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거리측정기 실격이 사라지지 않을까
왜 거리측정기 실격이 사라지지 않을까
  • 김상현
  • 승인 2023.09.05 17: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골프 선수는 자신이 출전하는 대회에 거리측정기 금지 룰이 있다면 반드시 지켜야 한다. 문제는 관련 규정이 제각각이라 프로마저 혼동할 수 있다는 점이다.

 

거리측정기를 안 써 본 골퍼는 있어도 한 번만 써 본 골퍼는 없다고 한다. 그만큼 한 번 쓰면 계속 쓰게 되는 편리한 물건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처음 거리측정기가 나왔을 때부터 그 편리함은 크게 주목받았고, 아마추어는 물론 프로도 쓰기를 원했다. 

아마추어가 필드에서 거리측정기를 쓰는 건 별다른 논란거리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프로가 쓰는 것, 특히 대회에서의 사용은 큰 논란이 되었다. 편리하게 거리측정을 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다양한 편의기능까지 겸비한 거리측정기를 프로가 사용하면 선수 본인의 실력이 아닌 기계에 의해 승부가 판가름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프로 골프계의 거리측정기 논란

 

실제로 프로 골프계의 거리측정기를 둘러싼 논란과 혼선은 상당히 컸다. 2006년부터 캐주얼 플레이 및 토너먼트, 즉 아마추어 대회에서는 거리측정기 사용이 허용되었지만, 로컬룰에 따라 대회 주최 측이 따로 기기 사용을 금지할 수도 있었다. 이 때문에 상당수의 대회에서는, 특히 프로 대회에서는 거리측정기를 쓰지 못했다.

이 때문에 이 시기 거리측정기 사용을 둘러싼 잡음이 적지 않았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사상 처음으로 중국에서 개최되었던 ‘2006 오리엔트 차이나레이디스오픈’이 좋은 예다. 이 대회에서는 거리측정기 사용이 금지된 것은 물론, 거리측정기 사용으로 오인될 것을 염려해 선수들의 전자제품, 특히 휴대폰 소지나 사용마저 금지했다. 이처럼 프로 대회에서는 사실상 거리측정기가 금지되는 분위기 속에서도 종종 선수 본인이나 캐디가 거리측정기를 사용하다 실격당하는 일이 있었다.

이후 프로에게도 거리측정기를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선수들이 편하게 경기를 할 수 있고, 경기 속도를 높일 수 있다는 강력한 명분 앞에 결국 골프 규정을 관장하는 영국 R&A와 미국골프협회(USGA)도 프로의 거리 측정기의 사용을 허용하는 쪽으로 방침을 잡았다. 이에 따라 ‘거리 측정 기능에 한해 허용하고, 코스의 경사, 바람 등을 측정하는 그린 판독 기능은 금지’한다는 원칙이 정해지고, 프로 대회에서도 하나둘 거리측정기 사용을 허용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거리측정기 업체와 LPGA가 공식 파트너십을 맺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거리측정기 룰 혼동에 따른 실격

 

하지만 여전히 프로 대회에서 거리측정기가 제한 없이 허용되는 건 아니다. 사용이 허락된 대회에서도 일부 기능만 쓸 수 있다. 만일 허용되지 않은 기능을 갖춘 거리측정기를 쓰다 적발되면 실격 처리된다. 게다가 여전히 거리측정기 사용이 금지된 대회도 적지 않다. 이처럼 상황이 복잡하기에 골프 룰에 누구보다 민감한 프로도 거리측정기 룰을 혼동해 실격당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2022년 7월 KLPGA 서울신문 위민스 클래식에서는 송가은이 거리측정기 부정 사용으로 실격 처리되었다. 2022년부터 KLPGA 주관 대회에서 거리 측정기 사용은 허가되었지만, 오직 거리 측정 기능만 있는 거리측정기만 허용되고 고도 측정 등 다른 기능이 있는 제품은 엄격히 금지되었다. 이런 가운데 송가은은 기존에 쓰던 거리측정기가 고장이 나는 바람에 새로운 거리측정기를 쓰는 과정에서 착오가 있었고, 결국 사용이 금지된 슬로프 기능이 탑재된 거리측정기를 사용한 게 문제가 되었다. 결국, 송가은은 자신이 슬로프 기능이 탑재된 거리측정기를 사용했다고 주최 측에 자진신고했고, 실격 처리되었다. 말 그대로 실수였고, 또 실수를 인지한 당일 자진신고를 했기에 별다른 징계는 받지 않았다.

2022년 DP 월드투어 퀄리파잉(Q) 스쿨에서는 캐나다와 남미 PGA 투어 출신 블레이크 애버크롬비(미국)가 거리측정기를 사용했다가 실격 처리되었다. 이 선수도 규정을 잘 알고도 고의로 저지른 게 아니라, 착오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애버크롬비는 캐나다와 남미 투어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고, 캐나다와 남미 투어는 거리 측정기 사용을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버크롬비가 당시 출전한 DP 월드투어 Q 스쿨에서는 거리 측정기 사용이 엄격히 금지되어있었고 결국, 애버크롬비는 실격 처분을 받아들여야 했다.

지난 7월 열린 LPGA US여자오픈에서도 거리측정기 실격이 나왔다. 올해 신인왕 후보로까지 꼽히던 거물 신인 나타끄리타 웡타위랍(태국)이 거리측정기 사용으로 실격된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웡타위랍 본인이 아닌, 캐디가 거리측정기를 사용했다가 실격 처분되었다. 당시 웡타위랍의 캐디는 대회 1라운드에서 경기 중 허용하지 않은 거리 측정기를 여러 번 사용했다. 한 번만 적발되었다면 일반 반칙(2벌타)으로 끝났겠지만, 두 번 이상 위반한 것이 확인되어 선수의 실격 처분이 결정되었다. 결국, 웡타위랍은 자신의 생애 첫 번째 US여자오픈을 실격으로 날려버렸다.

 

거리측정기 관련 룰 적용의 문제

 

대회에 거리측정기 금지 룰이 있다면, 물론 이를 꼭 지켜야 한다. 문제는 관련 규정이 제각각이라 프로마저 혼동할 수 있다는 점이다. 원칙대로라면 영국 R&A와 미국골프협회가 결정한 룰에 따라 거리 측정 기능에 한하여 모든 대회에서 거리측정기 사용이 허용되어야 하겠지만, 대회 주최 측이 거리측정기 사용을 금지하는 로컬룰을 내세우면 어쩔 수가 없다. 거리측정기 규정은 로컬룰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다른 단체도 아니고, 같은 단체에서 열리는 대회에라도 누가 주최하느냐에 따라 거리측정기 허용 혹은 불허가 갈리기도 한다. 프로라도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고, 종종 실수가 나올 수밖에 없다. 

하루빨리 거리측정기 관련 규정이 통일되거나, 모든 선수가 이 상황에 익숙해질 때까지는 거리측정기를 둘러싼 혼란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GJ 김상현 이미지 GettyImages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하단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