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주니어 골프를 논하다

2021-08-23     나도혜

 

대한민국의 주니어 골프도 대한민국에 골프 인프라가 어느 정도 갖춰지고, 주니어 전문 교육에 신경을 쓰기 시작한 뒤에야 비로소 등장했다. 대한민국 주니어 골프는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또 주니어 골프가 긍정적으로 발전하려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주니어 골프의 중요성

 

주니어 골프는 골프라는 종목의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기준 중 하나이며, 그만큼 중요도가 높다. 어릴 때부터 골프를 접하고 흥미를 느껴 진지하게 진로로 설정하는 어린이가 이후 프로로 대성하는 경우가 많고, 꼭 프로가 아니라도 생활체육 차원에서 주니어 골프를 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스포츠는 어릴 때 접할수록 대성할 가능성이 크다. 대부분의 인기 스포츠에 주니어 시스템이 존재하는 이유다. 골프도 마찬가지다. 박세리가 어릴 때부터 골프에 재능을 보이자 아버지가 발 벗고 지도한 끝에 한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골프선수가 되었다는 건 유명한 일화다. 나아가 박세리 성공 신화를 보고 자란 ‘박세리 키즈’가 주니어 골퍼가 되고, 이후 프로 골퍼가 되어 골프계를 호령했다. 박인비, 신지애, 최나연 등 박세리 키즈들이 주니어부터 시작해 ‘세계 최강 한국 여자 프로골프’ 신화를 쓴 것만 봐도 주니어 골프의 중요성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대한민국 주니어 골프의 시작

 

이는 비단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해외에서도 주니어 골프의 중요성은 일찍부터 받아들여졌다.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주니어 골프 단체로 꼽히는 ‘미국 주니어골프협회(AJGA)’는 1974년에 창단되었고, 지금까지 미국 골프의 든든한 밑거름으로 불리고 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주니어 골프는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또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어떤 스포츠든 주니어 시스템이 돌아가려면 일정 수준 이상의 인프라가 갖춰져야 한다. 아직 성장기인 어린이나 청소년을 가르치려면 성인을 가르치는 것보다 더 높은 전문성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주니어 골프도 대한민국에 골프 인프라가 어느 정도 갖춰지고, 업계에서 이 부분에 신경을 쓰기 시작한 뒤에야 비로소 등장했다.

1970년대의 주니어 골퍼 김주헌을 예로 들어보자. 당시 김주헌은 세계주니어 골프 선수권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기록하고 국내 아마추어 골프 대회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큰 기대를 받은 주니어 골퍼였으며, 이후 일본에 귀화해 PGA 우승을 차지하는 등 준수한 커리어의 프로로 성장했다. 하지만 그는 한국의 골프 토양에서 자라난 주니어가 아니었다. 김주헌은 재일 교포였으며, 일본에서 골프를 배웠다. 일본에서 골프를 시작한 김주헌을 제외하면 당시 한국에서 큰 두각을 보인 주니어 골퍼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만큼 주니어가 활동할 만한 토양과 인프라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잘 보여준 사례다.

대한민국 주니어 골프는 1982년을 시작점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1982년 한국골프협회(현 대한골프협회)에서 본격적으로 주니어 골프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으며, 그에 발맞춰 각종 대회나 제도 등도 정비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주니어 골프 교육

 

이 시기 주니어 골프는 오늘날과는 여러모로 크게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오늘날에는 프로 골퍼를 지향하는  꿈나무들은 물론 취미나 생활체육의 영역에서 주니어 골프를 즐기는 아이들이 많다. 하지만 이 시기에는 엘리트 체육에 가까웠다. 

1982년 주니어 골프를 키우기 시작한 이유도 멀지 않은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에 대비하기 위한 목적이 컸다. 하지만 당시 한국골프협회에서 골프 꿈나무 발굴 및 양성, 주니어 대회 신설, 청소년골프 교실 개설 등으로 대회를 준비하는 것은 물론 이후 한국 주니어 골프의 발전을 위한 정책도 세우고 실천했다는 건 높이 평가할 부분이다.

당시 선발된 주니어들은 서울 등 각 지역의 골프장에 배속해 훈련을 시켰고, 해당 골프장에서 일체의 편의를 제공하며 협회에서도 학비 일체를 지급하고 주말에는 클럽에서 남자 캐디로 활용하는 등 여러 지원을 받으며 활동에 나섰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등 당면한 대회를 대비하기 위해 만들어졌음에도 나름대로 장기적인 계획 또한 세웠음을 엿볼 수 있다.

 

주니어 골프의 발전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대한민국 주니어 골프는 점점 발전하기 시작했다. 출범 후 1년이 지난 1983년에는 한발 더 나아가 주니어 골퍼를 1, 2단계로 구분해 모집했다. 중고등부로 나누어 16세 미만의 중등부, 19세 미만의 고등부 등 나이에 따라 두 단계로 나누어 보다 세분된 교육을 진행했고, 아직 골프를 배운 적 없는 지원자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했다. 나아가 국내 유명 선수들을 강사진으로 초빙하여 체계적으로 교육하고 이를 바탕으로 엘리트 선수를 양성하여 유능한 골퍼로 키워 한국 골프를 발전시킨다는 청사진까지 만들었다. 이때도 주니어 골프가 철저히 엘리트 체육의 기준에 맞추어 진행되었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지만, 아직 골프는 ‘귀족 스포츠’ 취급을 받던 시대임을 고려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대한민국 주니어 골프는 순조롭게 발전하며 중, 고등부는 물론 초등부도 신설되었고 주니어 골퍼가 국가 상비군이 되고, 프로로 전향하는 등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다만 경험도, 인프라도 부족한 탓에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주니어나 국가 상비군이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논란이 언론에 보도되는가 하면, 이에 국가가 나서 골프 상비군 논란을 진화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박세리와 박세리 키즈

 

다행히 대한민국 주니어 골프의 1차 목표였던 1986 서울 아시안게임 이후에도 주니어 골프를 향한 관심은 계속되었다. 특히 골프에 대한 진입장벽이 점점 낮아지며 주니어 골프를 향한 진입장벽도 함께 낮아졌고, 1990년대에 접어들면 ‘어린이 무료 강습’ ‘초등학교 골프스쿨’ 등 익숙한 시스템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박세리의 등장은 ‘박세리 키즈’로 대표되는 수많은 주니어를 양산하는 등 대한민국 주니어 골프의 역사를 바꾼 하나의 사건이 되었다. 박세리 신드롬이 대한민국 주니어 골프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하지만 오늘날 대한민국 주니어 골프의 문제점도 함께 잉태되었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박세리 신드롬을 다룬 1999년 매일경제의 기사를 살펴보자. ‘주니어 골퍼 육성은 고부가가치의 상품을 만들어내는 일에 비견된다’, ‘박세리가 골프 여왕이 된 것은 개인의 능력이 뛰어나서만은 아니며, 어릴 적부터 부모의 ‘스타 만들기’와 ‘박세리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등의 내용을 보면 이때부터 현재 대한민국 주니어 골프의 장점은 물론 단점까지 고스란히 나타났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이때부터 주니어 골프는 본격적으로 ‘스타 만들기’ 관점에서 다루어지는 경향이 강했고, 이로 인해 태동한 문제들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어찌 되었든 박세리 신드롬 이후에도 한국 주니어 골프는 꾸준히 발전했다. 2000년에는 국내 최초로 어린이 전문 골프 연습장이 문을 여는 등 주니어를 대상으로 한 시스템과 인프라도 점점 발전되었으며, 언론에서 ‘보다 견실한 주니어 골프스쿨을 찾는 법’이나 ‘효과적인 골프 유학 보내는 방법’ 등을 다루는 등 관심도 꾸준히 이어졌다. 

 

현재의 주니어 골프

 

현재 한국 주니어 골프는 과거보다 문턱은 훨씬 낮아졌고, 그만큼 기회도 많아졌다. 본격적으로 주니어 선수로 활동하는 것도 크게 어렵지 않다. 

한 예로 한국 주니어 골프협회 회원으로 등록하려면 테스트를 거치거나 대회에 입상할 필요가 없다. 6세에서 24세, 유치원생부터 대학생까지 모두에게 자격이 주어지며 학생 신분이 아니어도 등록할 수 있다. 타 단체도 사정은 비슷하다. 나이만 맞고 소정의 등록비를 지급하면 이후 협회에 소속된 회원이나 선수로 활동할 수 있다. 또 협회나 연맹 등에 가입하지 않고도 충분히 주니어 골프를 접할 수 있다. 

골프를 접하는 연령이 점점 낮아지면서 어린이 골퍼를 위한 시설이나 프로그램, 단체도 나날이 늘어나는 추세다. 종목도 다양해지고 있다. 스크린골프, 실내골프연습장, 파크 골프, 스내그 골프 등 분야도 넓어지고 방법도 다양해지는 등 한국 주니어 골프는 점점 저변이 넓어지고, 또 발전하고 있다.

 

비판적인 시선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 과거에 비해 크게 발전한 대한민국 주니어 골프를 바라보는 비판적 시선도 적지 않다. 특히 과도한 교육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어릴 때부터 골프를 접하고 배워야 뛰어난 프로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주니어 골퍼 본인의 뜻이 아닌 부모의 강압으로 막대한 비용을 들여 전문적인 고강도의 훈련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고, 이러한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학교에 다니면서 고강도의 골프 교육을 받는 주니어들은 체력과 정신력에 한계를 느껴 결국 이도 저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결과를 받기도 하며, 아예 학업을 등한시하고 골프만 전념했다 성공하지 못해 아이의 삶에 악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박세리처럼 어릴 때부터 골프에 전념하여 ‘성공 신화’를 쓴 프로도 여럿 있지만, 실패한 예도 많다. 냉정히 말하자면 성공 사례보다 실패한 사례가 훨씬 많다. 스포츠 업계는, 특히 프로 스포츠 업계는 성공한 사람보다 그렇지 못한 사람이 훨씬 많은 세계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주니어를 향한 과도한 교육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물론 이는 골프만의 문제는 아니다. 모든 예체능계, 나아가 학업에 관련된 모든 분야에서 찾아볼 수 있는 사회적 현상이다. 하지만 다른 곳에도 문제가 있으니 골프계는 이 문제에 등한시해도 된다는 시각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특히 ‘과도한 교육열’로 대표되는 대한민국 주니어 골프의 문제점은 오래전부터 지적되었음에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실패의 후유증

 

특히 주니어 골퍼가 실패한 뒤 후유증이 큰 경우도 많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한 문제다. 프로도 아닌 주니어가 부상 후 오랜 후유증에 시달리기도 하며, 골프에 ‘올인’ 했다가 골프에도 실패하고 학업도 성취하지 못해 방황하는 예도 있다. 부모의 지나친 ‘치맛바람’ 역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예를 들어 부모가 아이의 교육에 지나치게 개입하거나 아이와 함께 다니며 교육을 함께 하는 건 그만큼 큰 효과를 거둘 수도 있지만, 일이 잘못되면 역효과 역시 클 수 있다는 게 전문가의 지적이다. 

결국, 다양한 방식의 ‘과도한 교육열’이야말로 대한민국 주니어 골프 문제의 핵심이며, 이에 대한 대책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물론 종목을 막론하고 주니어는 그 종목의 밑거름이라 할 수 있으며, 주니어의 발전은 긍정적인 현상이다. 실제로 대한민국 주니어 골프가 발전하면서 대한민국은 골프 강국이 되었지만, 주니어 골프만큼 ‘과유불급’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곳도 없다. 지나친 교육열과 주니어 골프가 결합하면 자칫 아이의 삶 자체가 망가질 수 있는 최악의 선택이 될 수도 있다.

 

모든 주니어가 프로가 될 수는 없다.

 

어릴 때부터 아이에게 골프를 접하고 흥미를 느끼게 하는 건 바람직한 현상이다. 아이가 원한다면 골프를 진로로 설정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아이에게 지나치게 간섭하거나 아이의 삶을 파괴할 만큼 주니어 골프에 전념하는 건 지양해야 한다. 

모든 주니어가 프로가 될 수는 없다. 냉정히 말하면 프로가 될 수 있는 주니어보다 그렇지 못한 주니어가 훨씬 많다. 흥미 혹은 취미의 영역에서 주니어 골프를 시작하는 건 누구에게나 권할 만한 일이지만, 이를 진로로 삼으려면 먼저 심사숙고를 할 필요가 있다. 

그 어떤 목표도 아이의 행복보다 중요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주니어 골프도 이 점을 기억하고, 이제는 뛰어난 프로를 키우는 것뿐만이 아니라 보다 많은 아이의 삶과 행복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하지 않을까. GJ

 

 

By 나도혜 사진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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