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J레이더] 지상 최고의 게임
[GJ레이더] 지상 최고의 게임
  • 이동훈
  • 승인 2018.05.18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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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저널=이동훈 기자, 사진=USGA, terryandsue, ShutterStock] 하루에 5시간 라운드를 즐기고 왕복 2시간, 그리고 식사 1시간 등 주중과 주말 8시간을 골프장에서 보내며, 소홀하다고 가족과 싸우고 아빠 혹은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우는 아이들이나 화내는 연인을 가진 대한민국 땅의 수많은 매드 골퍼를 위해, 가족의 달 5월에는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오붓한 시간을 보내라고 이 영화를 추천한다. 아! 물론 골프 영화다.

무엇을 다룬 영화일까?

골프를 처음 치기 시작했을 때, 우연히 이 영화를 추천 받았다. 당시만 해도 골프 영화라 하면, 캐빈 코스트너 주연의 틴 컵(Tin Cup)을 다들 추천할 때이다. 우스꽝스러운 개그와 상업적인 미국 코미디 골프 영화가 틴 컵이라면, 지상 최고의 게임은 당시의 골프를 가장 잘 표현한 다큐멘터리 드라마라 할 수 있다. ‘지상 최고의 게임’이라는 의역 아닌 의역을 보고, 이것도 약간 과장된 디즈니사의 영화겠거니 혹은 그냥 골프 잘 쳐서 성공한 이야기겠거니 했다. 하지만 영화 시작 부분에서 ‘실화를 기반으로 했다’는 문장을 읽고 나서 자세가 달라졌다. 개인적으로 영화를 볼 때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이야기가 보이면, 긴장감과 몰입도가 높아진다. 골프 실화라면 더욱 그러하다. 영화 초반 누구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는지 모르고 있다가 처음 트랜스포머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샤이아 라보프를 부르는 장면에서 “위멧”이라는 것을 듣자마자 프란시스 위멧의 이야기임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아, 그 이야기구나!”’

프란시스 위멧 

프란시스 위멧은 골프클럽의 캐디 출신이자, 미국의 전설적인 아마추어 플레이어다. 토너먼트에서 총 27회 우승을 했고, 1913년 US 오픈에서 정점을 찍었다. 1895년 US 오픈이 시작된 이후, 당시 모든 대회는 영국이나 스코틀랜드 선수들이 우승을 가져가기 일쑤였다. 미국에서는 그 선수들을 막을 만한 방법이 없었다. 20살이 된 프란시스 위멧은 메세추세츠 아마추어 골프대회에서 우승하고, US 아마추어에서 4강에 오르면서 US 오픈 출전 자격을 얻는다. 그리고 1913년 US 오픈에 아마추어 자격으로 출전해 우승한다.  

왜 이 영화를 추천했을까?

지상 최고의 게임을 가족과 함께 보라는 것은 의미가 있다. 이 영화는 골프라는 스포츠가 주는 감동도 있지만, 휴머니즘이 가미된 드라마가 가장 큰 포인트다. 그리고 남녀노소 모두 편하게 즐겨 볼 수 있는 스토리 라인이 좋다. 골프를 잘 몰라도 상관없다. 너무 남녀 간의 사랑에만 치중하지 않고, 또 너무 스포츠에만 치중하지 않은 가족 영화다. 그리고, 그 내용이 상당히 탄탄하다. 당시의 시대 배경을 잘 보여주는 부분과 당시에 골프를 쳤다면 느낄 수 있을 법한 소품에서 컴퓨터 그래픽까지 그대로 영화에 빠져들어 즐겁게 볼 수 있다. 이 영화에서 프란시스 위멧의 아버지는 가부장적인 성격으로 ‘골프는 인생에서 필요 없다!’를 외치며, 가업을 이어받으라 한다. 위멧의 아버지는 ‘골프가 무슨 돈이 된다고 하냐, 그냥 일이나 하라’고 위멧을 압박한다. 그러나 어머니는 위멧을 위해 유명 골프 선수인 해리 바든의 공개 레슨에도 데려가고, 남편 몰래 아들을 응원하고 지지한다. 

[사진=아놀드 파머와 프란시스 위멧]

1913년 US 오픈

1913년도 US 오픈 마지막 라운드 9월 19일 금요일 오후 미국의 프란시스 위멧과 영국의 테드 레이 해리 바든은 총 12오버파를 기록하며 연장전에 돌입한다. 프란시스 위멧은 클럽 캐디 출신 아마추어고, 테드 레이와 해리 바든은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국 저지 출신의 슈퍼스타였다. 지금으로 치면 타이거 우즈의 명성과 비교할 만 하니 엄청난 선수라 할 수 있다. 위멧은 그저 아마추어에 20살이다. 미국 현지 언론은 ‘해리 바든의 참여 소식에 우승은 물 건너갔고, 2위 싸움이다’라고 풀이 죽었을 때, 위멧이 기적적으로 등장했고, 그의 캐디도 이슈가 됐다. US 오픈 당시 캐디의 나이는 겨우 10살! 12살 소년인 잭 로리가 캐디를 봐주기로 했지만, 선생님에게 잡혀가면서 대신 잭 로리의 동생인 에디 로리가 캐디백을 맨다. 위멧은 비싼 가격으로 캐디를 쓸 수 없기 때문에 에디 로리와 함께 US 오픈에 임했다.위멧에게는 자신의 홈 코스라는 것이 가장 큰 이점이었다. 연장전은 18홀로 진행됐으며 비가 많이 왔다. 위멧은 대회가 펼쳐진 더 컨트리클럽(The Country Club)에서 11살부터 캐디를 하며 골프를 배워서, 코스에 비가 오는 날에 수십 번은 더 라운드를 했었다. 아마추어에게 연장전을 허용해서일까? 바든과 레이는 각각 77타, 78타를 기록했고, 위멧은 72타를 기록하며 5타~6타차 우승을 차지한다. 

미국 골프 역사상 가장 빛나는 순간 

위멧이 우승한 순간, 아마추어여서 상금을 받지 못하는 프란시스 위멧을 목말을 태우고 사람들이 1달러씩 모아서 총 100달러를 전달했는데, 그 사이에는 그동안 위멧을 반대한 아버지도 있었다. 아마 이 순간이 미국 골프 역사상 가장 빛나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 최고의 US 오픈 아마추어 우승자의 탄생과 대적 할 수 없던 영국과 미국의 싸움에서 이겼다는 것. 그리고 상대가 해리 바든과 테드 레이고 그를 꺾은 것이 20살의 천한(?) 캐디 출신 아마추어라는 점이 많은 사람을 자극했고, 이는 미국 골프 역사의 판도를 바꿨다. 이 우승을 계기로 1922년까지 골프 선수의 수가 6배나 늘어나는 대기록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위멧은 골프 스포츠 사상 처음으로 유명 잡지의 모델이 된다. 아놀드 파머가 골프 방송을 이끌면서 새로운 발전의 물결을 선보였다면, 그 전에 골프 대중화를 이끈 것은 프란시스 위멧이다.프란시스 위멧은 어린 골프 관련 종사자를 위해 장학금을 모금하는 프란시스 위멧 장학금 펀드를 운용한다. 그리고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13이 찍힌 우표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파인 허스트에 있는 세계 골프 명예의 전당(World Golf Hall of Fame)의 한쪽에 프란시스 위멧과 에디 로리의 동상이 있는데, 그들의 동상은 ‘귀천 없는 골프의 대중화와 골프 최초의 영웅’이라는 의미로 아직 남아있다.

해리 바든

1870년 생의 당시 영국을 대표하는 골프 선수로 바든 그립(오른손 새끼손가락을 왼손 집게손가락에 포개는 오버래핑 그립)의 창시자다. 20살에 프로가 돼서, 1896, 1898, 1899, 1903, 1911, 1914년도에 영국 오픈 대회와 미국 오픈 대회에서 우승하며, 위대한 3거두라 불렸다. 해리 바든은 주로 장타를 위한 타격 기술을 크게 혁신시킨 인물로 그의 이름을 딴 ‘바든 트로피’가 매년 PGA 투어에서 최우수 평균 타수를 기록한 선수에게 주어진다.

영화를 보면 즐거운 요소가 많다.

해리 바든이 티샷을 하는데, 사람, 로프, 나무 등 모든 사물이 사라지는 모습이 있다. 골프를 가장 잘 표현한 장면이라 꼭 봐야 한다. 영화에 대한 전체 리뷰를 할까 하다가, 영화를 보는 재미를 느끼게 하기 위해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과 그때 당시의 상황에 대한 설명을 부가적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 판단했다. 이 영화의 마지막 1달러를 건네는 아버지와 아들의 그 애틋한 순간은 아마 가족이나 연인이 같이 봐도 충분히 감동할 만한 소재로 꾸며져 있다. 5월은 가족의 달이다. 골프도 좋지만 가족이나 연인과 시간을 내서 지상 최고의 시간을 같이 보내 보는 것은 어떨까?

“골프는 멋진 교훈을 주는 게임이다.그 첫째는 자제, 즉 어떠한 불운도 감수하는 미덕이다”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아마추어이자. 첫 번째 골프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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