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물어지는 여성 차별의 벽
허물어지는 여성 차별의 벽
  • 김태연
  • 승인 2021.09.0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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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명문 회원제 골프장 파인밸리골프클럽이 108년 만에 아니카 소렌스탐을 포함한 여성 회원 세 명을 받아들였다. 파인밸리골프클럽은 미국의 모 골프 전문 잡지가 선정하는 100대 골프장에서 항상 1.2위를 다투는 명문 클럽으로 코스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파인밸리골프클럽 108년 만에 첫 여성회원 허용

 

1913년에 개장해서 긴 역사를 자랑하는 파인밸리골프클럽은 폐쇄적인 운영으로도 유명했다. 이사회가 초청한 사람만 회원이 될 수 있었으며, 회원이 아닌 사람을 회원 동반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었다. 특히나 여성에게는 회원 자격을 부여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클럽에서 골프를 치는 것조차 허가하지 않았다.

그런 파인밸리가 108년 만에 성 차별적 규약을 지우고 여성 회원들을 받아들였다. 받아들인 여성 회원은 세계적인 여성 골프 선수 세 명이다. LPGA 투어에서 통산 72승을 거둔 아니카 소렌스탐, US여자 미드 아마추어 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던 새러 잉그럼, 메건 스테이시가 회원으로 가입했다.

 

파인밸리 성 차별 규약 삭제

 

파인밸리의 변화는 지난 3월부터 시작됐다. 일요일 오후에 여성도 라운드를 할 수 있도록 하면서 점차 차별의 장벽이 낮아지고, 지난 5월 1일에 열린 연례 총회에서는 특정 성별에 대한 규정을 없애기로 결정했다. 여성은 일요일 오후에만 코스를 사용하는 제한이 사라졌으며, 여성 회원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파인밸리 골프클럽 대표 짐 데이비스는 만장일치로 성 차별적 규약들을 삭제하기로 한 결정에 대해 역사적 변화라고 평하면서, 어떤 사람이든 시간제한 없이 라운드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4월 말 회원들에게 보내는 서한에 “미래의 골프는 더 많은 것을 포괄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각종 스포츠 분야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과 장벽이 높았던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격렬한 신체 활동인 스포츠가 남성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시대를 지나서 이제는 수많은 여성 운동선수와 여성 프로리그가 활약하고 있지만, 여전히 과거의 규칙이나 관습을 고집하면서 여성에게 높은 허들을 적용하는 분야도 있다. 

골프 역시 예외는 아니다. 특히 ‘회원제’로 운영되는 곳이 매우 많은 골프클럽의 특성상, 여성의 회원 가입을 허용하지 않거나 여성에게 이용 가능 시간을 제한하는 등의 구시대적 규칙을 유지하는 곳이 있었다.

 

과거 백인 우월주의의 상징이었던 오거스타 내셔널골프클럽

 

미국 조지아주의 오거스타 내셔널골프클럽 역시 1933년 이후 창립 이후 79년 만인 2012년에야 여성 회원을 허용했다. 오거스타 내셔널골프클럽은 백인 남성만을 위한 골프클럽으로, 미국 남부 백인 우월주의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1990년에야 흑인 남성을 회원으로 받아들였을 정도로 백인 남성이 아닌 다른 성별과 인종에게는 폐쇄적인 클럽이었다. 여성 운동 단체들이 오거스타 내셔널의 ‘금녀 정책’을 10년 동안 공개적으로 꾸준히 비판한 결과 2012년 여성 회원을 받아들였다. 여성 회원을 받아들이고 7년 뒤인 2019년에는 여자 아마추어 골프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당시 전임 회장이었던 빌리 페인 때부터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이미지를 벗기 위한 정책들을 추진해온 결과의 일환이었다. 이 대회에서는 우리나라의 박세리가 시타를 하기도 했다.

 

역대 최초 뮤어필드골프클럽에서 열리는 AIG 여자오픈

 

영국 스코틀랜드의 뮤어필드골프클럽은 무려 개장 273년 만인 2017년에 여성회원을 받기 시작했다. 뮤어필드는 1744년에 건립되어 유서 깊은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지만 긴 세월 동안 ‘남성 전용 클럽’으로 운영되다 2017년에 이르러서야 여성 회원에게 문호를 개방했으며, 최근에 여자 골프 메이저대회까지 개최하게 됐다. AIG 여자 오픈(구 브리티시 오픈)을 주관하는 R&A가 발표한 2021년부터 2025년까지의 AIG 여자 오픈 개최지를 보면, 2022년 대회는 뮤어필드 골프장에서 진행된다. 여성 회원에 대한 장벽이 허물어진 것은 물론이고 여자 메이저대회까지 개최하게 된 것이다.

뮤어필드를 2022년 AIG 여자 오픈 대회 개최지로 결정했다는 발표를 할 당시 R&A는 “뮤어필드가 여성 회원을 받기로 결정함에 따라 앞으로 디오픈 역사와 함께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환영의 메시지를 보냈다. 

앞서 PGA투어 디오픈 순회 개최지 중 한 곳이었던 뮤어필드는 여성 차별을 이유로 지난 2013년 이후 디오픈 개최지에서 제외됐었으나, 여성 회원을 받아들이기로 함에 따라 앞으로 디오픈도 이곳에서 개최될 수 있게 됐다.

 

차별 없애고 올림픽 개최하는 가스미 가세키컨트리클럽

 

아시아에서도 이런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2020 도쿄올림픽 골프대회가 열린 일본의 가스미 가세키컨트리클럽은 여성회원을 받지 않는 클럽이었다. 여성은 정회원으로 받지 않았으며 공휴일에는 여성의 라운드를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2017년 고이케 유리코 도쿄지사가 21세기에 여성을 회원으로 받지 않는 골프장이 있는 것이 불편하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했으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역시 “여성 차별 조항은 올림픽 정신에 맞지 않는다. 현재 상황에서라면 경기장을 변경할 수밖에 없다”라며 개선을 요청했다. 도쿄 올림픽을 앞둔 일본이기에 이런 비판에 직면하자 정관을 개정하고 여성을 정회원으로 받기 시작했다.

 

평등한 골프장을 꿈꾸며…

 

자발적인 노력으로, 사회적 분위기의 압박 때문에, 혹은 중요한 대회를 앞두고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이유로 여성 차별적인 골프 정책들은 사라져왔다. 모든 골프클럽이 자발적으로 차별적 규칙을 철회한 것은 아니지만, 규칙 철회의 동기에 주목하기보다는 차별적인 규칙이 사라지고 평등한 골프클럽에 한 발짝 다가갔다는 것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사회가 변화하고 시대가 변화하고 있다.

변화하는 시대는 구시대적인 관습을 고집하고 있는 골프클럽들에게 변화를 요구한다.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차별의 잔재인 규칙들을 고집한다면, 결과적으로 경쟁에서 뒤처지게 될 것이다. 

여성을 회원으로 받기로 한 골프클럽들이 여성 골프대회를 개최하는 등의 모습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골프클럽들이 변화한 사회에 발맞추어 시대에 맞지 않는 규칙을 타파해서, 평등하고 발전한 골프장이 되기를 기대한다.

 

 

GJ 김태연 이미지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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