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메이저 대회의신화는 어떻게 쓰여졌나? #마스터스 #디오픈 #US오픈 #PGA챔피언십
4대 메이저 대회의신화는 어떻게 쓰여졌나? #마스터스 #디오픈 #US오픈 #PGA챔피언십
  • 김상현
  • 승인 2020.12.04 08: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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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저널 세계 각국에서 수많은 골프대회가 개최되고 있지만 4대 메이저 골프대회의 위상은 독보적이다. 전 세계 남자 프로골퍼들의 꿈의 무대로 여겨지는 4대 메이저 대회 디 오픈, US 오픈, PGA 챔피언십, 마스터스 토너먼트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자.

 

디 오픈(브리티시 오픈), US 오픈, PGA 챔피언십, 마스터스 토너먼트! 세계 남자 메이저 골프대회, 줄여서 메이저 대회 혹은 메이저라고 불리는 4개의 대회를 오래된 순서대로 열거한 것이다.
세계 각국에서 수많은 골프대회가 개최되고 있지만, 메이저 골프대회의 위상은 독보적이다. 남자 골프계에서 ‘그랜드슬램’이라는 호칭은 위의 4개의 메이저 대회를 모두 제패한 선수에게만 부여된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4대 메이저 대회와 그랜드슬램

 

세계 남자프로골프사를 돌아보면, 한 해에 열린 4개의 메이저 대회를 모두 제패하는 ‘1년 그랜드슬램’을 기록한 선수는 1930년 메이저에서 모두 우승한 ‘바비 존스’뿐이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한 해에 4대 메이저 대회에서 모두 우승한 선수는 없다. 이 때문에 현대 프로골프에서는 선수의 커리어 기간을 통틀어 4개의 메이저 대회 모두를 우승한 경험이 있다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것으로 인정한다. 이 ‘커리어 그랜드슬램’도 매우 어려운 기록이다. 총 세 번의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기록한 잭 니클라우스와 타이거 우즈, 그리고 한 번의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벤 호건, 게리 플레이어, 진 사라젠 등 5명의 선수만이 달성했다.
전 세계 남자프로 선수들에게 꿈의 무대로 여겨지는 디 오픈, US 오픈, PGA 챔피언십, 마스터스 토너먼트. 4개 대회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현대 프로골프의 역사

 

PGA투어 4대 메이저 골프대회의 역사를 돌아보면 현대 프로골프의 역사와 맥락을 같이했음을 알 수 있다. 골프의 중심지가 영국이던 시절 디 오픈이 태동했으며, 미국에서 탄생한 US 오픈에서도 한동안 영국 골퍼들이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미국이 골프의 중심지가 되며 US 오픈에 이어 PGA 챔피언십, 마스터스 토너먼트까지 우승자가 미국에서 탄생했고, 미국 남자프로골퍼들은 지금도 모든 메이저 대회를 압도하고 있다.
4대 메이저 골프대회의 성공 신화는 현대 골프 역사를 주도한 영국과 미국 골프의 성공 신화라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마스터스 토너먼트 이후 메이저급 대회로 주목받고 있는 프로골프대회로는 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이 있다. 1974년에 미국에서 시작된 이 대회는 그 명성과 개최 코스, 높은 상금으로 인해 비공식적으로 제5의 메이저 대회로 인식되고 있다.

 

가장 역사가 오래된 메이저 대회

The Open Since 1860

 

디 오픈 최초의 미국인 우승자 월터 하겐

 

메이저 대회 중 가장 역사가 깊은 디 오픈(브리티시 오픈)의 정식 명칭은 ‘디 오픈 챔피언십’ 이다. 가장 오래된 메이저인 동시에 아직도 많은 사람이 4대 메이저 대회 중 최고로 여길 만큼 권위가 있다.
디 오픈은 1860년에 처음 개최됐으며 초창기 대회는 오늘날과 여러모로 차이가 났다. 초창기에는 상금도 없었다. 오늘날 4대 메이저 대회가 우승자에게 돈방석과 명예를 모두 보장하는 대회라면, 초창기 디 오픈은 명예만을 부여하는 대회였다. 우승자는 상금 대신 최고급 가죽으로 만들어진 챔피언 벨트를 받았다. 하지만 벨트는 1년만 소유할 수 있었고 새로운 챔피언이 나오면 벨트를 넘겨주어야 했다. 1863년에 대회에서는 10파운드의 상금이 걸렸지만, 이 상금은 우승자가 아닌 2, 3, 4위를 위한 것이었다. 1864년 대회에서 우승자에게 벨트와 6파운드의 상금을 함께 지급하면서 비로소 디 오픈 우승자는 명예와 상금을 함께 누리게 되었다.

 

디 오픈과 함께한 현대 골프대회의 역사

 

메이저 대회 중에서도 가장 역사가 오래된 디 오픈의 역사는 현대 골프대회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에 여러 시행착오도 있었다. 1871년에는 디 오픈이 개최되지 않았는데, 그 이유가 황당하다. 주최 측의 자금난이나 자연재해가 아니라 우승 트로피가 없다는 이유였다.
1870년 대회에서 톰 모리스 주니어가 3년 연속 우승을 차지하며 ‘3년 연속 챔피언은 챔피언 벨트를 영구히 소유할 수 있다’는 당시 규정에 따라 챔피언 벨트를 영구히 본인 것으로 만들었고, 다음 해 우승자에게 수여할 트로피를 준비하지 못해 대회 자체가 취소되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그다음 해에 열린 1872년 대회에서는 우승자에게 우승 메달을 증정했다. 이 대회에서 우승 메달을 가져간 건 전 해 대회를 열지 못하게 만든 장본인인 톰 모리스 주니어였다.

 

꿈의 트로피 ‘클라레 저그’

 

1873년 대회에서 오늘날 골프 팬들에게 익숙한 ‘클라레 저그’, 디 오픈을 상징하는 은제 주전자 모양 우승 트로피가 등장했다. 클라레 저그의 첫 번째 주인은 1873년 대회 우승자인 ‘톰 키드’였지만, 클라레 저그에 첫 번째로 새겨진 이름은 그 해 우승한 톰 키드가 아닌 전년도 우승자인 톰 모리스 주니어다.
본래 1872년 대회부터 클라레 저그가 쓰일 예정이었는데 트로피가 예정보다 1년 늦게 준비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톰 모리스 주니어가 첫 번째, 톰 키드가 두 번째로 새겨진 클라레 저그는 이후 전 세계의 모든 프로 골퍼가 꿈꾸는 트로피가 되었다.
이후 디 오픈은 영국 최고의 대회, 나아가 세계 최고의 대회로 성장했다. 1863년 디 오픈의 총상금은 10파운드에 불과했지만 1892년에는 110파운드, 1946년에는 1000파운드, 2016년에는 650만 파운드를 기록했다. 2017년 대회부터 상금을 영국 파운드가 아닌 미국 달러로 증정하기 시작했으며 2019년 대회는 무려 총상금 1075만 달러를 기록했다. 물가 상승을 고려해도 총상금 10파운드이던 시절과 비교하면 어마어마한 증가치가 아닐 수 없다.

 

최초의 미국인 우승자 월터 하겐

 

20세기 이후 골프의 중심지가 영국에서 미국으로 넘어갔지만 디 오픈은 여전히 최고의 권위를 자랑했다. 미국 골퍼도 디 오픈에서 우승하기를 원했고, 실제로 우승했다. 1922년 월터 하겐이 미국 선수로서는 처음 디 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이후 미국 선수가 영국 선수보다 더 많은 우승을 차지하며 영국인을 위한 대회가 아닌,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골퍼들을 위한 대회가 되었다.

 

디 오픈 개최지

 

1920년대에 이미 세계 최고의 대회가 된 디 오픈은 고향을 떠나야 했다. 디 오픈의 첫 번째 개최지이자 1925년까지 24번이나 대회를 개최했던 디 오픈의 고향 ‘프레스트윅 클럽’은 더 이상 디 오픈의 규모를 감당할 수 없었고, 이에 디 오픈은 프레스트웍 클럽을 떠나 오늘날 골프 팬들에게도 익숙한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 등 새로운 개최지들을 찾아 정착했다.
2차 세계대전 기간에 대회가 몇 년간 중지되는 등 위기도 있었지만, 전후 디 오픈은 더욱 성장했다. 오늘날에도 디 오픈은 메이저 대회의 맏형으로서 그 위상이 건재하다. 잭 니클라우스도 1966년 디 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기록하며 전성기를 시작했고, 타이거 우즈도 2000년 디 오픈에서 우승하며 역대 최연소 그랜드슬램을 기록하며 골프 황제의 자리에 앉았다.
2020년에는 코로나19 사태로 디 오픈이 열리지 못했다. 하지만 마침표가 아닌 쉼표일 뿐이다. 하루빨리 코로나19 사태가 종결되고 메이저 대회의 큰 형님 디 오픈이 다시 열리기를 모든 골프 팬들이 고대하고 있다.

 

어려운 코스 세팅으로 유명한 대회

US Open Since 1895

 

US오픈에서 통산 4승의 기록을 가지고 있는 바비 존스. 그는 한해에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대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남자 골프 4대 메이저 대회의 둘째인 US 오픈은 1895년에 시작되었다. 맏이인 디 오픈 처럼 US 오픈도 초창기에는 지금과 큰 차이가 있었다.
첫 번째 US 오픈은 10명의 프로와 1명의 아마추어가 참여한 조촐한 대회였으며, 개최지가 미국이었음에도 첫 번째 대회 우승자는 영국 출신의 호레이스 롤린스였다. 이후 한동안 US 오픈은 ‘영국 시대’였다. 1911년 미국 출신 존 맥더모트가 우승하기 전까지 US 오픈의 우승자는 모두 영국 선수들이었다.
하지만 존 맥더모트의 우승 후 점점 우승자 리스트가 미국인으로 채워졌고, 지금은 다른 메이저 대회처럼 미국 선수들의 절대 강세가 돋보이는 대회가 되었다. 1950년 이후 미국 이외에 US 오픈 정상을 차지해 본 국가가 단 6곳에 불과할 정도다.

 

고난이도 코스 세팅이 전통

 

US 오픈의 역사는 디 오픈보다 짧지만, 명성은 뒤지지 않는다. 또한, 골퍼들 사이에서 악명(?)도 하늘을 찌른다. 4대 메이저 대회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코스를 세팅하는 대회이기 때문이다. US 오픈을 개최하는 미국골프협회는 작정하고 US 오픈을 ‘프로들에게 비명을 지르게 만드는 곳’, ‘가학적인 코스’ 등으로 불릴 만큼 최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대회로 만들었다.
이 때문에 US 오픈에서 언더파를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선수로 인정받을 정도며, ‘오버파 우승’ ‘단독 언더파 우승’ 같은 드라마틱한 장면도 심심찮게 나온다.
메이저 대회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대회로 악명 높은 US 오픈이지만, 그만큼 우승의 열매도 달콤하다. 2020년 US 오픈의 총상금은 무려 1250만 달러를 기록했다. 1년 전 2019년에 개최된 1075만 달러를 기록한 디 오픈의 총상금을 뛰어넘는 수치다.
이처럼 US 오픈은 메이저 대회 중에서 가장 어렵고 가장 우승 상금이 많은 대회로서 메이저 대회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철저히 프로를 위한 대회

PGA Championship Since 1916

 

1939년 PGA 챔피언십 우승자 헨리 피카르(좌)에게 우승 트로피를 전달받고 있는 1940년 PGA 챔피언십 우승자 바이런 넬슨 (우)

 

4대 메이저 중 세 번째 대회는 1916년부터 개최되기 시작한 PGA 챔피언십이다. 1916년 2월 PGA(미국프로골프협회)가 설립됐으며 그해 10월에 최초의 PGA 챔피언십이 개최됐다.
디 오픈이나 US 오픈과는 달리 PGA 챔피언십은 처음부터 철저한 ‘프로들을 위한 대회’로 기획됐다. 당시 미국에서는 아마추어 골프의 위상이 프로 골프의 위상을 능가하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미국 프로 골퍼들이 자신들의 협회인 PGA를 설립하고 자신들을 위한 최고의 대회, PGA 챔피언십을 열기에 이른 것이다.
이 때문에 초창기에는 아마추어 대회에 가까웠던 디 오픈, 프로와 아마추어가 함께 출전한 US 오픈과는 달리 PGA 챔피언십은 1회부터 전원 미국 프로 선수들이 출전했다. 첫 번째 우승자도 당시 미국 프로 골프계의 거물로 꼽히는 짐 반스였다.

 

4대 메이저 중 가장 부침이 심한 대회

 

PGA 챔피언십의 역사는 부침이 많았다. 1916년 개최 후 1917년과 1918년에는 대회가 열리지 못했다. 미국이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기 때문이다. 1943년 대회 역시 2차 세계대전 참전으로 인해 개최되지 못했고 이후에도 여러 우여곡절에 시달리며 4대 메이저 대회 중 가장 부침이 심한 대회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한국 골프 팬에게 남다른 이유

 

하지만 한국 골프 팬에게 PGA 챔피언십은 남다르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2009년 PGA 챔피언십에서 한국의 양용은이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를 꺾고 한국인 최초이자 아시아 국적 남자 선수 최초 메이저 대회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웠기 때문이다. 부침이 많은 대회일지언정, PGA 챔피언십 역시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메이저 대회임에는 분명하며 특히 한국 골프 팬들에게 의미가 큰 대회라 할 수 있다.

 

마스터스의 성공 신화

Masters Since 1934

 

통산 5번의 마스터스 우승 기록을 가지고 있는 타이거 우즈

 

4대 메이저 대회의 막내 격인 마스터스 토너먼트는 1934년에 처음 열렸다. 이 대회는 메이저 대회 중 역사는 가장 짧지만, 그 위상은 다른 메이저 대회에 뒤지지 않으며, 골프계에 끼친 영향도 크다.
마스터스 토너먼트의 성공 신화는 ‘혁신’으로 써내려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날에는 4라운드 대회를 나흘에 걸쳐 치르는 게 당연한 일로 여겨지지만, 과거에는 4라운드 대회를 사흘에 걸쳐 치렀다.
이 규정을 바꿔 4라운드 대회를 나흘에 걸쳐 치른 첫 번째 대회가 마스터스 토너먼트다.

 

혁신적인 운영 전략의 성공

 

주최 측에서 마지막 날 36홀 플레이를 한꺼번에 진행하는 건 선수 경기력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4라운드 대회를 나흘에 걸쳐 치르도록 룰을 바꾸었고, 이후 이 경기룰은 프로골프대회의 표준이 되었다.
경기 당일 갤러리에게 선수들의 티오프 시간표를 나눠준 것, 페어웨이 가장자리에 로프를 쳐 갤러리가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은 것 등 오늘날 프로골프대회에서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규칙이나 불문율 상당수가 마스터스 토너먼트에서 시작됐다. 나아가 TV 방송사와 방영권 협상 과정에서 중개료를 낮추는 대신 광고 분량을 줄이는 방식으로 대회의 가치를 더욱 높이는 등 여러 혁신적인 운영 전략을 연이어 성공시키며 메이저 대회의 하나로 성장할 수 있었다.

마스터스에 한국 선수가 첫 출전한 것은 1972년 한장상(79)이었고, 이 대회에 가장 많이 출전한 선수는 최경주(50)로 2003년부터 2014년까지 모두 12번 참가했다.
2020년에는 코로나19로 인해 봄에 열리는 마스터스가 가을로 연기돼 11월 12일부터 11월 15일까지 열렸으며 한국 선수는 임성재, 강성훈, 안병훈, 김시우가 출전했다. 특히 지난해 미 PGA 투어 사상 최초로 아시아 국적의 신인상 수상 기록을 세웠던 임성재는 첫 출전에 우승자 더스틴 존슨에 이어 준우승을 차지하며 역대 아시아 최고 성적을 기록하는 쾌거를 이뤘다. 
Golf Journal

 

 

By  김상현 사진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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