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말을 벗어 던진 지 20년, 그리고 또 다른 '양말'
양말을 벗어 던진 지 20년, 그리고 또 다른 '양말'
  • 이동훈
  • 승인 2018.06.01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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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저널=이동훈 기자,사진=USGA] 박세리는 이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박세리가 양말을 벗어 던지고 하얀 발을 드러내며 폰드로 들어가 리커버리 샷을 눈물나도록 아름답게 해냈을 때. 그때부터, 딱 20년 제73회 US여자오픈이 시작했다. 박세리의 '맨발 투혼'으로 1997년 12월 IMF의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던 우리나라의 국민들은 박세리의 경기 장면과 BGM으로 깔리던 상록수가 기가 막히게 어울리던 공익광고와 TV 프로그램에서 박세리의 양말 투혼을 풍자하는 모습을 보고 그 어려운 시기를 이겨냈다.

단순한 우승일까? 당시의 대회장은 위스콘신주의 콜러에 위치한 블랙울프 런 골프장으로 2015 PGA 챔피언십이 개최되기도 했던 개최지다. 위의 박세리 사진을 보아도 알듯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남겨 놓는 골프장이라 인내심이 없으면 플레이할 수 없다고 이야기할 정도의 난이도를 자랑한다. 그런 난이도의 골프장에서 제53회 US여자오픈 17번홀까지 제니 추아리시폰(미국,현 간호사)과 동타를 기록했지만, 18번 홀 깊은 러프에 빠지며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상황. 박세리가 공을 바라보는 순간, 당시 캐디는 박세리에게 치지 말라고 권했다.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양말을 벗으며 하얀 발을 보여준 그때부터, 아름다운 리커버리 샷으로 페어웨이에 안착한 공을 볼 때 그리고 힘겹게 캐디가 골프채를 건네며 급경사를 올라오던 그 모습까지. 지켜본 국민들의 가슴을 꿈틀 거리게 만들며, 다시 할 수 있다는 마음을 심어 주고 "아빠, 나도 골프 할래요"나 "너도 한 번 골프 해볼래?"라는 이야기와 함께 골프의 전성기가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단 그 페어웨이로 올라간 공으로 동타가 되고, 서든데스 11번 홀에서 버디를 잡으며 그녀가 우승해서 이 발전이 됐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20년 전 지체없이 벗은 '양말'이 한국 골프라 본다.

그 마음이 모여, IMF 위기를 극복하고, 20년간 US 여자 오픈에서 박세리의 뒤를 이어 김주연(`05), 박인비(`08,`13), 지은희(`09), 유소연('11),  최나연('12), 전인지('15) 그리고 박성현('17)까지 9번의 이름을 US 여자 오픈 트로피에 각인하며 최근 'US 사우스 코리아 오픈'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리고 제73회 US여자오픈 10번째 트로피를 이번에는 또 다른 한국 선수들이 사냥에 나선다.

하지만, 요즘의 한국 여자 골프는 박인비 이후에 양말을 벗어 던질 각오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잘하는 선수는 많다. '골프를 좋아하는 사람'도 '골프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까지 팬으로 만들고 룰을 몰라도 그 선수를 바라보게 만드는 마성을 지닌 선수의 부재가 아쉽다. 루키에서 스타가 되기까지는 실력과 스토리가 필요하다. 그 전제 조건 안에는 쉽지 않은 길을 걸어 나가는 결단성과 누군가의 강압이 아닌 역경과 고난을 스스로 헤쳐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또 다른 '양말'을 벗어 던질 때 새로운 물결이 시작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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