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골프 잔혹사 : 출석 인정 결석 허용일수 축소안 무엇이 문제인가?
학생 골프 잔혹사 : 출석 인정 결석 허용일수 축소안 무엇이 문제인가?
  • 김상현
  • 승인 2022.02.0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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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1년 11월 교육부가 학생 선수 ‘출석 인정 결석 허용일수 축소안’을 발표했다.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조치에 골프계는 물론, 대한민국의 체육계가 반발했다. 왜, 무엇이 문제인지, 골프 종목에 더욱 파장이 크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인지 알아보자.

 

대한민국 헌법에는 국민의 4대 의무가 규정되어 있다. 바로 국방, 납세, 근로, 그리고 교육의 의무다. 이중 교육의 의무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든 어릴 때 일정 수준 이상의 교육을 받아야 한다’로 해석된다. 또 보통 여기에서 말하는 교육은 학교에 가 다른 아이들과 함께 교실에서 교육받는 ‘학교 교육’으로 해석된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일정 시간, 일정 수준의 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가능하면 등교하여 교실에서 다른 아이들과 함께 교육을 받아야 한다. 이 ‘교육의 의무’가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공부가 아닌 예체능계를 진로로 잡은 학생도 마찬가지다. 어떤 진로를 잡은 학생이든 기본적인 교육을 받아야 바람직하게 자랄 수 있고, 또 사회인으로서 한몫해낼 수 있다는 건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다. 그렇기에 학생 운동선수도 어느 정도 학교 공부가 꼭 필요하다는 건 체육계도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

 

학생 선수 학습권 보장

 

그런데 최근 골프계를 비롯한 체육계 전반에 ‘학생 선수들의 학습권 보장’ 논란이 거세다. 학생의 학습권을 위해 만든 정책이 오히려 학생들의 꿈을 짓밟고 있다는 것이다. 대체 어찌 된 일일까.

이 사태는 2019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문경란 스포츠혁신위원회 위원장은 ‘초·중·고 학교 스포츠의 정상화에 관한 권고’를 발표했다.

먼저 문 위원장은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의 학교스포츠는 교육적 의미를 상실한 채 공부하지 않는 학생 선수와 운동하지 않는 일반 학생으로 이분화되는 비정상적 구조가 고착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학교스포츠 현장에서 다수의 학생 선수들은 학습을 도외시한 채 반복적인 훈련에만 매달려 학력이 저하되고 잦은 부상과 반인권적 지도자의 전횡에 시달리고 있다. 학교스포츠 현장에서 체육특기자 진학과 관련된 불공정과 비리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언급하며 학생 선수들의 학력 저하 및 반인권적인 처우에 대해 비판했다. 

또 문 위원장은 “스포츠혁신위원회가 권고하는 정책 중 가장 핵심적인 사항은 학생 선수들이 운동과 학습을 병행하라는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정규수업만은 반드시 듣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정규수업 참석을 중심에 놓고 이를 가능하게 하려고 학교운동부의 운영과 학생 선수의 훈련 및 각종 대회 참가 그리고 대회 개최, 상급 학교 입시 등과 관련된 정책과 제도를 종합적이고 유기적이며 긴 안목에서 체계적으로 재편하면서 새롭고 강력한 정책을 더했습니다” 라며 학생 선수들의 학습권 보장이 중요한 문제임을 강조했다. 원론적으로 충분히 들을 만한 이야기였으며, 체육계에서도 수렴할 수 있는 비판들이었다.

 

이상과 현실의 온도 차

 

문제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넘어 실제 조치가 나오면서 시작되었다. 2021년 11월, 교육부는 ‘출석 인정 결석 허용일수 축소안’을 발표했다. 이 조치에 골프계는 물론,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체육계가 뒤집어졌다. 

기존에는 학생 선수 대회 및 훈련 참가를 위한 출석 인정 결석 허용일수가 초등학교 10일, 중학교 15일, 고등학교 30일로 규정되었는데, 축소안이 시행되면 당장 2022년부터 초등학교 0일, 중학교 10일, 고등학교 20일로 축소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2023년부터는 초중고 주중 대회 및 훈련 참가가 전면 금지된다는 내용도 담겼다.

비상식적인 축소안에 체육계는 즉각 반발했다. 먼저 탁구계의 유승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회 부위원장이 가장 먼저 반기를 들었다. 유승민 위원은 SNS에서 “방학에만 대회를 하라고요? 그럼 국제대회에 참가하는 학생 선수들은 우리나라 방학에 맞춰 열리는 국제대회에만 참가해야 하나요? 아니면 방학에 맞춰 개최해주길 원해야 하나요?”라고 비판했으며, “이 방법만이 최선인가요? 교육부는 한 번이라도 현장의 학부모, 학생 선수들과 심도 있는 시간을 가져 보았나요?”라고 되묻기도 했다.

이외에도 수많은 종목에서 반발하는 목소리가 나왔고, 골프계도 마찬가지다. 어떤 종목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반발이 거세다. 문제의 축소안은 말 그대로 주니어 골퍼의 꿈을 짓밟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남다른 골프계의 특성

 

주니어 골프계는 많은 꿈나무가 자라나는 한국 골프의 미래다. 골프 열풍에 힘입어 주니어 골퍼의 숫자도 늘어나고 있으며, 2020년에는 505명의 초등학생 선수가 등록해 506명으로 역대 가장 많은 선수가 등록한 2010년에 비해 딱 한 명 모자란 수치를 기록했다. 수많은 주니어 골퍼 중 ‘제2의 최경주’, ‘제2의 고진영’이나 그 이상의 존재가 나올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큰 이유다.

이처럼 꿈에 부풀었던 주니어 골퍼는 당장 올해부터 선수 생명을 걱정할지 모를 위기에 놓였다. 보통 학생 골프대회는 주중에 3~4라운드로 치러지는데, 출석 인정 결석 허용일수 축소안에 따르면 당장 초등학생은 대회 출전이 거의 불가능하며, 중고등학생도 출전 가능 대회가 크게 줄어든다. 내년에는 대회 자체가 고사할 판이다. 제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주목받는 주니어 골퍼라 해도 국제 대회든 국내 대회든 출전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상황에 놓인 것이다.

‘축소안에 맞춰 주말에 골프대회를 열면 되는 게 아니냐’는 반론을 제기할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다. 주중에 이용하는 골프장과 주말에 이용하는 골프장의 비용 차이가 대단히 크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전국 골프장이 포화 상태인데 주말에는 대회용으로 대여하기조차 어렵고, 그린피를 감당하는 것은 더 어렵다. 한두 번의 대회야 ‘협력’이나 ‘봉사’ 차원으로 넘길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현재 대한골프협회와 한국중고등학교 골프연맹 등에서 열고 있는 대회는 약 20개이며, 각종 지역대회를 더하면 40여 개가 매년 개최되고 있다. 이 대회들은 모두 주중에 개최되고 있다. 주말에는 골프장을 빌리기도 어렵고 하루 대여료가 1억원이 넘기 때문이다. 몇몇 대회는 여러 방법으로 부담을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나 모든 대회가 이러한 부담을 감당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비용은 물론 시간도 큰 부담이다. 학생 골프대회도 3~4라운드가 대세며, 3~4일의 시간이 필요하다. 주니어 스크린골프 대회 등에서는 1일 2라운드로 운영하며 시간을 단축하는 예도 있지만, 필드에서는 사실상 어렵다. 설령 모든 대회를 주말에 운영한다고 해도 모든 대회를 1~2라운드로 축소해 운영해야 할 판이니 이 또한 현실성이 없다. 이번 축소안을 두고 ‘주니어 골퍼 죽이기’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고교 진학 포기가 늘어나는 사정

 

 

이 때문에 골프계에서는 타 종목 이상으로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다. 물론 ‘학습권의 중요성’이라는 명분 자체를 반대하는 목소리는 드물다. 엘리트 스포츠 특유의 과도한 교육 역시 여러 부작용을 낳고 있으니 개선이 필요하다는 명분도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내놓은 정책이 업계를 고사시킬 판인데 이에 찬성할 사람은 없다.

가뜩이나 공교육과 골프를 병행하기 어렵다고 호소하는 주니어 골퍼와 학부모가 많은데, 문제의 축소안이 강행되면 주니어 골퍼의 ‘공교육 이탈’을 가속화 시킬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온다. 모든 스포츠가 그렇듯 골프 역시 어릴 때부터 실전 감각을 키우는 게 중요하며, ‘대회 출전’ 만큼 실전 감각을 키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주니어 골퍼들은 방송통신고로 진학하거나, 아예 고교 진학을 포기하거나 유학을 떠나는 등의 방안을 이미 실천에 옮기거나 고민하고 있다.

주니어 골퍼의 대안으로 꼽히는 방송통신고는 등교는 보통 한 달에 두 번 격주 주말에 진행되며, 나머지 강의는 인터넷으로 대체된다. 또한, 일반 고등학교와 같이 3년제 정규 고등학교로 인정되고 있다. 현실적으로 보통 ‘입시 교육’을 수행하기에는 여러모로 한계가 있을지 모르나 고졸 졸업장만 따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주니어 골퍼에게는 매력적인 조건이 아닐 수 없다. 2020년 기준 고교 선수 837명 중 264명이 방송통신고에 다니고 있는 것으로 드러난 게 이를 증명한다.

심지어 ‘중졸’에서 학업을 멈추려는 움직임도 나온다. 고등학교는 의무교육이 아니므로 고교 진학을 스스로 포기한다고 학생이나 학부모에게는 불이익이 없다. 이 때문에 중졸을 감수하고 고교 진학을 포기하거나 다니고 있어도 방송통신고 전학, 심지어 자퇴를 고민하겠다는 여론까지 나온다.

결국, 문제의 축소안이 강행된다면 골프계는 그 어떤 종목보다 큰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되며, 타 종목도 역시 적잖은 피해를 볼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대한민국 체육계 전체가 들고일어났다. 먼저 대한민국의 스포츠를 총괄하는 스포츠 행정 기구인 대한체육회가 앞장서 교육부에 해당 정책에 대한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고 나섰다. 

 

체육계의 예정된 반발

 

대한체육회는 2021년 12월 2일 발표한 성명에서 “교육부의 이번 축소안은 ‘스포츠혁신위원회’가 이해 당사자인 학생 선수, 선수 학부모, 지도자 및 관련 체육단체 등 현장의 충분한 의견수렴과 설득 과정 없이 수립한 ‘학기 중 주중 대회 참가 금지’와 ‘학기 중 대회 주말 대회 전환’ 권고안에서 비롯되었다. 우리는 당시 체육 현장의 현실을 파악하라는 요구가 있었음에도 이를 외면한 권고안을 이해 당사자들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정책에 반영하고자 하는 교육부의 움직임에 강력히 반대한다”며 반대의 뜻을 분명히 밝혔다. 

다른 관계자나 단체도 반발 일색이다. 특히 서울특별시의회의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김태호 부위원장은 ‘학생 선수 대회 및 훈련 참가 허용일수 축소 대책 간담회’에 참석해 교육부의 학생 선수들의 대회 및 훈련 참가 허용일수 축소 결정은 기본권을 침해한 명백한 헌법 위배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또한, 향후 체육인들의 의견을 종합하여 교육부에 전달할 것이라며 사태 해결의 의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끝낼 때까지 끝난 건 아니다

 

결국, 빗발치는 반발 여론에 문체부는 체육계 의견을 수렴해 교육부와 다시 협의하겠다는 입장으로 돌아섰으며, 교육부 역시 체육계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한 뒤 축소안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다. 아직 교육부가 자신들의 조치에 문제가 있으니 바로잡겠다는 의사를 밝히지는 않았다. 또한, 스포츠 인권단체 등 이번 조치에 찬동하는 곳도 있다는 점 또한 불안을 더하는 부분이다. 체육계가 합심하여 지속해서 반대 의사를 밝힘으로써 업계의 뜻을 계속 보여줄 필요가 있다.

이번 출석 인정 결석 허용일수 축소안 논란은 전형적인 ‘의도는 좋지만, 현실이 따라가지 못한 사례’ 중 하나다. 물론 주니어 골퍼나 다른 종목의 학생 선수들에게도 기초 학력은 중요하다. 현실적으로 스포츠를 진로로 잡은 모두가 성공할 수는 없으며, 성공하지 못한 꿈나무들이 다른 진로를 안정적으로 찾기 위해서라도 기초 학력은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꿈나무의 학습권을 보장한다는 명목으로 스포츠의 기반을 뒤엎는 것은 안 될 일이다. 무엇보다도 그 종목에 자신의 미래를 걸고 구슬땀을 흘리는 학생 선수 개개인의 삶을 짓밟는 일이다. 아이들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오히려 아이들의 꿈을 꺾는 일이 현실로 나타나지 않도록 골프계, 아니 대한민국 모든 스포츠계가 함께 나설 때다.

 

 

GJ 김상현 사진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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