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금지령의 역사
골프 금지령의 역사
  • 김태연
  • 승인 2021.08.12 18: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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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의 역사와 함께해온 ‘골프 금지령’은 아이러니하게도 지금까지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골프 금지령은 왜 중세부터 현대까지 끈질기게 지속되어 왔을까?

 

‘골프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고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것은?’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은 뭘까? 골프공도 정답이 될 수 있고, 골프클럽도 정답이 될 수 있으며, 몇 가지 골프 규칙도 정답이 될 수 있다. 또 하나, 골프 금지령 역시 정답이 될 수 있다.

‘골린이’에게도 골프 금지령은 낯설지 않을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도 부분적으로 시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로 모임이나 행사 등이 제한을 받으며 일부 공직자들은 골프장에 출입조차 어렵게 되었다. 일반 시민들도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 등의 영향으로 골프 시설 출입이 자유롭지 못하다. 물론 이는 ‘골프 규제를 위한 골프 금지’가 아닌 ‘사회적 거리두기’ 수칙에 따른 일이며,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서비스업종이 영향을 받고 있기에 골프만의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골프 금지령은 아직도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역사 속의 골프 금지령

 

과거에는 어땠을까? 과거에도 골프 금지령은 존재했고, 지금보다 훨씬 엄중했다. 지금은 골프 금지령을 어겨도 징계나 과태료 정도의 처분에 그친다. 하지만 과거에는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문제였다.

1457년 스코틀랜드의 국왕 제임스 2세는 골프 때문에 군사 훈련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세계 최초의 골프 금지령을 내렸다. 이 골프 금지령은 세계 최초의 ‘골프 금지령’이자, 세계 최초의 ‘공식 골프 기록’이기도 하다. 이렇듯 골프의 역사는 골프 금지령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후 제임스 2세의 아들인 제임스 3세가 1470년에, 그 아들인 제임스 4세는 1491년에 연이어 골프 금지령을 내렸다. 잘 지켜지는 금지령을 반복해서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니 ‘지엄한 어명’으로도 당시 사람들의 골프 사랑을 막을 수 없었다는 뜻이다. 

이후 골프 금지령의 명분이었던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전쟁이 1502년 막을 내리며 제임스 4세는 골프 금지령을 폐지했다. 재미있게도 이후 제임스 4세는 골프를 탄압하는 국왕이 아닌, 골프를 사랑하는 국왕으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역사는 반복된다

 

이 에피소드는 골프 금지령의 한 전형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과거 스코틀랜드가 그러했듯 대한민국 골프 금지령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윗분들이 골프를 금지하거나 자제할 것을 명령하지만 사람들은 이를 무시하거나 몰래 골프를 계속 즐겨왔다. 그야말로 역사가 반복됐다.

수십 년 전만 해도 대한민국은 지금처럼 골프가 대중화되지 않았고, 그만큼 골프 금지령도 낯설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제임스 2세처럼 왕명으로 금지하고 어기면 목이 달아날 걱정을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분명 골프 금지령은 여러 번 논의되고, 또 시행되었다.

예를 들어 1968년 무장공비 남침과 베트남 전쟁 참전으로 사회적으로 큰 파문이 인 가운데, 당시 대정부 질문에서 이만섭 국회의원이 ‘정부 고관들이 골프를 치지 않을 용의가 있느냐’고 질문하고, 정일권 총리가 ‘골프 금지 문제는 개인이 알아서 할 일이다’라고 답변했다는 기록이 생생히 남아있다. 국회와 정부가 골프 금지령 문제를 두고 설전을 벌일 만큼 골프 금지령이 사회적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여진 것이다.

 

대한민국의 공직자 골프 금지령 

 

대한민국에서 ‘골프 금지법’이 공식적으로 제정되고 실행된 예는 없다. 하지만 공무원 등 공직자들을 주 타겟으로 한 금지령은 수시로 내려졌다. 대통령이 직접 골프를 금지했다는 말이 떠돌아 논란이 되자 청와대 대변인이 대통령께서 그런 말을 한 적은 없다고 부인하면서도 이후 골프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언급한 사례가 있는가 하면, 검찰총장이 일선 검찰에 골프 금지령을 내린 사례도 있고, 골프 금지령을 무시하고 골프를 쳤다가 좌천된 공직자도 있다. 

골프 금지령은 왜 중세부터 현대까지 끈질기게 지속되어 왔을까? 과거 사치스러운 귀족 스포츠의 이미지가 강했고, 실제로 그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라가 어려워지면 골프는 ‘사치’나 ‘사람들을 타락시키는 행위’로 취급받아 타겟이 되었다. 

골프 금지령이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한 이유도 비슷하다. 골프를 즐기는 주 계층이 서민들이었다면 어긴 자들은 처벌이나 징계 등을 고스란히 감수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신분에 따른 불평등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던 과거 영국이나 지금보다 훨씬 불공정한 사회였던 20세기 중후반 대한민국에서 골프를 즐길 만큼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들은 처벌을 피하기도 쉬웠다. ‘시범 케이스’로 당한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많은 사람이 몰래, 심지어 금지령을 비웃으며 골프를 즐겼다. 골프 금지령의 효과가 없던 이유다.

 

골프 금지령의 역설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 사태로 인해 골프가 대중화되고, 귀족 스포츠라서 금지한다는 명분이 사라진 현재에 이르러 골프 금지령은 그 어느 때보다 엄중히 지켜졌다. 

코로나 사태 이후 영국에서는 스코틀랜드를 제외한 잉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에서 일시적으로 골프 금지령이 내려졌으며, 미국에서도 일부 주에서 골프 금지령이 내려졌고, 이를 어긴 사람들이 체포되거나 처벌되었다는 뉴스가 언론을 타기도 했다. 

대한민국에서 코로나로 인해 골프 금지령이 내려진 건 실내 골프쪽이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고강도로 진행될 때는 스크린골프장이나 실내 골프연습장에 집합금지 명령이 내려지거나 영업 제한 조치가 취해졌고, 지난해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실내 골프연습장 약 1천 개가 문을 닫은 것으로 드러났다. 

골프가 대중 스포츠가 된 이 시기에 코로나 사태와 맞물려 과거 어느 때보다도 골프 금지령이 엄중하게 시행되고 있다는 건 골프 역사에서 큰 아이러니다.

사회가 발전하고 골프가 대중화되면서 골프 금지령, 골프 자제령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으로 여겨졌지만 코로나 사태가 골프 금지령의 수명을 연장시킨 꼴이 되었다. 하루빨리 코로나 사태가 막을 내리고, 골프 관련 금지 규정도 역사 속으로 사라지길 기대해 본다. GJ

 

 

By  김태연 사진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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