는 마음이 지치지 않고 재활 훈련을 하는데 큰 동기 부여가 됐다. 골프는 내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한 친구 같은 존재인 셈이다.

그래서 지금도 시간이 날 때면 연습장에 가려고 노력하고,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골프 관련 서적을 몇 번이고 이해될 때까지 정독하고 이미지 스윙을 해보며 실력 유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 골프로 인해 많은 것을 얻은 만큼 양산시골프협회장과 한국미드아마추어골프연맹 부회장으로 취임해 아마추어 골프 저변 확대에도 힘쓰고 있다.  

 

나의 사랑, 나의 가족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가족은 아내(손예영)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 아내는 직장 생활 중에 만났다. 직장생활 중에 똑 부러지는 일 처리 능력과 검소한 생활력에 반해서 여러 번 대시한 끝에 사귀게 됐고 결혼에 성공했다. 

1995년부터 사업을 시작해 늦은 귀가와 출장 등으로 인해 가정에 소홀했음에도 무리 없이 잘 내조해준 어진 아내에게 항상 감사하고 있다. 지나고 보니 사업에 몰두한다는 핑계로 아내와 아이들에게 너무 부족했던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다. 

그사이 어느덧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지금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같이 가족 골프를 즐길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요즘은 자녀들과 만나면 골프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아직 실력이 부족해 많은 부분을 묻고 답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골프를 공통 분모로 가족애가 깊어지는 것 같다. 골프가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운동이라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외된 이웃과 희망 나누기

 

나 역시 부유하지 못한 환경에서 태어나 누구보다도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 어린 시절부터 어려운 이웃들에게 도움을 주겠다는 생각을 항상 갖고 살았다. 

이에 대한 실천으로 군내 산불 피해 복구 지원금,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사랑의열매 천사계좌 등 수많은 물질적 도움을 주었다. 또 일시적인 도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상시기구를 설치해 꾸준히 도움을 주고자 2003년 태봉 나눔장학회를 설치했고 불우한 환경의 학생 및 주민에게 매년 정기적으로 일정 금액을 지원하고 있다.

다른 사람을 도우면서 기억에 남는 일은 울릉도 소재 고등학생, 초등학생 남자 형제에게 학비와 생활비를 2년 정도 지원해 감사의 편지를 받은 것이다. 이후 두 형제가 건실한 사회 일원으로 성장해 살아가는 소식을 전해들었을 때 매우 큰 보람을 느꼈다

소외된 불우이웃이 조금 더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도록 인정을 베풀며 살고 싶다. 펜데믹, 미·중 패권 다툼, 우크라이나 사태,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물가 폭등 등 매우 불안정한 사회구조에서 따듯한 한 알의 밀알이 되고자 노력하고, 이웃의 고통을 진심 어린 마음으로 바라보며 같이 헤쳐나가는 동반자가 되고 싶다.

더불어 개인적인 바람으로 사업적으로는 자식들에게 기업이 잘 승계되어 더욱더 번창한 기업으로 성장 발전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누구나 입사하고 싶은 건실한 강소기업이 되었으면 한다. 골프에서는 체력이 허락하는 한 클럽챔피언 다승 기록 도전에 계속하고, 에이지슈트도 달성하고 싶다.

 

 

GJ 김혜경 이미지 GJ DB, 이상효, 송삼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하단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