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와 정권의 상관관계
골프와 정권의 상관관계
  • 김상현
  • 승인 2022.03.07 17: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5년에 한 번 전 국민의 정치에 관한 관심이 가장 높아지는 시기, 대통령 선거가 코앞에 다가왔다. 차기 대통령을 뽑는 대선을 코앞에 앞둔 이때, 역대 정권에서 골프를 어떻게 바라보고, 나아가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골프과 정권의 상관관계’에 대해 알아보자.

 

골프 시대를 연 이승만

 

 

이승만 전 대통령은 해방 후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자, 한국에 골프 시대를 본격적으로 연 대통령이기도 하다. 물론 해방 이전에도 골프장은 있었다. 개화기이던 19세기 말 외국인들이 소규모의 골프장을 건설한 바 있으며,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인들의 주도로 골프장이 여러 곳 지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일제가 2차 세계대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병참기지 역할을 강요받은 한반도 전체가 큰 피해를 당했고, 골프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시기 전국의 모든 골프장이 농경지나 비행장 등으로 전용되어 해방 직후에는 제대로 된 골프장이 하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 사실을 안 이승만은 미국과의 외교 및 고위층의 사교를 목적으로 골프장 건설을 명령했다. 이에 6·25 이전에 해방 후 최초의 골프장이 만들어졌고, 6·25 전쟁 후에도 미군 기지에 골프장 건설을 허용하고 한국 아마추어 골프대회를 창설해 직접 시상을 하는 등 골프 발전에 이바지했다.

 

골프에 부정적이었던 윤보선과 장면

 

이승만 이후 잠시 집권한 윤보선 전 대통령, 그리고 이 시기 실질적인 국가원수로서 권력을 행사한 장면 전 부통령은 골프에 관심이 없거나, 부정적으로 생각했다고 알려졌다. 윤보선은 대통령이 직접 시상하던 한국아마추어골프대회에 참여하지 않았고, 별다른 지원책도 내놓지 않았다. 장면 부통령 역시 이승만 집권기부터 이미 골프에 다소 부정적인 견해를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두 사람이 집권한 2공화국은 출범 후 불과 1년 만에 5·16쿠데타로 무너졌기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골프 정책을 전개할 시간이 없었다.

 

골프를 독려했던 박정희

 

 

5.16으로 집권한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군인 시절에는 골프와 별다른 연이 없었다. 1961년 7월 4일 동아일보에서는 한 소식통을 인용해 ‘그(박정희)는 미군이나 다른 유엔군 장교들과 골프를 한 번도 치지 않은 한국군 장교다’라고 보도했다. 

‘별’을 달 정도면 한국군이나 미군 장성들과 친교를 위해서라도 골프를 치는 게 당연시되던 시기에도 골프의 ‘골’자도 몰랐던 것이다. 사실 이 보도는 쿠데타 성공 직후 집권한 박정희에 대한 띄워 주기성 기사였지만, 실제 박정희가 집권하기 전 골프와 연이 없었다는 건 교차 검증이 되는 부분이다. 

집권 후 박정희는 골프에 빠져들었다. 마침 좋은 레슨프로도 있었다. 1960년대 최고의 프로 중 한 명으로 꼽히던 한장상이 당시 육군에 입대해 이등병을 달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정희는 한장상의 레슨과 청와대 연습 등으로 실력을 키워나갔고, 본격적인 골프팬이 되었다. 

능동 서울CC가 그가 즐겨 찾는 골프장이었고, 스스로 골프를 즐긴 건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도 적극 독려했다. 정치가, 기업인, 법조인 가리지 않고 골프를 권했다. 

당시 골프장은 정치 무대가 되기도 했다. 비슷한 일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있었지만, 박정희 시대에 골프 정치는 절정에 달했다. 박정희의 총애를 받는 위정자는 그와 함께 골프장을 따라다녔고, 총애를 잃은 사람은 어느새 모습을 감추었다. 박정희 정권하에서 잘나가던 인사 여럿이 정계를 떠나야 했던 ‘윤필용 사건’처럼 골프장에서 본격적으로 촉발된 정치 사건도 있었다. 이 때문에 박정희가 골프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었다는 악평도 나온다. 

하지만 박정희가 골프를 발전시켰다는 점 또한 부인하기 어렵다. 박정희는 골프장 건설에 적극적이었고, 제도적인 지원 역시 많이 해주었다. 박정희의 충복으로서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권력자였던 김형욱이 한국프로골프협회(KPGA)를 창설하는 데 주된 역할을 한 것이 좋은 예다. KPGA의 창설에 직접 적극적으로 나선 건 김형욱이었지만, 박정희의 허락 없이 KPGA 창립 같은 큰일을 했을 리는 없다. 박정희 집권기 동안 골프계를 향한 유형무형의 지원은 적지 않았고, 이는 그의 정치적 평가와는 별개로 한국 골프가 발전하는 데 크게 이바지하게 된다. 

 

전두환의 골프 자제와 내인가 비리의 이중성

 

 

전두환 전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 최고의 골프 애호가로 꼽힌다. 하지만 재임기 때는 골프계에 눈에 띄는 지원을 해주거나, 골프를 열렬히 즐기지는 않았다. 쿠데타로 집권하고 5.18 광주 민주화 운동 탄압 등 숱한 논란을 일으킨 터라 이미지가 썩 좋지 않은 골프까지 마음대로 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시각이 있다. 

실제로 전두환은 재임기 때는 골프를 자제했으며, ‘골프 비판’도 했다. 1981년 4월 18일 매일경제 기사를 인용하면, 이날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전두환은 ‘일부 중소기업인들이 자기 분수에 맞지 않는 생활을 하고 있다는 얘기가 있다. 별로 재무구조도 좋지 않은 중소기업가가 골프도 치고 비싼 자가용을 사며 요릿집에 가는 전염병 같은 부실 풍조가 시정되지 않고서는 이들 기업의 국제 경쟁력은 절대로 강화될 수가 없다’며 직접 비판하기도 했다. 

실제로 전두환 본인도 외교 활동 등을 제외하면 골프는 자제했고, 이에 공직자들도 알아서 골프를 멀리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전두환이 ‘나는 골프를 자제하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골프를 쳐도 좋다’고 말했다는 일화도 있다.

악명 높은 ‘내인가’가 기승을 부린 것도 이 시기다. 내인가는 골프장 사업을 하기 위해 사전에 청와대의 허락을 얻는 것을 뜻했다. 심지어 내인가는 정식 행정 절차도 아닌 암묵적인 행위였고, 부정부패의 온상이 되었다. 전두환 재임기 때도 ‘청와대에 뇌물을 바치지 않으면 골프장 건립이 어렵다’는 내인가에 관한 소문이 돌았고, 그의 퇴임 후 소문이 사실로 밝혀지며 5공화국의 대표적인 부정부패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또한, 퇴임 후 전두환은 본격적으로 골프를 즐겼는데, 5.18 광주 민주화운동 탄압과 추징금 미납 등 숱한 논란에도 자숙하지 않고 골프장을 드나들며 더 큰 비판을 받았다.

 

노태우가 연 골프 공화국의 시작

 

 

노태우 전 대통령도 골프를 즐겼다. 개인적으로 골프를 즐기는 건 물론, 골프 발전에도 기여했다. 먼저 악명 높은 내인가를 폐지했으며, 대신 골프장 건설 권한을 시장이나 도지사에게 위임했다. 이에 골프장 건설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며, ‘골프장 붐’이 일어났다. 그의 재임기에 인가된 골프장은 무려 139개였고, 덕분에 노태우야말로 대한민국을 골프 공화국으로 만든 인물이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하지만 악명 높은 ‘노태우 비자금 사건’이 불거지며 그의 친골프 정책 역시 논란이 되었다. 수천억원에 달하는 노태우 비자금의 규모를 고려하면 골프장에서 받은 비자금도 적지 않으리라는 의견이 나왔고, 심지어 골프장 비자금만 수천억원에 달할 것이라는 소문까지 돌았다. 하지만 골프계와 노태우 비자금이 직접적으로 관련되었다는 증거는 없었다.

 

김영삼과 골프 암흑기

 

 

김영삼 전 대통령 재임기는 ‘골프 암흑기’로 불린다. 일단 본인이 골프를 썩 잘 치지 못했고, 좋아하지도 않았다. 실제로 김영삼은 골프 때문에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1989년 김종필과 ‘골프 회담’을 가졌다 그만 티샷 실수로 엉덩방아를 찧었고, 이 장면이 언론에 포착된 것이었다. 

이러한 개인감정 때문은 아니겠지만, 김영삼은 집권 후 국민 위화감 조성, 청와대 쇄신 등의 명분을 내걸고 스스로 골프를 치지 않겠다고 공언함은 물론 골프 금지령까지 내렸다. 

청와대 골프연습장은 철거되었고, 공직 사회는 물론 재계에서도 골프를 자제해야 했다. 심지어 미국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었다.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클린턴 측은 골프 회동을 원했지만, 김영삼이 골프를 치지 않겠다는 국민과의 약속을 이유로 거절했고, 결국 두 사람은 ‘조깅 회동’을 가졌다. 

물론 민주주의를 내걸고 집권한 김영삼이 직접 ‘골프 탄압’을 운운하지는 않았다. 전두환이 그랬듯 ‘나는 골프를 치지 않겠지만 공식적으로 금지하는 건 아니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었다. 하지만 ‘윗물’이 골프를 멀리하면서 ‘아랫물’까지 영향을 받았다. 골프장 회원권 값이 폭락해 회원권 투매까지 벌어진 시기였다.

 

유연한 정책을 편 김대중

 

 

김대중 전 대통령 재임기는 김영삼 시기보다 나았다고 평가된다. 사실 김대중은 야당 시절부터 ‘골프장을 없애 논밭을 만들자’는 언동을 한 바 있고, IMF 사태 이후 취임을 한 그라 ‘사치 스포츠 추방’ 등의 명분으로 골프를 탄압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취임 이후 김대중은 꽤 유연한 정책을 펼쳤다. 

먼저 김영삼 시기 공공연히 시행되던 공무원 골프 금지령이 해지되었고, 골프 대중화를 강조하며 대중제 골프장 건립도 활기를 띠었다. 박세리, 김미현 등 ‘국민 영웅’의 활약도 이 시기 골프 대중화 정책에 큰 힘이 되었다. 재임기에도, 퇴임 후에도 특별히 골프 논란을 만들지는 않았다.

 

제2의 골프붐을 일으킨 노무현

 

 

노무현 전 대통령은 노태우에 이어 ‘제2의 골프붐’을 일으킨 대통령으로 평가된다. 그의 골프계 업적은 ‘전국 골프장 230개 건설 및 대폭적인 규제 완화’로 요약되며, 노무현 자신도 골프를 즐긴 것으로 알려졌다. 노무현 본인은 재임기나 퇴임 후에도 특별히 골프와 관련된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았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골프와 관련된 문제나 논란을 일으켰다. 노무현 재임기 ‘책임총리’로 불리며 막대한 실권을 쥐었던 이해찬 총리가 숱한 골프 논란 끝에 물러나기도 했다.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의 골프 정책

 

 

이명박 전 대통령도 비교적 친골프 정책을 펼쳤다. 특히 그는 ‘서비스산업 선진화 방안’을 통해 골프장 세금을 인하하고, 골프장 건립의 각종 규제를 더욱 완화하는 정책을 수립했다. 사실 이명박 본인은 골프보다는 테니스를 즐겼지만, 골프계 입장에서는 친골프 대통령으로 분류할 수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취임 후 한동안 골프를 마뜩잖게 보았다. 재임 초기에 북한의 핵실험으로 안보 위기가 불거진 가운데 현역 군 장성들이 군 전용 골프장에서 골프를 쳐 논란이 불거진 후, 한동안 골프에 비판적인 언동을 했고, 공직 사회는 이를 ‘골프 금지령’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후 내수 활성화 등의 명분으로 국내 골프를 독려하는 등 친골프 행보를 보여주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문재인 대통령은 개인적으로는 골프를 즐기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일만 잘하면 공직자가 골프를 치는 것은 문제없다’는 사고방식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골프계에 끼친 영향은 퇴임 후 제대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정권의 영향을 받는 골프

 

 

이처럼 골프는 좋든 싫든 그 시기 대통령과 정권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그렇다면 올해 대선은 골프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유력 후보들을 살펴보면 골프를 관심 있게 지켜보며 관련 정책을 내놓은 후보도 있고, 골프에 대해서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 후보도 있으며, 예전부터 골프장 건설 등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높여온 후보도 있다. 

골프계는 아무래도 골프에 관심 있고 지원을 해줄 후보가 당선되기를 원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골프를 사랑하는 대통령이라도 국정에 소홀하고 나라를 망친다면 아무 소용없다. 대통령은 골프계의 우두머리가 아닌, 대한민국의 수많은 대소사를 책임지는 위치이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에서는 아무쪼록 대한민국 전체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후보, 그러면서도 대한민국 골프를 좀 더 발전시킬 수 있는 후보가 당선될 수 있기를 고대해 본다.

 

 

GJ 김상현 일러스트 최신엽 사진 GettyImages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하단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