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골프인들의 일탈과 범죄의 역사
한국 골프인들의 일탈과 범죄의 역사
  • 김상현
  • 승인 2022.03.0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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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골프 리조트 오너의 아들이 성범죄 혐의를 받으며 큰 논란이 됐다. 이 사건 이후 새삼 주목받고 있는 골프인들의 일탈과 범죄에 대해 알아보자.

 

골프 리조트 오너 아들의 어두운 사생활

 

골프계 거물, 정확히 말하자면 거물의 아들이 큰 논란을 일으켰다. 한 유명 골프장 리조트와 언론사를 운영하는 모 기업 회장의 아들 A 씨가 성범죄 혐의를 받은 것이다. A 씨는 여러 여성과 성관계하는 장면을 촬영한 뒤 이를 불법 소장한 혐의를 받고 체포되었으며, 체포 전 과정도 논란이 되었다. 

A 씨는 처음 이 사건을 취재한 언론과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녹음해도 된다’라며 당당한 태도를 유지하다 취재진이 증거 자료를 내놓은 뒤에야 말이 바뀌는가 하면, 인터뷰 후 언론사에서 자신들이 확보한 증거들을 경찰청에 전달하자 곧바로 해외 도주를 시도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경찰이 재빨리 손을 써 A 씨는 해외 출국 직전 붙잡혔고, 결국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이 사건은 처음 취재를 한 언론은 물론 국내의 수많은 언론에 보도되며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피의자 A 씨의 태도와 죄질은 물론, 그가 ‘골프계 거물 2세’라는 점도 공분의 대상이 되었다. 피의자의 아버지는 골프계와 종교계, 언론계를 아우르며 활동하던 ‘업계 거물’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A 씨 본인은 물론, 아버지의 얼굴에도 먹칠한 셈이 되었다.

 

개념 없는 상류층의 범죄

 

물질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아무런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골프 거물 2세’의 일탈 사건. 물론 사회적으로 공분을 샀지만, ‘올 것이 또 왔다’라는 시니컬한 반응도 적지 않았다. 스스로 자수성가하여 상류층의 자리에 오른 사람이든, 혹은 상류층의 2세, 3세로 태어나 처음부터 부족함 없이 살아가던 사람이든 각종 일탈을 벌이고 나아가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는 드물지 않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개념 없는 상류층 본인이나 그 2세’가 각종 픽션에서 ‘빌런 캐릭터’로 자주 등장하겠는가.

상류층이나 그 2세, 3세가 일탈을 저지르고 나아가 범죄를 저지른 예는 셀 수도 없이 많다. 골프 업계만 한정 지어도 그 사례들은 결코 적지 않다. A 씨 사건 이후 새삼 주목받고 있는 ‘골프 거물’의 일탈과 범죄에 대해 알아보자.

 

과거 골프인들은 윤리적이었을까?

 

골프인이 각종 범죄에 휘말리는 건 예전부터 있었고,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범죄라는 건 사회의 모든 계층에서 다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골프인의 범죄를 살펴보면 과거에는 드물다 점점 자주 언론 등에 오르내리는 게 눈에 띈다.

70년대 이전까지는 골프 거물, 혹은 그 2세가 눈에 띄는 범죄를 저지른 사례는 의외로 찾기 어렵다. 그보다는 골프장을 무대로 한 각종 부정부패 사건이나 추문, 혹은 골프장이나 그 주변에서 벌어졌을 뿐 골프인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는 범죄 사건들이 더 눈에 띌 뿐이다. 그렇다고 ‘당시엔 골프인들이 깨끗했고, 지금 골프인들은 그보다 비윤리적이다’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옛날에는 골프인의 숫자, 특히 골프인 중 상류층이나 사회 지도층으로 분류할 수 있는 관계자가 적었고 그만큼 사회적인 관심도 약했을 뿐이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의 골프는 귀족 스포츠라 불리며 대중과는 거리가 멀었고, 골프장의 숫자도 골프인의 숫자도 적은 편이었다. 골프인도 적고, 그중 상류층이나 사회 지도층은 더욱 적으니 이들이 일탈을 저지르거나 범죄를 저지르는 사례도 적고, 사회적 관심도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왕릉 잔디 도난 사건

 

골프인의 일탈과 범죄가 서서히 관심을 끌기 시작한 70년대 사건 몇 개를 살펴보자. 먼저 1971년 6월에 터진 사건이다. 

당시 한 골프 관계자는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범행을 저질렀다. 논산에 있는 후백제의 왕 견훤 무덤에 덮인 잔디를 쓸어간 것이다. 이 황당 사건을 저지른 피의자는 골프장 보수공사에 필요한 잔디를 가져가겠다며 견훤왕릉이 있는 산의 주인에게 값을 치른 뒤, 무덤의 잔디를 가져가려 했지만, 지역 주민들에게 발각되어 실패로 돌아갔다. 

피의자가 구속당했음은 물론이다. 지금은 상상도 하기 힘든, 그야말로 문화재에 대한 보호 의식이 뒤떨어지던 시절에나 벌어질 수 있던 ‘황당 사건’이다.

 

로얄컨트리클럽 불법 개간 사건

 

또 하나의 사건을 살펴보자. 위의 사건과 같은 해인 1971년에 일어난 일명 로얄컨트리클럽 불법 개간 사건이다. 이 사건은 컨트리클럽 사장 B 씨가 골프장을 만들겠다며 허가 없이 중장비를 대거 동원하여 무려 3천 그루의 나무를 망가뜨린 혐의를 받았고, 결국 구속당한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그래도 덜 황당한 범죄라 할 수 있다. 지금으로선 골프장 사장이 직접 환경파괴를 지시했다 구속당하는 사건을 상상하기는 쉽지 않지만, 골프장 건설 과정에서 자연을 함부로 파괴했다는 논란은 지금도 드물지 않다. 그저 스케일이 크고 피의자의 죄질이 나쁘며, 처분이 엄격했을 뿐이다.

 

외화 밀반출 사건

 

1980년대 들어 골프 산업이 성장하며 범죄의 판도 커졌다. 1983년 발생한 사건을 살펴보자. 이 사건의 피의자는 재일교포 출신으로서, 모 골프장의 소유주이기도 했다. 

이 사건의 피의자는 5억원이 넘는 금액을 해외로 밀반출하려다 결국 ‘외화 밀반출사건’ 혐의로 구속되었다. 지금보다 외화 유출이 훨씬 엄격했던 시대에 5억원이 넘는 돈의 밀반출을 시도한 건 그 자체로 큰 죄로 여겨진데다, 구속된 피의자가 골프장 회원권 보증금을 횡령한 사실이 드러나 추가로 입건되기까지 하여 더욱 논란을 키웠다. 나아가 비슷한 시기에 다른 골프장들의 여러 일탈 행위까지 함께 드러나면서, 대한민국 골프장 업계 전체가 한바탕 언론의 폭격을 맞기도 했다.

 

 

명성그룹 사건

 

1980년대에는 대한민국을 뒤흔든 명성그룹 사건도 있었다. 당시 명성그룹은 한국에서 손꼽히는 재벌이었고, 기업의 사업 중 골프의 비중이 컸다. 지금은 고인이 된 명성그룹의 김철호 회장은 국내에서 아직 레저문화가 생소하던 시기 대규모 콘도미니엄 사업을 국내 최초로 도입하며 국내에 콘도 시대를 처음 연 것으로 평가받은 인물이다. 국내 레저 산업의 필두였던 그의 사업 중심에 골프가 있었다. 

김철호 회장은 79년 오성골프장을 인수하면서 본격적으로 레저 사업을 시작했고, 이후 각지에 레저 타운을 건설하며 사업을 확장했다. 이러한 명성그룹의 성장에 밑바탕이 된 것이 골프 회원권 및 콘도 보증금이었다고 김 회장 스스로 밝힐 만큼 골프 산업은 명성그룹의 중추였다. 특히 명성그룹에서 만든 명성컨트리클럽은 36홀 65만평 규모에 국제적 시설을 갖췄고, 당시 국내에서는 찾기 힘든 선진적인 골프코스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처럼 골프 업계, 나아가 국내 재계를 호령하던 명성그룹은 엄청난 논란과 함께 어이없이 무너졌다. 김 회장에게 엄청난 규모의 횡령 및 사기 혐의가 적용되고, 명성그룹의 골프장 사업계획과 관련된 뇌물 논란도 불거졌다. 이 때문에 수많은 관련자가 구속되고, 김 회장은 장기간 복역 생활을 해야 했다.

사실 명성그룹 사건은 지금까지 소개한 사건과는 결이 다르다. 사건 초기에는 전형적인 재벌이 저지른 초대형 비리 사건으로 인식되었고, 이 명성그룹 사건은 장영자·이철희 금융사기 사건, 영동개발진흥사건과 함께 5공 3대 금융부정 사건으로까지 꼽혔다. 하지만 지금은 평가가 뒤집혔다. 

사업주나 기업의 문제가 없진 않았을지 모르나, 그보다는 당시 정권에서 길들이기 및 본보기 차원에서 기업을 공격해 해체한 사건이 아니냐는 것이다. 법적으로 확실히 재심이 이뤄지고 결론이 나온 건 아니라 속단할 수는 없지만, 명성그룹 사건은 이후 벌어진 국제그룹 사건처럼 정권에 밉보여 기업이 희생당한 사건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어찌 되었든 명성그룹 사건은 국내 골프 업계인의 일탈 혹은 범죄 케이스 중에서도 가장 유명하고, 또 가장 파장이 컸던 경우라 할 수 있다. 또 명성그룹과 김철호 회장이 억울한 피해자였다면, 한국 골프 역사를 통틀어 국내에서 가장 억울한 피해자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현재 골프인들의 일탈

 

과거 이야기는 이쯤 하고, 현재를 돌아보자. 여전히 골프인의 일탈이나 범죄는 드물지 않다. 맨 처음 이야기한 A 씨 사건은 물론, 골프인 2세가 아닌 본인이 각종 추문에 휩싸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골프장 회장이 내기 골프를 치다 구속되는 황당 사건부터, 본격 비리 혹은 환경파괴에 얽혀들어 곤경에 처하는 사건까지 유형도 다양하다.

하지만 이는 골프 업계만의 문제는 아니다. 상류층이 각종 일탈을 저지르는 건 대한민국은 물론, 그야말로 전 세계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영어에 어플루엔자(affluenza)라는 단어가 있다. 한국어로 ‘부자병’으로 번역되는 이 단어는 미국에서 만들어졌으며, 풍요를 뜻하는 affluence와 독감을 뜻하는 influenza의 합성어다. 1997년 PBS에서 ‘어플루엔자(Affluenza)’ 다큐멘터리를 방영하며 널리 알려진 이 단어는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이 돈에 더욱 집착하며, 나아가 금전을 통하여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고방식으로 해석된다. 

또한, 이 현상은 마치 독감처럼 전염성이 있고, 이미 사회적으로 상당히 퍼져나갔다고 여겨진다. 단어의 원조인 미국은 말 할 것도 없고, 한국도 마찬가지다. 정계, 재계, 연예계, 의료계, 종교계 등 대한민국 모든 분야의 거물 본인이나 2세, 3세가 각종 사고를 치는 예는 절대 드물지 않다. 말 그대로 인류의 보편타당한 문제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골프 거물들이 일탈이나 범죄를 저지른 예는 많고, 때로는 크나큰 사회적 충격을 안겨다 주기도 했지만 그를 이유로 업계의 문제라는 식으로 침소봉대하는 건 적절치 못한 이유다.

 

골프인들의 일탈 마주하기

 

물론 골프 거물의 일탈이나 범죄가 어디에서나 항상 벌어지는 일이라며 방치할 수는 없다. 그게 누구든 일탈이나 범죄를 저질렀다면 비판받아야 하고, 처벌이 필요하다면 처벌받아야 한다. 또한,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거물일수록, 도매금으로 업계 모두가 비판받는 건 그 적절함의 여부를 떠나 엄연한 사회적 현상임을 기억해야 한다. 

‘깨끗하지 못한 사람보다 깨끗한 사람이 많다’라는 법칙은 어딜 가나 통용된다. 하지만 정계나 재계, 연예계 등 업계를 막론하고 거물이 일탈이나 범죄를 저지르면 그 업계 모두가 비판받지 않던가. 이는 어쩔 수 없는 사회적 현상이다.

분명 골프 거물들의 범죄와 일탈은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것이다. ‘범죄 없는 세상’은 존재할 수 없으며 ‘어플루엔자’ 현상도 가까운 시일 내에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다른 업계도 마찬가지니, 우리 업계도 괜찮다는 시각은 옳지 않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라고 하지 않은가. 일탈이나 범죄를 저지르는 골프 거물이 소수라 해도, 그로 인한 폐해는 심각해질 수 있다. 몇몇 일탈 때문에 업계 전체의 이미지가 망가지는 예가 골프 업계에서도 벌어지지 말란 법은 없다.

골프 업계가 다른 업계에 비해 지저분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더 깨끗한 ‘모범 업계’가 되는 쪽이 바람직하다. A 씨 사건 등 근래의 몇몇 논란을 거울 삼아, 골프계가 그 어떤 업계보다도 깨끗한 업계로 거듭날 수 있기를 고대해본다.

 

 

GJ 김상현 사진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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