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장상 : 그 시절 우리가 열광했던 한국 골프의 상징
한장상 : 그 시절 우리가 열광했던 한국 골프의 상징
  • 김태연
  • 승인 2021.11.2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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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17세의 나이에 처음 골프채를 잡은 한장상! 1960년대 한국 골프는 그를 빼놓고 이야기를 할 수 없을 정도다.

 

우리나라 프로골프대회는 195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서울컨트리클럽과 부산컨트리클럽 두 군데만 있었던 우리나라에서는 프로골프선수들도 많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 일본 선수들도 참가했으며 그해 6월 최초로 KPGA 선수권 대회가 열리면서부터 시작되었다. 

9월에는 한국오픈이 서울컨트리클럽에서 개최됐으며 프로골프대회 창설에 큰 역할을 했던 국내 프로골프선수 1호인 故 연덕춘 제2대 한국프로골프협회 회장이 4라운드 합계 18오버파로 우승을 한다. 이후 한국오픈의 경우, 1963년까지 미국 군무원이었던 무어, 미 8군 소속 하사였던 오빌 무디 등 미국과 일본, 대만 선수들이 우승을 차지하며 자칫 외국인을 위한 잔치로 전락할 위기에 빠지지만, 한장상(한국프로골프협회 고문·80)의 등장으로 한국 프로골프는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된다. 

 

아르바이트로 골프와 인연

 

살아있는 한국 골프의 전설로 불리는 한장상. 특히 1960년대 한국 골프는 그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다. 골프에 입문하기 2년 전, 서울컨트리클럽에서 캐디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것을 계기로 골프와 인연을 맺은 그는 손님에게서 받은 5번과 7번 아이언으로 지독한 연습을 시작했다. 

당시 골프는 부자들만 치는 운동이기 때문에 지금처럼 8~10분 간격으로 라운드를 즐기는 골퍼들이 없었다. 당연히 손님이 별로 없기 때문에 캐디들이 연습을 한다고 해서 누구 하나 뭐라고 하지 않았으며, 같은 캐디 3명과 하루에 113홀을 돌 정도로 더욱 열심히 연습할 수 있었던 것이 그를 한국 골프의 전설로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첫 우승 그리고 일본 투어까지 진출

 

 

지독한 연습벌레였던 한장상이 처음 우승컵을 들어 올린 것은 1960년 8월에 열린 제3회 한국프로골프선수권대회였다. 이후 KPGA 선수권 우승은 1968년부터 1971년까지 4연패를 포함하여 7승을 거두었으며, 한국오픈도 1964년부터 4연패, 1970년부터 3연패를 하며 7승을 달성했다. 또한, 쾌남오픈, 동해오픈까지 우승하며 일본 골프투어에 진출했고 1972년에는 일본 최고 권위로 불리는 일본 투어에서 우승을 거머쥐게 된다. 이 우승을 계기로 한국인 최초로 미국 오거스타 내셔널CC에서 열리는 PGA 투어 4대 메이저 대회 중 하나인 마스터스에 참가했다. 

 

1972년 한국인 최초 마스터스 출전

 

지금은 달라진 한국의 위상으로 인해 두려움을 크게 가질 필요가 없지만, 당시 영어에 능숙하지 못한 젊은 동양 선수가 꿈의 대회인 마스터스에 참가한다는 것은 그저 놀랍고 긴장되는 일이었을 것이다. 시차 적응뿐만 아니라 온통 낯선 이방인들과 경기를 해야 한다는 부담은 더욱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일본 도쿄에서 시카고행 항공기에 오를 때만 해도 자신감이 넘쳤지만 한적한 오거스타 공항에 자정이 넘어 도착한 그는 앞이 깜깜할 정도였다. 그때 한국 선수가 마스터스 대회에 참가한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재미교포 태권도 사범의 안내로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장에서 연습 라운드를 끝내고 대회에 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 타 차이로 컷오프를 통과하지 못하고 귀국길에 올라야 했던 그가 기억하는 마스터스는 바로 어제의 기억처럼 또렷하다. 

잭 니클라우스, 아놀드 파머, 게리 플레이어 등 당대의 내로라하는 세계적인 골프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는 것에 있어서도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입구에서 카메라를 빼앗겨 마스터스 대회 출전 당시 사진을 한 장도 가지고 있지 못한 그는 아직도 그 점을 아쉬워하고 있다. 

 

KPGA 선수권 최다 출전 선수

 

 

2007년 제50회 KPGA 선수권 대회에 출전함으로써 투어 최다 출전 기록을 세운 그는 대회 출전 50년 개근이라는 진기록도 만들었다. 지금도 한국프로

골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그는 1984년 제6대 한국프로골프협회 회장이 되면서 후원금을 모금하고 3개 대회로 운영되던 프로골프대회를 6개로 늘렸다. 한국프로골프협회 창립도 이끌었으며 구옥희, 강춘자 등 여자 프로골프선수들을 도와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 창설에도 많은 역할을 했다. 

 

통산 22승, 일본오픈 우승과 마스터스 대회 참가

 

과거 박정희 전 대통령과 이병철 삼성 회장의 골프 코치를 맡기도 한 그는 80이 넘은 나이에도 후배들을 위해 아낌없는 조언을 해주고 있다. 9번째 골프 월드컵 대회에 출전하려던 날 5·16 쿠데타로 인해 출국이 좌절되면서 8회 연속 참가라는 기록으로 마무리된 것이 안타깝다고 회상하는 그는 시니어 오픈의 활성화와 무작정 고액의 우승 상금을 주는 대회보다는 적당한 규모의 대회가 많이 열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한다. 기업에도 부담이 가지 않아야 지속적인 후원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선수들도 기업의 후원을 받으며 골프에 전념할 수 있는 상황에 됐으면 더 많은 선수들이 지금보다 더 큰 업적을 이뤘을 것이라는 생각도 담고 있다. 

또한, 골프의 대중화를 위해서는 회원제 골프장보다는 직접 자기가 카트를 끌고 다니면서 라운드 할수 있는 대중제 골프장이 많아져야 한다고 말한다. 1960년대와 1970년대 한국 골프계를 평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한장상은 한국에서 19승, 해외에서 3승 등을 포함 프로 통산 22승을 달성했다. 그는 자신의 커리어 속에서 1972년 일본 오토네컨트리클럽에서 열린 일본오픈에서 점보 오자키와의 접전 끝에 1타차로 우승을 했던 기억을 가장 명장면으로 꼽는다.

 

 

GJ 김태연 사진 KP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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