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PLAZA] Memory Scape- 뒤안길, 그 소망의 통로 '서홍석 회화전'
[ART PLAZA] Memory Scape- 뒤안길, 그 소망의 통로 '서홍석 회화전'
  • 남길우
  • 승인 2015.11.03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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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PLAZA

Memory Scape-뒤안길, 그 소망의 통로

‘서홍석 회화전’ 월드벤처아트센터 기획초대전

지난 10월 5일부터 30일까지 금천구 가산동에 위치한 월드벤처아트센터에서 서홍석 화백의 회화 초대전이 열렸다.

그의 회화작업은 단순한 사진 기록과는 달리 한국의 사회 공간 속에 있는 특유의 무질서한 듯 하면서도 삶의 에너지와 의지가 투영된 여러 물상들을 직접 하나하나 붓을 통해 구체적인 색깔들로 살려낸 것들로서, 달리 말하면 그것들을 붓을 통해 다시 경험해낸 것으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글|서길헌 큐레이터(조형예술학 박사) 사진|정 훈 기자

 

기억의 저편에서 떠오르는 골목길 풍경

삶 속에서 경험된 풍경은 소중하다. 그러나 이제 그 경험을 통해 삶의 일부가 된 풍경들은 하나씩 사라져간다. 도시 미관을 해친다거나 도시를 보다 더 살기 편한 장소로 만들겠다는 도시 재개발 계획에 의해, 특히 비좁고 구불구불하고 가파르고 다닥다닥한 풍경을 이루던, 때로는 포장마차들과 골목 상권 가게들의 간판들과 차일과 쌓아놓은 물품들로 얼룩덜룩하고 울긋불긋하게 삶의 풍경을 채색하던 골목길 역시 점점 더 시간의 뒤안길로 사라져가고 있다. 그 길은 점점 소멸되어 기억 속의 풍경들이 되어간다.

작가 서홍석의 그림들에는 그러한 골목길 풍경이 기억의 저편에서 문득 떠오르듯이 명료하게 포착되어있다. 각각의 그림들을 자세히 보면 어둑신한 골목의 저편 끝에는 어김없이 희미하지만 분명한 빛을 발하고 있는 소실점이 있다. 그 소실점은 때로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분주히 골목길을 오가던 사람들, 그곳에서 고단했던 하루를 한잔의 소주로 달래던 사람들이 막연하게나마 기대고 있던 소망처럼 아스라하면서도 따스한 빛을 발한다. 소실점은 화면에서 단지 사라지는 공간이 아니고 화면을 화면 밖의 공간으로 이어주고 무한히 확장시켜주는 연결 통로이다. 그리하여 그곳에는 화면에는 보이지 않는 많은 잠재적 풍경들이 숨어있다. 이는 대부분의 골목길이 대로에서는 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숨어있는 뒤안길로서 우리의 삶 곳곳에 움트고 있는 소망들을 속속들이 틔워주는 통로의 역할을 하는 것과 상통한다.

서홍석이 즐겨 그리는 ‘종로의 피맛골’

이렇게 큰길에서는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뒤편의 길인 뒤안길은 삶의 주무대는 아니지만 그 길에는 삶의 모든 소망들이 통행한다. 지난 세월 대개 우리의 삶은 이러한 뒷길을 통해 모질고도 꿋꿋하게 이어져 왔다. 예를 들면, 서홍석이 즐겨 그리는 소재인 종로에 있는 피맛골은 말을 타고 다니는 대로의 고위 관리나 세도가들의 행차를 피하기 위해 서민백성들이 다니던 좁은 뒷골목길이지만 바로 그 길을 통해 그들의 소박하고 끈질긴 삶은 영위되어왔다. 가파른 지하철 통로 계단 역시 차들로 붐비는 바깥거리를 피해 서민들이 택하지 않을 수 없는 지름길이자 일종의 피난길이라는 면에서 오늘날 피맛골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숙명처럼 그러한 통로를 따라 오고 감으로써 그들은 나름대로 그 길과 친해지고 그 길목에 삶의 일부분을 할애한다. 골목길은 가야 할 곳을 가기 위해 지나치는 통로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삶의 또 다른 무대가 된다. 따라서 통로는 과정으로서의 역할을 하면서도 그곳을 거쳐야 하는 사람들에게 목적지에 이르기 위해 바삐 지나쳐가야 하는 피할 수 없는 길목으로서의 의미만이 아니라, 그러한 길 자체가 지니고 있는 끈끈한 삶의 공간을 겪는다는 의미에서 오히려 삶의 몸통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특히 한국의 골목길들은 일반 백성들, 소시민들의 삶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끈질기게 살아서 공존해왔다.

한국의 골목길의 의미에 대한 고찰

프랑스의 인류학자 마크 오제(Marc Augé)는 일상과 분리되어있는 현대 도시의 비개성적이고 불확실한 공간을 ‘비(非)-장소’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예를 들면, 도시 한구석에 방치된 미개발지, 공사장, 공항이나 역의 플랫폼, 대합실 등등의 익명의 장소에 있는 순간 사람들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잃고 일시적으로 떠도는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골목길도 어떤 의미에서는 일종의 그러한 비장소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재래의 골목길은 서민들이 일상의 삶 속에서 반질반질 닳도록 지나다니는 동안 너무도 친숙해져 눈을 감고도 떠올릴 만큼 이미 그들의 생활이 녹아있는 곳이기에 더 이상 비장소가 아니다. 그곳은 오히려 소망화된 풍경이다.

벤야민(Benjamin)이 파리의 아케이드식 통로(Passage)에서 읽어낸 소망의 의미는 아케이드 상가에 진열된 상품들이 가지고 있는 물신화된 욕망으로서, 이는 소망의 소외를 말하는 것이지만, 한국의 골목길의 욕망은 이와는 다른 의미에서의 질박한 소망 자체이다. 왜냐하면 골목길의 상점들에서 파는 물품들은 대개는 소박하지만 일상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요긴한 것들이고, 포장마차라든가 하는 임의적 공간들도 그 나름대로 불가결한 하루의 휴식처들이기 때문이다.

 

 

서홍석의 시각으로 본 골목길

이렇게 서홍석이 포착한 골목길에는 한국사회가 고단하게 달려오면서 남겨놓은 여러 흔적들이 담겨있다. 그것은 무질서한 간판들과 각종 가림막이나 벽보 등이 구성하는 울긋불긋한 색깔들, 언덕이라든가 비좁은 통로를 따라 조성된 우중충한 시멘트벽들과 그곳에 붙어있는 환기통들과 배수관들, 어김없이 우뚝우뚝 늘어서있는 전신주들과 거기에 거미줄처럼 어지럽게 뻗어나간 전선들이 드러내는 아슬아슬하고 심란한 공간구조 등으로 나타난다. 서홍석은 그러한 풍경들을 불필요한 미학적 윤색이나 과장 없이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그것들은 있는 그대로 한국의 도시풍경에서 지울 수 없는 삶의 풍경을 이루는 것들이다. 달동네라든가 재래시장 등의 풍경을 낳는 골목길은 일부러 그러한 구조를 택해서 생겨난 모습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지형적으로 형성된 언덕배기나 시장통에 사는 사람들이 일상의 양식을 조달하고 가족들의 행복과 그 터전을 지켜내기 위한 필요에 의해서 다닥다닥 뻗어나간 삶의 신경망이자 실핏줄이다.

뉴타운 개발 등의 도시 재개발은 이러한 잡다한 풍경들을 일거에 청소하듯이 지워버렸고, 그 자리를 자로 잰 듯 반듯반듯하게 직선화된 크고 너른 길과, 콘크리트와 철골과 유리로 이루어진 거대한 매스로 하늘을 자르는 고층건물들의 깔끔한 대도시풍경으로 대체했다. 그럼으로써 지난날 우리 삶의 풍경에서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던 이 각별한 느낌의 공간은 불시에 소거되었다. 대도시를 무표정하게 배회하는 사람들 앞에 그러한 풍경들은 낯설게만 다가온다. 그들은 수 없이 오가는 군중 속에서 대피처를 찾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다가갈 수 없는 유령과 같은 존재일 뿐이다. 이를테면 서홍석의 골목길 연작 중에 지하철역 통로 계단을 힘겹게 오르는 평범한 시민들의 실루엣이라든가 출퇴근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지하철 풍경들이 있는데 이러한 새로운 성격의 통로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서는 지상의 골목길 풍경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모습과는 또 다른 느낌의 고독감이 배어난다. 지하 통로나 차내를 일정한 톤으로 밝히는 형광불빛이라든가, 화면에 규칙적인 구도를 제공하는 계단이라든가 벽, 또는 지하철 손잡이들의 정연한 배열에서 묻어나는 차가운 소외감 때문일까. 지독한 밝음이 주는 이 역설적인 소외감은 어둠이 주는 그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으며, 이는 현대적인 뒤안길의 풍경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인적이 거의 끊긴 어제의 폐허야 말로 오늘의 수수께끼가 풀리는 곳”이라는 벤야민의 말처럼, 그러한 밝거나 어둑신한 뒤안길의 모습은 어제와 오늘의 우리 삶을 잇는 뿌리를 이룬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현대화된 골목길 풍경에서도 소시민들 속에 잠들어 있는 귀한 소망을 읽을 수 있으리라. 물론 이러한 정서적 이유에 의해 공간의 경제와 효율성 등을 앞세운 현대 도시계획 자체가 부정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그러한 것들에 대한 의미 부여는 중요하고 그러기에 더욱 서홍석의 작업은 적지 않은 중요성을 띤다.

경험된 기억의 풍경의 ‘재경험’

가파른 언덕길이라든가 골목길 포장마차 풍경들은 오랫동안 노량진에 있는 직장을 오가며 그가 수없이 몸소 보고 겪었던 풍경들이기도 하고, 아니면 지난날 그가 살아온 여정에서 이미 그의 기억 속에 너무나도 살아있는 풍경이기도 하다. 그 풍경들은 점차 사라져가거나 조금씩 다른 형태로 변해왔지만 그는 그러한 풍경들을 쉬지 않고 스케치 하고 더러는 작업의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수없이 사진으로 찍었다.

대개 그림 그리는 일 외에 생활에 필요한 수입이 어느 정도 보장되는 직장을 가지고 있는 작가들은 자신의 그림 작업에 그다지 몰두할 수 없고 그러지도 않는다. 우선 고된 직장 생활에서 오는 피로에 지쳐 안주하기 쉽고 그러다 보면 그리고자 하는 욕망이 서서히 퇴화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홍석은 그럴수록 자신이 보고 겪는 풍경들을 꾸준히 화폭에 담고자 하는 창작의 열망을 한 순간도 버린 적이 없다. 그래서 그가 지친 몸을 이끌고 오가면서도 열정적으로 끈질기게 포착해낸 골목길 풍경들에 담긴 모습들은 한국사회가 결코 잊거나 지워버릴 수 없는 소중한 사회, 문화, 역사적 자산을 이룬다.

그의 회화작업은 단순한 사진 기록과는 달리 한국의 사회 공간 속에 있는 특유의 무질서한 듯 하면서도 삶의 에너지와 의지가 투영된 여러 물상들을 직접 하나하나 붓을 통해 구체적인 색깔들로 살려낸 것들로서, 달리 말하면 그것들을 붓을 통해 다시 경험해낸 것으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그럼으로써 서홍석은 경험된 기억의 풍경을 “재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프루스트(Proust)가 한때 경험했던 유년시절의 잃어버린 시간을 글쓰기 작업을 통해 하나하나 되찾은 것처럼 희미한 기억의 저편에 있는 풍경을 하나씩 구체적으로 다시 살아내는 일이자 그 뒤안길에 횡행하던 소망의 통로를 되살려내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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