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당을 꿈꾸는 애동제자 박규빈 : 캐디 마스터 출신 무속인
국무당을 꿈꾸는 애동제자 박규빈 : 캐디 마스터 출신 무속인
  • 전봉진
  • 승인 2021.12.2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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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에서 무속인으로 변신한 이야기는 자주 들어봤을 것이다. 그런데 골프 업계에서는 이례적으로 신내림을 받고 무당의 길을 가고 있는 캐디 마스터가 있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어째서 다들 죽어도 못한다고 갈 때까지 버틴다는 험난한 길을 가게 됐는지 숨은 사연을 알아보기 위해 장장 4시간여를 달려 경남 진주 천상도화신당으로 향했다.

 

죽음의 문턱에 다녀오다

 

 

사연의 주인공인 박규빈 씨를 만나기 위해 천상도화신당 문 앞에 다다르자 ‘천상도화보살’이라는 간판이 눈에 확 들어온다. 그를 만나 도화신당에 예를 갖춘 후 단도직입적으로 무속인이 된 자초지종을 물었다.  

큰 사고를 겪은 후 제 운명이라고 생각하며 결국 받아들였습니다. 하늘의 명을 받고 신의 길을 가기 전에는 이유 없이 많이 아팠습니다. 병원을 가도 도무지 병명이 나오지 않아 집에 가서 앓아눕기만 했습니다. 무속인이 된 연예인들 이야기는 남의 일이라고만 여겼는데, 저도 소위 무병(巫病)을 앓고 있었다는 걸 까맣게 몰랐던 거죠.  

그러던 어느 날 친구 4명과 충청도로 놀러가다가 논산 방향 고속도로에서 앞차와 추돌한 후 가드레일과 4~5번 부딪히며 튕겨 나왔습니다. 이어 바로 뒤따라 오던 대형 트레일러가 저희 차를 덮치며 그 밑에 깔리고 말았죠. 저도 모르게 외마디 비명을 질렀는데 그 순간 지난날들이 마치 파노라마처럼 빠르게 스치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 나는 이제 죽었구나!’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두 눈을 감았습니다.

얼마가 지났을까? 눈을 떠보니 매캐하게 타는 냄새와 연기가 자욱했습니다. ‘도대체 내가 죽은 거야 산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고, 바로 그때 피 흘리고 쓰러져 있는 친구들이 보이길래 무조건 차창을 부수고 밖으로 데리고 나왔습니다. 

이게 신의 조화일까요? 작고 가녀린 저에게 어디서 그런 불가사의한 힘이 생겨난 것인지…. 밖에는 응급구조차가 3대나 와있었습니다. 워낙 큰 사고라서 모두 사망했을 거라 생각해서 시신들이라도 병원 영안실로 이송하려고 했다더군요.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찌그러진 차는 폐차되었고, 응급실로 실려간 친구들은 수술을 받고 겨우 깨어났죠. 하지만 저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머리에 혹 하나도 없이 너무 멀쩡해서 의료진들이 무척 놀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고 하더군요.(웃음) 

 

천상도화보살이라는 이름은 어떤 사연을 담고 있는지 물으니 꿈과 100일 기도 이야기를 풀기 시작했다. 교통사고 이후 자주 꿈을 꾸게 됐는데, 어느 날 할아버지 한 분이 팔목을 잡고는 두 글자를 써주셨단다. 하나는 길 도(道)자가 분명한데 다른 글자는 희미해 도저히 알 길이 없어 갑갑했는데, 이에 대한 의문은 내림굿 날을 잡아 놓고 100일 기도를 드리던 중에 풀렸단다.

피하고 싶어 꿈은 뒷전으로 치부해 버리고 오롯이 사회생활에만 집중하려고 애썼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꿈이 더 잦아졌습니다. 새벽에 눈을 떠보면 할머니, 할아버지, 동자가 손에 손잡고 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흰머리를 곱게 쪽지고 하얀 한복을 입은 할머니가 제 손을 꼭 잡으며 ‘이제는 가자!’라고 말씀하시고는 누군가에게 인사를 시키기도 하셨습니다. 

한번은 할아버지께서 “너는 단명이니라. 이제 신의 길로 가거라”라고 말씀하시는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깨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내림굿 날을 잡아 놓고 미리 지리산에 들어가서 100일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장구 소리와 함께 글문 할아버지께서 흰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오시더니 “옳거니, 너의 이름은 도화이니라. 길 도(道), 꽃 화(花) 만중생의 힘든 인생길에 예쁜 꽃이 되어 잘 보살펴 주거라….” 그 순간 나머지 한 글자에 대한 의문이 풀렸습니다. 

 

다시 태어나도 캐디는 나의 소중한 생업

 

캐디 마스터 시절 인턴 교육 라운드중 홀인원 기록 후

 

가슴 시린 인생사를 듣다 보니 필자가 울컥해진다. 믿고 의지할 혈육이라고는 친언니밖에 없는 두렵고 서러운 삶 속에서도 항상 밝은 미소와 강인한 책임감으로 ‘캐디 마스터’ 위치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캐디 시절은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물었다.

20대 초반 우연히 알게 된 캐디라는 직업에 매료돼 경기도 골프장에서 첫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 후 10년 가까이 푸른 잔디를 밟으며 정말이지 행복한 인생 1막을 보냈다고 자부합니다. 흙수저는커녕 아예 수저조차 없는 비록 그날 벌어 그날 사는 ‘하루살이’ 생활이었지만 그런 일당이라도 제 작은 손에 쥐여주는 골프장 잔디와 고객들이 정말 고마웠기에 늘 감사한 마음으로 일했습니다. 

특히 골프 수준은 물론이고 매너까지 존경스러운 고객분들을 만날 때면 ‘그들의 성공적인 삶의 비결은 무엇일까?’ 생각하며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했습니다. 반면 난폭한 언행으로 캐디들에게 상처를 주는 분들을 보면 속에서 화가 치밀며 캐디라는 직업에 회의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좋은 곳에서 골프를 즐기며 왜 굳이 나쁜 말로 구업(口業)을 쌓는지….

 

혹시 캐디로 일할 때 신내림과 관련한 전조 증상은 없었는지 물으니 간혹 소름 돋는 예지몽으로 무서웠던 적이 있었단다.

어느 날 친하게 지내던 동료 캐디가 꿈속에서 제 머리맡에 앉아 “억울해서 못 가 못 간단 말이야….”라고 소리치며 울길래 깜짝 놀라 잠에서 깼습니다. 조마조마했는데 다음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얘기를 듣고는 죄책감에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그 친구가 다시 나타나 “신발이 커서 못 가겠다, 혼자는 너무 억울해서 못 가겠다”고 할 때마다 줄초상이 나는 일도 생겼습니다. 

 

막상 캐디 마스터라는 관리자가 되자 그전에는 몰랐던 캐디들의 고충과 애환을 직접 눈으로 보고 겪으며 느낀 바가 참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캐디들을 위해 그가 늘 마음 깊이 새기며 좋아하는 리더십 좌우명은 ’First in, Last out’이다. ‘전장이나 위험지역에 가장 먼저 들어가고, 가장 나중에 나온다’는 뜻으로 솔선수범과 희생정신, 책임감을 뜻한다.

아무도 캐디들을 위해 앞장서는 사람이 없어서 그들의 정신적인 멘토이자 든든한 버팀목이 되려고 열정적으로 일했습니다. 그 누구보다 빨리 출근했고, 퇴근 무렵에는 혹시 오늘 하루 놓친 일은 없었을까 정리한 후 맨 나중에 문을 나섰습니다.

 

그는 캐디 마스터를 그만둔 후 2020년 1월부터 ‘골프앤(Golf&)’이라는 캐디 전문교육기관에서 ‘HR 마케팅실장’으로서 캐디라는 직업을 널리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아직은 골프, 무속 2가지 분야의 일을 겸업하고 있어 ‘투잡(two-job)족’ 또는 ‘N잡러’라고 칭할 수 있을 것 같다. 

캐디 교육생 중에도 힘든 사람이 많은데, 2달간의 교육을 마치면 온전한 캐디로 자리 잡고 고소득 전문가로 활동할 수 있습니다. 

남자 캐디들의 취업이 어려웠던 2020년에 전국 200여 개 골프장과 접촉하며 골프앤이라는 회사를 알리려고 백방으로 뛰어다녔고, 역시 땀은 거짓말을 안 하더라고요. 90여 개 골프장에 800여 명의 남녀 캐디를 취업시키는 전무후무한 성과를 올렸습니다. 

탄탄한 교육 실력과 높은 취업률로 인해 골프앤은 지금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인정하는 ‘캐디 국가기술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는 ‘Only 1, No. 1’ 회사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제가 골프앤을 떠나는 그 날까지 힘든 캐디들을 돕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욕심이 너무 많은가요?(웃음).

 

마침내 신의 제자로 거듭나다

 

 

2021년 7월 17일, 세찬 비바람과 벼락까지 내리치던 그날 천상도화는 태어났다. 환골탈태한 것이다. 내림굿이 시작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하늘은 잠잠해지며 활짝 열렸다. 평범하지 않은 길을 가야 한다는 슬픔으로 그의 눈가에는 잠시 이슬이 맺혔다. 그러나 이내 아픔 속에 힘겨워하는 많은 이들의 질곡(桎梏)을 덜어주고 액운을 막아주는 무녀가 된다는 것에 환희심이 넘쳤다. 애동제자라 가야 할 길이 멀더라도 신령님을 믿고 따르는 일등제자, 일등상좌가 되겠노라고 천상도화보살은 굳게 다짐했다.  

저의 신어머니는 경남 산청군 지리산 쪽의 영선암 주지로 계시는 도연스님입니다. 20년의 긴 세월 동안 저를 보살펴 주신 은인입니다. 제가 스무 살 때 어떤 분의 권유로 돼지몰이하듯 신제자의 길로 갈뻔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그걸 엄청나게 반대하던 친언니 소개로 만난 분입니다. 저는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스님 등뒤에 숨어 있었습니다. 신어머니께서는 매일 정성스레 촛불 켜고 기도하시며 저의 신의 바람을 막아주시던 분입니다. 이 길을 간다는 게 죽기보다 싫었던 ‘인간 박규빈’이었기에 그동안 신어머니 속을 무지 썩여 드렸습니다. 그걸 하해와도 같이 오롯이 품어주신 스님께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사죄드리며 감사드립니다.

그분도 젊은 시절 중생들의 고통의 무게를 짊어지고자 무속인의 길을 꿋꿋이 걸어가시다가 10년 전쯤 계를 받으시고 비구니 스님이 되셨습니다. 저는 다른 제자들과는 다르게 신굿을 했습니다. 신딸인 제가 당신과 똑같은 아픔과 고통을 겪는 걸 안쓰러워하셨기 때문입니다. 영선암 산신당에서 산신 할아버지와 용왕님께 밤낮으로 기도를 올리고, 밤이 되면 스님의 신명 나는 장구와 북소리 장단에 맞춰 신령님을 청배하여 올바른 신을 받을 수 있게 하루도 빠짐없이 꼬박 100일 기도를 해주셨습니다. 그 덕분에 저는 도화신당의 선관 신령님들과 함께할 수 있었고 신굿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바른 점사를 볼 수 있는 어엿한 무속인으로 태어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내림굿 하던 그날 많은 신령님께서 애동제자의 몸주로 왕래를 많이 하셨는데 특히 백마장군, 군웅장군, 작두장군께서 고객들에게 영검함을 보여주시며 애동제자의 장도를 격려해 주셨단다.  

장군들께서 갑자기 사업가 한 분을 불러 세우더니 “관재에 묶여 있는 네 모습을 너는 아느냐 모르느냐?”고 호통을 치셨습니다. 그러더니 날카로운 칼날로 그분의 온몸에 낀 액운을 자르고 막걸리 반 통 정도를 입안에 머금고 뿜어대는 원력으로 관재를 소멸시킴으로써 무난히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자손에게는 구슬동자가 “대기업에 취업시켜주겠노라”며 합격의 노래를 불렀고 얼마 후 정말 모 대기업 부장으로 이직이 되었다는 낭보를 듣고는 다시 한번 제자로서의 보람을 느꼈습니다. 

 

10년쯤 뒤 국무당 소리 듣고 싶어요

 

아픔은 잊고 해맑게 웃는 그녀

 

천상도화보살은 갓 신내림을 받은 애동제자다. 사람으로 치자면 태어난 지 채 100일도 안 되었기에 아직 백일잔치도 안 지낸 갓난아이인 셈이다. 하지만 애동때가 오히려 욕심 없고 청정무구한 법. 그래서 핵심을 찌르는 칼 같은 공수를 있는 그대로 전해준다지 않는가? 생소한 직업이다 보니 난생처음 겪는 에피소드나 고충도 많았을 것 같았다.   

저는 신령님의 말씀을 가감 없이 전달해야 하는 영매잖아요? 그러다 보니 눈에 안 보이는 세계를 고객님들께 이해시키는 게 가장 힘든 것 같습니다. 믿음이 없는 분들과 얘기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입이 다물어집니다. 그러면 다시는 점사가 안 나옵니다. 

제가 모시는 신령님들이 모두 도와주신 덕분에 서투른 애동제자지만 벌써 200명 가까운 고객분들이 입소문을 타고 아름아름 다녀가셨습니다. 저희 신당에 처음 들어서시면 웬 앳된 아가씨가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주저주저하십니다. 

하지만 할머니가 먼저 아픈 곳을 어루만져 주시거나 이야기를 꺼내면 곧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 숙여 펑펑 우시는 분들이 정말 많습니다. 예전에는 왜 점상에 굳이 각티슈가 있는지 몰랐습니다. 삶의 기로에서 자신감을 잃은 분, 몸이 아파 힘드신 분, 소중한 가족을 잃고 가슴 미어지는 분……. 인생살이에 정말 힘겨워하는 중생들이 많다는 것을 신제자가 돼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도화보살의 얘기를 듣다 보니 1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그때 갑자기 “저희 신령님은 솔직하셔서 거짓말하면 혼쭐납니다”라고 귀띔하며 궁금증을 자극한다. 

얼마 전 어떤 여자분이 궁합을 보러와서 점술대신 마마님께 말씀을 드렸더니 즉시에 “제자다.” 딱 이 말만 하셨습니다. 저는 의아해서 “본인이 제자라고 하시는데, 맞으면 맞다 틀리면 틀리다 솔직하게 얘기를 해주셔야 합니다”라고 했는데 그래도 그분은 비웃으며 “제자 아닙니다”라고 시치미를 뚝 떼더군요. 

혹시 몰라 다시 마마님께 여쭈었더니 “분명히 제자다. 모시는 시주 할머니도 계신다”라는 공수를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계속 우기길래 제가 순간 부채를 점상 위에 세게 내리치며 “감히 이곳이 어디라고! 거짓말하면 벌 받는다”라고 일러줬습니다. 

그러자 움찔하더니 “시주 할머니를 모시는 것은 맞지만 제자는 아니다”라며 또 우기더라고요. 갑자기 할머니께서 “예끼 이놈!” 하시더니 목을 비틀어 버리셨지요. 그런데도 안 아픈 척 목만 붙잡고 있길래 “괜찮으시냐, 도움을 드릴까요?”라고 했지만 억지로 쓴웃음을 짓더군요. 그 순간 또 거짓말을 한다고 화가 나신 할머니께서는 이번에는 양쪽 목을 잡아 비트셨습니다. 

결국, 제가 “도화신당에 오시는 분들에게 성심성의껏 점사를 봐 드리는 게 도리지만 우리와 안 맞는 것 같다. 궁합 사주도 다 거짓인 거 아니까 딴 데 가보세요”하며 복채를 돌려주자 머쓱해 하더니 허겁지겁 줄행랑을 치더군요. 제가 애동이니까 얼마나 용한지 테스트 하러온 신제자였던 것이지요(웃음).  

 

천상도화보살의 미래 비전이랄까 꿈은 고려나 조선 시대의 나랏무당이나 국무당 같은 명성을 얻어 우리나라가 부강하고 세계평화를 이끄는 일등국가로 도약하는데, 작은 힘이지만 일조하는 것이다.

이 작은 몸에 칼을 6곳이나 대었습니다. 그만큼 정말 많이 아팠으며 철부지 어린 나이에 사회에 뛰어들어 이런저런 인간풍파와 금전풍파를 겪었습니다. 법당에 초 밝히고 기도할 때면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제게 미안하다고 말씀해주십니다. “네가 그동안 많이 아팠던 것은 그만큼 아픈 사람 마음을 알아주고 치유하라는 것이고, 소중한 것을 잃게 된 것은 네가 쓰리고 아픔을 겪어봐야만 중생들의 고민을 알고 구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뜻이니라…….”

이제는 아픈 만큼 성숙했기에 죽어가는 인간도 살려내는 활인제자가 되고 싶습니다. 제가 태어나고 사랑하는 대한민국의 당당한 무녀로서 한 걸음씩 나아가 우리나라 국운을 읊고 액운, 액살을 막아내며 삶의 무게에 짓눌려 힘겨워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습니다.

 

 

GJ 전봉진 사진 박규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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