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가 열광했던 오거스타의 사나이, 아놀드 파머
그 시절 우리가 열광했던 오거스타의 사나이, 아놀드 파머
  • 나도혜
  • 승인 2021.10.20 17: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계 골프사를 빛낸 전설 중 한 명인 아놀드 파머! 골프코스 디자인 회사와 골프용품, 골프의류 브랜드로도 유명해 골프에 관심이 없더라도 누구나 아놀드 파머라는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골프를 즐기지 않더라도 보통 TV 중계를 통해 우승하는 선수들의 이름 정도는 알게 된다. 그러나 골프에 문외한이고 전혀 골프대회를 보지 않더라도 누구나 아놀드 파머(미국)라는 이름은 익숙하게 느껴질 것이다. 2016년 9월 25일(미국시간) 향년 87세라는 나이로 별세한 아놀드 파머는 골프의 대중화에 앞장섰던 인물 중의 한 명이며, 골프코스 디자인 회사와 골프용품, 골프의류 브랜드로도 유명하다. 

3살부터 골프채를 잡았을 정도로 일찍 골프를 시작했던 그는 26살이던 1955년 미국프로골프(PGA)에 데뷔했으며, 1958년 4대 메이저 대회 중의 하나인 마스터스 골프대회에서 우승하며 존재를 알리기 시작했다. 

 

마스터스 4회 우승, 나는 오거스타의 사나이

 

특히 마스터스 대회에서만 4번의 우승을 달성해 오거스타의 사나이라는 별칭까지 얻은 그는 2007년부터 사망하기 전해까지 9년 동안 이 대회에서 시타를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아쉽게 PGA 챔피언십 우승이 없기 때문에 커리어 그랜드슬램은 달성하지 못했지만, PGA 투어에서 62승을 올릴 정도로 많은 우승을 했으며 미국 의회가 민간인에게 주는 최고의 훈장인 골드 메달을 수상함으로써 왕(The King)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아놀드 파머는 캐나다 오픈에서 첫 번째 우승을 거둔 것을 시작으로 통산 95승(PGA 62승)을 올렸으며 메이저 대회 우승도 7번이나 했다.

 

PGA 투어 최초 상금 100만달러 돌파

 

아놀드 파머가 PGA 투어에서 올린 62승은 샘 스니드(미국·82승), 타이거 우즈(미국·82승), 잭 니클라우스(미국·73승), 벤 호건(미국·64승)에 이어 역대 5번째 기록이다. 

더구나 1958년부터 1964년까지 7년 동안 치러진 모든 메이저 대회의 우승은 모두 그의 차지였다. 마스터스에서 4승, 브리티시 오픈에서 2승, US 오픈에서 1승을 달성했지만, PGA 챔피언십 우승을 올리지 못해 끝내 그랜드슬램은 달성하지 못했다. 

그러나 1968년 PGA 투어 최초로 100만달러 상금을 돌파했고, 1974년에는 모든 프로 골프 선수들이 꿈꾸는 세계 골프 명예의 전당에 입회했다. 그는 많은 골프대회의 우승뿐만 아니라 골프와 관련된 사업으로도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아니 군단을 이끄는 필드 위 아이돌

 

그가 우승하던 1950년대는 컬러 TV가 처음 등장한 시기였으며 그의 수려한 외모와 언변, 쇼맨십, 유머와 필드에서의 카리스마는 많은 갤러리를 모으기에 충분했다. 심지어 BTS의 팬덤 아미와 같이 아니 군단(Arnie’s Army)이라고 갤러리들을 부를 정도로 수많은 팬을 몰고 다녔다. 

또한, 전 세계에 300여 개가 넘는 골프코스도 설계했다. 2014년부터 LPGA 기아 클래식이 열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아비아라골프클럽도 아놀드 파머가 설계한 것으로 유명하다. 국내에도 그가 설계한 골프장으로 용인 은화삼컨트리클럽, 무주 덕유산컨트리클럽 등이 있다. 이 외에도 골프의류와 골프용품 사업도 벌였으며, 여성과 어린이들을 위한 아놀드 파머 메디컬 센터를 설립했다. 그의 이름을 건 PGA 투어 대회인 아놀드 파머 인비테이셔널도 매년 개최되고 있다.

 

골프는 몰라도 아놀드 파머 골프웨어는 안다

 

골프 관련 브랜드 운영으로 2015년에는 380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으며, 2016년에는 골프 선수 중에서 가장 많은 재산을 가져 포브스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마이클 조던, 타이거 우즈와 함께 스포츠 마케팅에 있어서도 대단한 인물인 아놀드 파머는 1960년대 생소했던 스포츠 매니지먼트 사업을 통해 현재의 시스템을 만들어낸 선구자이다. 

골프가 유행하고 대중적으로 사랑받을 수 있었던 것도 아놀드 파머 덕분이라고 할 정도로 많은 사람이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아놀드 파머는 주위에 선물을 나누는 것을 즐겨 했으며 우승한 선수들에게 축하의 편지를 보내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그가 보낸 마지막 우승 축하 편지의 주인공은 2016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전인지(한국)였다. 이후에도 전인지가 우승할 때마다 아놀드 파머는 축전을 보냈지만 2016년 별세하면서 이제 더 이상 그의 축하를 받을 수 없게 되었다. 

소박함과 따뜻함을 갖춘 그는 필드의 신사라고 불릴 정도로 좋은 매너를 가지고 있었는데 아놀드 파머가 가장 중요하게 강조하던 것이 감정 조절이다. 17세 때 참가한 주니어 선수권 대회에서 퍼팅을 놓쳐 클럽을 집어던진 적이 있었는데 우승을 하고 아버지로부터 들은 말은 칭찬이 아닌 꾸지람이었다.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면 동반자를 불안하게 만들므로 좋은 선수가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좋은 샷이 나오면 박수를 쳐주고 다른 선수의 퍼팅 라인은 밟지 않아야 하며 디봇과 벙커를 수리하는 것도 선수가 해야 할 몫”이라고 생전에 아놀드 파머는 강조했다. 

 

골프 대중화의 선구자

 

동료이자 경쟁자였던 잭 니클라우스(미국·81세)와의 유명한 일화도 있다. 어느 날 아놀드 파머의 집을 방문한 잭 니클라우스는 거실에 우승 트로피가 오직 하나만 있는 것을 의아해하며 물었는데 “첫 번째 우승 트로피 외에는 의미가 없기 때문에 첫 우승컵 하나만 꺼내 놓았다”고 답했다. 

그리고 그 우승컵에는 이런 문구가 쓰여있었다고 한다. ‘당신이 패배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패배한 것이다. 그러나 패배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면 결코 패배하지 않은 것이다.’ 물론 억측 같은 말일 수 있지만, 신념의 문제라는 것이다. 자신의 플레이에 만족하고 에이밍한 곳으로 정타가 맞았는데도 러프나 벙커에 빠진다면 다음 샷을 위해 더 정신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아까 그 홀만 버디 했어도’라는 생각에 사로잡힌다면 결국 라운드 내내 좋은 경기를 펼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아놀드 파머가 강조했던 것을 항상 염두에 두고 실천한다면 더 좋은 매너로 칭찬받는 골퍼가 될 수 있을 것이다.

 

 

GJ 나도혜 사진 GettyImages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하단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