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원형 콘텐츠> 솟대에 앚은 오리 세 마리
<민족원형 콘텐츠> 솟대에 앚은 오리 세 마리
  • 남길우
  • 승인 2014.10.01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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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원형 콘텐츠

솟대에 앉은 오리 세 마리

솟대란 나무나 돌로 만든 오리를 나무나 장대위에 앉힌 신의 상징물

솟대는 마을에서 정월 대보름날 마을 굿이나 동제를 모실 적에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기 위해 마을 입구 등에 세우고 있다.

솟대의 시작은 한웅천왕이 신시를 열면서 천신을 모시기 위하여 만든 소도에 세운 신의 상징물로 엄숙하고 성스러운 곳이라는 뜻이다. 솟대를 세운 곳은 신성한 곳으로 여겨 죄인이 들어와도 잡아가지 않았다.

특히 소도에는 많은 박달나무를 심었는데 그 중 가장 큰 나무를 골라 한웅의 상 즉, 웅상이라고 부르며 방울 북을 매어 달면서 솟대가 시작됐다. 예전에는 솟대 또한 무교와 함께 미신풍조라는 뜻으로 그 가치가 폄하되어 보기가 힘들었지만 요즘은 많은 곳에서 솟대를 세우고 또한 장식물로서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솟대를 신성시하는 역사는 북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공통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청동기시대의 제기에도 나뭇가지나 기둥에 새를 앉힌 조형물이나 문양이 발견된다.

이처럼 넓은 지역에서, 또 청동기 시대까지 올라가는 시간성은 솟대가 고대 마고 삼신시대에서부터 시작된 신앙으로 동이족들이 북아시아 전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자연스럽게 퍼져나간 보편적인 신앙요소임을 짐작할 수 있다.

솟대는 세 가닥의 나무 가지에 반드시 오리 세 마리가 앉아 있다. 예전에는 그 새가 오리가 아니고 다른 새라는 설도 있었으나 지금은 오리라는 것이 정설로 굳어져 전부 오리로 알고 있고 그렇게 만들고 있다.

새는 우리 민족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새에 대한 신앙자체도 청동기 시대에 들어서 본격적으로 성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 청동기 시대 왕들의 권위와 신성성을 부여받기 위해서 새가 천신과 왕 사이를 오가는 매개체의 역할을 하였으며 그 결과 우리 건국신화 중에서 새의 알에서 태어났다는 난생설화를 많이 탄생시켰다. 그리고 새는 인간의 의식(儀式)이나 종교생활에도 널리 사용되어 왔다. 새의 날개는 이승과 저승을 오갈 수 있는 수단이므로 새는 영매자의 역할을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단군시대의 구성원 중 가장 큰 부족들을 구가(九加)라고 하는데 그 중 새의 이름을 딴 학가(鶴加), 응가(鷹加), 노가(鷺加) 가 있다는 것만 봐도 새에 대한 외경심을 알 수가 있다.

이런 이유로 새는 벽사의 힘을 지녔다고 믿었고 우리가 널리 사용하는 삼재부적을 비롯한 여러 부적에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새가 지니는 상징은 새마다 다르다. 기러기는 혼례 때 사용되고 있으며 한번 짝을 맺으면 평생 동안 지조를 지키는 정절의 새로 여기고 있다. 까치는 헤어진 사람을 만나게 해준다고 믿고 있으며 동시에 까막까치는 저승길을 인도하는 저승사자를 나타내기도 한다.

꿩은 남을 존경할 줄 아는 새로, 닭은 귀신을 쫓는 새로, 매는 풀지 못한 일을 해결해 주는 새로, 박쥐는 복을 주고 자손을 번성하게 해주는 새로, 부엉이는 좋은 일이 생길 것을 알려주는 길조로, 비둘기는 금술 좋은 다정한 부부의 상징으로, 올빼미는 재앙을 예견하는 새로, 제비는 인산 세상에 내려 온 신의 사자로, 학은 고고한 인품을 지닌 선비를 상징하기도 한다.

우리 민족과 특별한 관계를 지닌 새가 바로 까마귀로 보통 효성스런 새로 믿고 있지만, 태양을 상징하는 새로 삼족오가 있다. 제주도는 까마귀가 강님차사의 심부름꾼으로 인간 세상에 수명을 전해주는 명부(冥府)의 새로 등장하기도 한다. 서양에선 흑색까마귀는 음양을 상징하는 흉조라고 믿으며, 적색이나 금색까마귀는 태양과 효도를 상징하기도 한다고 한다.

오리는 우리 솟대에 앉아있는 신의 새로 알고 있다. 그럼 왜 많은 새 중에서 오리를 솟대에 앉혔을까? 하는 의문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오리는 오리과의 작은 물새를 통틀어 말한다.

일부 텃새도 있지만 대개는 가을에 북쪽에서 번식해 우리나라로 이동해오는 겨울 철새인 동시에 다산성을 지닌 새다. 오리가 지닌 물새, 철새, 다산성은 여러 가지의 종교적 상징성을 갖는다.

또 오리는 전형적인 물새이며, 잠수조다.

이 잠수능력은 수계(水界)나 지하세계와 관련한 중요한 종교적 의미가 있다.

곧 물새는 하늘, 땅, 물을 그 활동영역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 들새나 산새보다도 종교적 상징성을 지니기에 충분하다. 또한 오리는 물과의 밀접한 관련성으로, 비와 천둥을 지배하는 천둥새 속성을 지님과 동시에 오리의 꽥꽥거리는 울음소리 때문에 야크트족은 오리는 천둥새, 곧 철로 만든 새라고 여겼다.

이렇게 천둥새로서의 오리는 벼농사를 위주로 하는 농경마을에서는 비를 가져다주는 농경 신으로 정착됐으며, 전형적인 물새이며, 잠수조이기 때문에 홍수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불사조로도 생각됐다.

전북 정읍군 산외면 목욕리와 진안군 마령면 사곡리, 고창군 신림면 무림리에서는 <오리는 물에서 사는 짐승이라 화재를 방지한다.>하여 솟대를 세웠다고 한다.

오리의 또 하나 특성은 철새라는 점이다.

철새는 계절이 바뀌는 변화를 암시해 주고 초자연적 세계로의 여행을 의미하여 산자와 죽은 자의 세계를 넘나드는 영혼의 순환적 여행을 뜻하기도 한다.

그 예로 퉁구스족은 오리가 되돌아오는 것을 영혼의 이주(移住)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철새는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인간과 신의 중계자로서 신앙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새였다. 즉 오리는 이승과 저승을 그리고 인간의 세계와 신의 세계를 넘나드는 신의 매개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철새인 오리가 갖는 주기성이 농경에 절대 필요한 비를 가져다주는 주기와도 관련 있는 것으로 생각됐다. 실제로 일부 마을에서는 솟대위의 오리를 정남향으로 앉히기도 했는데 이것은 오리가 남쪽에서 비를 몰고 온다는 믿음 때문이다.

오리는 닭보다는 크고 무거운 알을 한 해에 300~600개의 알을 낳는다.

이러한 오리의 다산성과 물새며 철새인 오리는 농경에 절대 필요한 물과 풍년이 관련되어 신앙의 대상이 됐다고 생각할 수 있다.

새의 알은 대개 불멸성, 잠재력, 생명의 신비, 생식의 근원 등의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이에 따라 파종 때에 주머니 알을 넣고 있거나, 밭에 알을 파묻는 속신도 생겨났다.

경주지방에서는 각 가정의 방문 앞 처마에 꿩알의 껍질을 줄에 꿰어 달아놓으면 상서로움을 가져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종교적인 상징성 이외에도 오리가 중요한 의미를 가진 새로 새 중에 으뜸으로 여겼다는 증거가 오리를 한자로 압(鴨)이라고 부르는데서 알 수가 있다.

이 압자를 파자하면 새(조鳥)자와 (갑甲)자가 결합된 글자가 오리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즉 오리는 새 중에서 가장 으뜸, 또는 첫 번째라는 뜻으로 역법에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주기인 육십갑자의 첫머리인 갑(甲)자를 새 앞에도 붙였다. 그 이유는 바로 오리가 신시의 상징인 소도에 있는 솟대에 앉아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글/조성제>

저자 / 愚鳥 조성제

舞天문화연구소장

<무교이론 1,2>와 <무교의 신과 굿거리 해설>, <무교에 나타난 동물의 상징성> 4권의 교재 발간

국내 무속전문가인 조성제(61, 舞天문화연구소장) 소장이 ‘무교인 들의 필수 교양서’를 발간하면서 한국무속의 근본과 무교의 현대적 정립을 시도하고 있다. 최근 <무교이론 1,2>와 <무교의 신과 굿거리 해설>,무교에 나타난 동물의 상징성>이란 4권의 교재를 ‘굿문화연구회’에서 발간했다.

조성제 소장은 “무속이란 말은 대한암흑기에 일본인들이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심성이 담긴 신교, 즉 무(巫)를 원시적이고 속된 것이라는 뜻으로 폄하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지적하고 “‘무(巫)’가 가진 철학은 지구상 어느 종교 못지않게 숭고한 정신을 가지고 있다. ‘巫’ 자에서 천지인 합일사상을 도출해낼 수 있고, 또 그 정신을 생생지생(生生之生)으로 압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삼신의 가르침인 인간의 본성을 회복하도록 조언하고 어려운 일을 도와주는 무교인이 더 많기에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무교가 존재하고 그 사제인 무당이 활동하고 있다. 무당이 신을 청할 때 읊는 ‘무가사설’에선 “무당은 만인의 꽃이 돼야 한다”고 한다. 만인의 꽃이란 보기 좋은 꽃이 아니라 고통과 절망을 이기고 용기와 희망을 얻을 수 있는 꽃, 피폐해진 정신을 정화하고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힐링의 꽃이 돼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순기능이 바로 민족의 정체성과 심성을 대변하는 무교의 사제인 무당들의 역할이다. 무속인이 무(巫)를 속되게 하는 사람이라면, 무교인은 무의 정신을 전파하는 사람이다. 30만 명으로 추산되는 무교인들이 부디 무속인이 되지 말고 무교인이 되어 사회에서 존경받는 무교의 사제가 됐을 때 비로소 민속신앙인 무속이 민족종교 무교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고 조성제 원장은 무속의 폐단을 밝히고 무교(巫敎)가 “‘한민족 정신이 담긴 전통문화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민족정신의 보고를 잘 보존하고 전파하는 역할”을 무교인들에게 주문했다.

조성제 무천문화연구소장은 1988년 어느 굿을 보고 공무원을 그만두고 굿판 속으로 뛰어 들어 지극히 평범했던 삶은 이상한 삶이 됐다.

일찍부터 무속의 근원과 의미 등을 상고사 속에서 찾아, 무교가 미신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정체성이 담겨있는 민족종교라는 것을 알리려고 무교의 이론 정립에 노력하고 있다.

대학과 문화원 등을 비롯한 많은 곳에서 강의를 하였으며, 몇 년 전 무속인 들의 자질 향상을 위하여 서울과 부산에서 무속교양대학을 개설한 바 있다.

현재 무속의 사상과 이론을 연구하는 <무천문화연구소>소장과 무당들의 잘못된 행동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최초의 <무속칼럼니스트>, 무교의 근원과 역사를 배우고 익히는 사람들의 모임인 <굿문화연구회>회장 그리고 국내 유일의 무속 팟캐스트방송 <그래! 나는 무당이다> 대표 및 진행자와 한국무교학회 이사, 한국무속학회 및 축제연구포럼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무속에 살아있는 우리 상고사> <상고사 속의 굿 이야기> <무속에 나타나는 동물의 상징성> <신을 조롱하는 무당> 무교대학 교재 <무교이론ⅠㆍⅡ> 등이 있으며, 현재 <상고사 속의 굿이야기>를 집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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