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잡이 골퍼의 설움
왼손잡이 골퍼의 설움
  • 김상현
  • 승인 2022.05.18 17: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골프는 왼손잡이라고 크게 유리하지도, 불리하지도 않은 종목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대한민국에서는 왼손잡이 골퍼를 찾아보기 힘들까?

 

왼손잡이에 대한 차별

 

“난 왼손잡이야~” 그룹 패닉의 1집에 수록된 노래 ‘왼손잡이’의 한 구절이다. 오른손잡이가 주류인 세상에서 왼손잡이로 상징되는 비주류의 설움을 노래한 이 노래는 왼손잡이가 겪는 차별은 과거의 일이 아닌 ‘현재 진행형’임을 알려주고 있다.

사전적 의미에서의 ‘왼손잡이’만을 위해 만들어진 노래는 아니지만, 여전히 왼손잡이는 사회적으로 비주류에 속하며 설움 또한 많이 겪고 있다는 점을 알려주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물론 오른손을 ‘바른 손’이라고, 왼손을 ‘그른 손’이라 부르던 시절과 비교하면 왼손잡이에 대한 처우는 크게 나아졌다. 또 대한민국을 포함한 대부분 국가에서 오른손은 우월하고 왼손은 열등하다는 인식은 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왼손잡이는 유형무형의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 직접적인 차별은 없어도 소수자라는 이유로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

 

골프와 왼손잡이

 

하지만 스포츠계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오른손잡이가 다수, 왼손잡이가 소수라는 건 페널티가 아닌 어드밴티지일 수 있다. 특히 상대 선수와 직접 부딪치는 유형의 종목에서는 왼손잡이가 어드밴티지인 경우가 많다. 특히 야구, 검도, 탁구 등이 왼손잡이에게 유리한 스포츠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골프는 어떨까? 보통 골프는 ‘왼손잡이에게 메리트가 없는 종목’으로 분류된다. 경기 방식이나 스타일로 볼 때, 왼손잡이에게 크게 불리한 건 아니지만, 유리하다고 보기도 어렵다. 야구나 검도처럼 두 선수나 두 팀이 직접 마주하면서 부딪치는 경기가 아니며, 상황이나 지형에 따라 오른손이나 왼손에 유리한 상황이 교차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오른손잡이가 왼손스윙을 하는 경우도, 반대의 경우도 해외에서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조니 밀러, 그렉 노먼, 커티스 스트레인지 등은 왼손잡이가 오른손 스윙을 해서 대박이 났고, 필 미컬슨, 마이크 위어 등은 오른손잡이가 왼손 스윙을 택해 대박이 났다. 즉, 골프는 왼손잡이라고 크게 유리하지도, 불리하지도 않은 종목이라 할 수 있다. 장비만 제대로 구할 수 있고, 또 제대로 배울 수 있다면 말이다.

 

대한민국에서 왼손 골퍼로 살아남기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에서는 그렇지 않다. 국내에서 왼손잡이 골퍼는 드물다. 아마추어에서는 종종 볼 수 있지만, 프로 선수 중에서는 정말 보기 어렵다. KPGA와 KLPGA 통틀어 현재 투어를 뛰는 왼손잡이 골퍼는 정이연 한 명뿐인 것으로 알려졌다. 비율로 따지면 0.1%도 안 되는 셈이다. 대한민국 국민 중 왼손잡이가 5%는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단히 낮은 수치다.

왜 대한민국에서는 왼손잡이 골퍼가 드물까? 이유는 분명하다. 왼손잡이 골퍼로 살아남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먼저 왼손잡이는 골프 장비를 구하는 것부터가 어렵다. 왼손잡이용 장비를 취급하는 브랜드는 여럿 있지만, 종류나 물량이 오른손잡이용에 비하면 크게 부족하다. 국내 골프 장비의 95% 이상이 오른손잡이용으로 만들어진다고 할 정도다. 클럽만 해도 유명 브랜드라면 왼손잡이용을 어느 정도 갖춘 곳이 많지만, 왼손잡이용 클럽은 생산하지 않는 곳도 여럿 있다. 이외의 장비도 마찬가지다. 왼손잡이용은 구하기도 쉽지 않고, 가격도 비싼 경우가 많다.

어찌어찌 장비를 갖춘다 해도 배우는 것도 문제다. 국내의 골프연습장은 물론 스크린골프장도 철저히 오른손잡이 위주로 설계되어 있다. 그나마 스크린골프장은 좌우타 겸용 설계가 된 곳이 많아 사정이 낫다. 골프연습장의 왼손잡이용 타석은 숫자도 부족하거니와, 오른손잡이용보다 비싼 비용을 요구하기도 한다. 또 레슨 프로도 거의 오른손잡이다. 오른손잡이 레슨 프로가 왼손잡이 골퍼를 가르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의 쓰는 손이 다르다’는 건 레슨의 질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

결국 대한민국에서 왼손잡이 골퍼는 유형무형의 차별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인구의 5%가 왼손잡이인데, 왼손잡이 프로는 0.1%도 안 된다는 건 왼손잡이 골퍼를 향한 차별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증거다. 제도적으로, 혹은 의식적으로 차별하지 않는다고 해도 왼손잡이가 골프를 배우기도 어렵고, 프로가 되기는 더욱 어렵다면 차별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왼손잡이 골퍼 차별 문제의 해법

 

어떻게 왼손잡이 골퍼 차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경제적인 논리로는 해결이 어렵다. 대한민국 국민의 5%가 왼손잡이인데, 5%가 불편하지 않게 제품을 생산하고 시스템과 인프라를 갖추는 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소수의 왼손잡이 골프용 장비를 꾸준히 생산하는 브랜드는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왼손잡이 장비를 생산하지 않는 업체를 무작정 비난하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절실한 건 업계의 의식 개선이다. 왼손잡이도 엄연히 골프를 즐길 권리가 있고, 공정한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음을 업계 모두가 알고, 문제를 하나하나 고쳐나가야 한다.

먼저 왼손잡이 골퍼를 의식적으로, 혹은 제도적으로 차별하는 행위는 중단되어야 한다. 특히 자리 부족이나 물량 부족 등을 이유로 왼손잡이용 장비나 타석 등을 과도하게 비싸게 받는 건 금지되어야 한다. 나아가 업계 전반에 걸쳐 왼손잡이 골퍼에 대한 지원 및 배려의 필요성을 꾸준히 상기하고 상황을 점점 개선해 나갈 필요가 있다.

왼손잡이 골퍼의 설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며, 하루아침에 해결하기도 어렵다. 의식적인 차별이나 불공정 행위는 금지할 수 있지만, ‘돈이 안 되니까 투자할 수 없다’는 논리를 무작정 비판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왼손잡이 골퍼의 설움을 풀려면, 일단 차별이나 불공정에 속하는 행위는 금지하고, 업계 모두가 왼손잡이 골퍼에 대한 ‘소수자 배려의 정신’을 키워나가는 게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아닐까.

 

 

GJ 김상현 이미지 GettyImages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구태우 2024-02-13 19:38:31
이글에 같은 왼손잡이 골퍼로서 깊은공감 표합니다!
최소한 우리나라 스크린골프장에 의무적으로 좌타석을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

하단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