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서울칸트리구락부의 탄생
1953년 서울칸트리구락부의 탄생
  • 강인구
  • 승인 2021.01.19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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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 군자리 코스 배치도

 

한국 골프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서울CC를 빼놓을 수 없다. 한국 골프 역사를 좀 아는 사람이라면 서울CC가 일제 말기 폐장된 군자리 골프장을 해방 이후에 재건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정부 수립 후 군자리 골프장(서울CC)의 시작과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서울CC의 발자취를 5회에 걸쳐
알아보자. 이번에는 이승만 대통령과 서울 군자리 골프장의 복구에 이어 서울칸트리구락부의 탄생에 대해 다룬다.

 

프롤로그

 

우리는 서양 격언처럼 역사가 되풀이된다는 것을 쉽사리 믿는 듯 보인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경고했듯이, ‘역사와 경험이 가르쳐주는 것은 국민과 정부가 역사를 통해서 무엇을 배우거나 원칙을 끌어내고 그에 따라 행동했던 적이 없다’는 것을 그리 쉽게 신뢰하지는 않는 듯 보인다.

 

6·25전쟁과 서울CC 창설동의자

 

이승만 대통령이 1955년도 대통령배 한국아마추어골프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한 김흥조 선수(왼쪽)에게 우승배를 전달하며 담소하고 있다. 오른쪽이 서울컨트리클럽 이순용 이사장

 

전쟁은 많은 것을 변화시킨다. 6·25전쟁의 잿더미는 일제의 아픔도 해방의 기쁨도 잊게 만들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6·25전쟁을 생각해보면, UN(국제연합) 역사상 16개국에 의해 만들어진 최초의 유엔군이 참전했다는 것과 전쟁을 종전시키지 못한 채 휴전상태로 가장 오랫동안 지속하고 있다는 것 아닐까? 
이 같은 6·25전쟁의 특징 때문에 외국인들이 보기에는 기네스북에 등재되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닐지 모른다. 우리는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 이래 지금까지 종전 평화협정을 맺지 못하고 있다. 
6·25전쟁이 휴전되지 않은 1953년 초 한국 골프계는 기지개를 시작했다. 1953년 봄 무엇보다도 먼저 서울CC ‘창설동의자’ 모임이 만들어졌다. 『서울컨트리클럽 50년사』에 보면,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웠던 이순용을 비롯한 강성태(재무부 차관), 김동준(합동통신사장), 김유택(한국은행 총재), 김진형(한국은행 부총재), 김태선(내무부 장관), 백두진(국무총리), 손원일(해군총참모장), 윤호병(상업은행장), 이기붕(전 국방부 장관), 임문환(국회의원), 임송본(국회의원), 장기영(조선일보 사장), 전용순(서울상공회의소 회장), 조정환(외무부 차관), 조주영(국회의원), 최순주(재무부 장관), 한홍(외자관리청 차장) 등 18인이 ‘창설동의자’에 참여했다. 
특히 일찍이 미국의 첩보기관 OSS(전략사무국) 출신으로 이승만 대통령의 복심인 이순용은 내무부 장관, 체신부 장관, 대한해운공사 사장 등을 거쳐 당시 원조물자를 관장하는 외자관리청까지 도맡았다. 처음부터 서울CC 창립 준비 모임은 당대 주요 정관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당시 서울CC의 정식 명칭은 사단법인 서울칸트리구락부(영어:Seoul Country Club)였다. 우리가 서울CC 창립 준비 모임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1973년 간행된 『한국골프총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골프총람』은 김동준, 연덕춘, 허정구 등을 중심으로 <편찬위원회>를 구성해서 당시 『매일경제신문』의 김태운 부국장에 의해 집필된 최초의 ‘한국골프사’이다. 여기에 특히 서울칸트리구락부 ‘창설동의자’ 18인에 대해서 우리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대목이 나온다.

“<서울칸트리클럽 회원명부>에 보면, 역대 임원란에 ‘창설동의자’라는 명단이 시선을 끈다. ‘역대 임원’이면 초대-2대-3대 순으로 나가는 것이 상례 일법한데 유독 여기에 ‘창설임원’이라 해서 구분해 놓은 것을 보면 그 당시의 여건을 충분히 짐작할 수가 있다. 엄격한 의미에서 보면 ‘복구’가 아닌 ‘창설’이었다는 뜻을 가진 데 대한 못 박음이라고 해석된다.” (『한국골프총람』, 1973)

『한국골프총람』 편찬에 활용된 서울칸트리구락부의 <회원명부>를 보면, 역대 임원 가운데 서울CC를 창립한 초대 임원과는 별도로 ‘창설동의자’ 18인 명단이 기록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한국골프총람』에서는 서울CC ‘창설’의 의미를 “한국골프의 새로운 태어남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리고 과거 한국 내 골프계가 외국인들의 손에 의해 또 그들 자신의 필요에 의해 이루어진 것과는 반대로, 이번에는 순전히 한국인들의 손으로 한국인들의 필요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데 대한 차원이 있다는 점이 크게 다른 것이었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당시 정관계 고위층 일부 즉, ‘창설동의자’들은 일제 때 일본인 중심으로 만들어졌던 경성골프구락부를 재조직 또는 재건하는 차원이 아니라 새로운 서울CC의 탄생을 의도했던 것이다.  
어쩌면, ‘창설동의자’들 마음속에는 일본인들의 손에 의한 일본인들의 필요에 의한 식민지 과거를 단절하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서울CC <회원명부>에 서울칸트리구락부 역대 임원을 표기할 때 ‘창설동의자’ 18인을 별도로 구분했던 이유, 20년 뒤에 편찬된 『한국골프총람』에서도 ‘창설’에 방점을 찍은 까닭은 1953년에 시작된 서울CC의 탄생에 새로운 의미 부여를 했기 때문 아닐까?

 

1953년 11월 11일, 서울CC 창립일

 

1954년 군자리 코스 7번홀
1954년 군자리 코스 3번홀 그린
1954년 서울CC 인가증 (출처:『서울컨트리클럽 50년사』)

 

6·25전쟁 휴전협정이 체결된 직후 8월 15일에야 이승만 정부는 서울로 환도하게 되었다. 전후 복구가 끝나지 않은 때이긴 했지만 서울칸트리구락부를 창립하려는 움직임은 한층 바빠졌다. 급한 대로 그해 11월 11일에 ‘창설동의자’들 주축으로 서울CC 발기인 대회를 열었다.  

“11일 하오 4시 외자관리청장실에서는 국제친선과 회원 상호 간의 친목을 목적으로 골프장의 부활을 꾀하는 서울칸트리구락부의 발기인회가 사단법인 서울칸트리구락부의 창립총회를 겸해 개최되었는데 동 구락부에서는 회원들이 경비를 부담해 명춘(필자:내년 봄(明春)) 해빙기까지에 동양 제일의 군자리골프장을 개설할 것을 목표로 즉시 제1기 공사에 착수할 것을 결정하였다 한다.” (『조선일보』, 1953.11.13.)

1953년 11월 11일 한국 골프계 전반과 군자리 골프장을 운영해 나갈 대표기구 사단법인 서울칸트리구락부의 창립총회가 개최됐다. 서울칸트리구락부의 발기인은 당연히 ‘창설 동의자’ 18인이었고, 이들이 주도적으로 창립총회를 개최했다. 
총회 당일에는 ‘창설동의자’ 18인 가운데 강성태, 김진형, 윤호병, 이순용, 임문환, 임송본, 장기영, 전용순, 조주영, 한홍 10인이 지금은 사라진 중앙청 별관에 위치한 외자관리청장실에 모였다. 서울칸트리구락부 창립총회에서는 취지문과 정관을 심의해서 통과시켰고 이사회를 개최해 초대 임원진이 일부 선출되었다. 창립총회 당일에 결정된 또 하나의 중요 안건은 서울CC 회원 가입 금액이 개인회원(5만환), 법인회원(10만환), 찬조회원(10만환) 이상으로 가결되었다. (화폐 단위 ‘환’은 1953년 2월에서 1962년 6월까지 사용됨) 여기서 이순용 외자관리청장이 발기인 대표로 개회 인사말을 하였다.

“여러분 중에는 아직 골프가 무엇인지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자유 진영의 주권 국가치고 골프장을 갖지 않은 나라가 없습니다. 골프는 심신을 단련하는 스포츠이기도 하지만 고급 사교와 고급 외교에도 큰 몫을 하는 것입니다. 이승만 박사께서는 휴일이면 주한 미군 장교들이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가서 골프를 즐기고 오는 것을 몹시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계십니다. 그 돈도 우리나라에 떨구어야 되겠지만, 군사적인 유고 시에 미군이 외국에 나가 있으면 어찌 되겠느냐고 걱정을 하고 계십니다.” (신용남, 『골프 교우 50년』, 2004)

이승만 대통령은 주한 미군 장교들이 휴일이면 비행기로 일본에 건너가서 골프를 치고 돌아오는 것을 외화 유출 측면에서 못마땅하게 여겼고, 특히 군사적 비상시 미군 장교들의 부재는 국가 안보상으로도 위험 요소라는 점을 주장했던 것이다. 6·25전쟁의 상흔을 씻기도 전에 서울에 골프장 건설은 긴급한 국가적 과제가 되었다. 
『서울컨트리클럽 50년사』에도 기록됐듯이, 이순용 발기인 대표는 개회 인사말 가운데 “이승만 대통령이 골프장 건설에 각별한 관심을 두고 본인에게 건설의 대임을 맡기셨다. 골프장은 국가 예산으로 건설할 성질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민간사업으로 추진되어야 할 국가적인 사업이기도 하다. 빠른 시일 안에 군자리 코스를 재건, 세계적인 명문 코스로 만들기 위해 우리의 모든 힘을 다하자”라고 역설했다.

 

군자리 골프장의 재건 목적

 

1948년 반도호텔에서 찍은 중앙청 전경 (출처:국사편찬위원회 전자사료관)

 

서울CC의 최우선 과제인 골프장 재건은 단지 국민 건강을 위한 스포츠 시설만이 아니라 국익과 안보를 위한 외교의 무대이자 외화를 벌 수 있는 관광 산업적인 측면이 부각되었다. 그러나 골프장의 건설은 국가적인 사업이기는 했지만, 국가 예산에 의한 것이 아니고 민간사업으로 추진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당시 서울에는 호텔과 레크레이션 시설이 없어서 외국의 여행객을 수용하지 못해 경제 발전에도 지장을 초래했기 때문에 서울칸트리구락부 설립 취지문을 통해서도 밝히고 있듯이, ‘정부 당국에 의하여 근래 반도호텔은 개조되었는데 이에 수반하는 레크레이션 시설이 전무함으로 이번에 민간 유지 일동이 발기해서 서울칸트리구락부를 설립하고 군자리골프장을 재건해서 외국 여행객의 편익을 도모하고 국민 건강에 기여’한다는 것이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 주도로 조선호텔(남만주철도주식회사 부속)의 투숙객 서비스와 외국인 관광객 유인정책을 위해 최초로 만들어진 효창원골프장을 떠올리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피할 수 없다. 1938년 세워진 반도호텔은 6·25전쟁 때 미군사령부로 사용되기도 했는데, 한국 정부 손으로 돌아와 다시 영업할 수 있었다. 뒤에 반도호텔 자리에 롯데호텔(현재 서울점)이 들어서게 된다.  
『한국골프 100년』에는 서울칸트리구락부의 창립총회에서 취지문과 정관을 심의해서 통과시키고 이사회를 개최해 초대 임원진도 선출했다고 하지만, 『서울컨트리클럽 50년사』에서도 약간 혼동되게 기록돼 있는 것처럼 초대 임원진의 구성은 다소 시간이 걸린 듯하다. 
 1954년 봄까지 몇 차례 이사회를 개최한 뒤에야 서울칸트리구락부 초대 임원진으로 이사장에 이순용, 부이사장 임문환, 이사 13인(강성태, 김진형, 김형근, 민복기, 박숙희, 안희경, 윤호병, 이호, 장기영, 전용순, 조주영, 한홍, 홍진기), 감사 3인(원용덕, 임송본, 최순주), 간사 2인(함성용, 이찬섭) 등이 확정됐다고 보는 것이 옳다. 서울칸트리구락부 초대 임원진에는 앞서 ‘창설동의자’의 일부 인사들이 빠지고, 김형근 변호사, 민복기 서울지검장, 박숙희 한국은행 부총재, 안희경 대통령 비서, 이호 국방부 차관, 홍진기 법무부 법무국장(1958년 법무장관), 원용덕 헌병총사령관 등이 새로이 참여했다. 
그즈음 이병철(삼성물산)과 정주영(현대건설)도 서울CC 법인회원과 찬조회원으로 각각 가입했다. 참고로 당시 대통령의 봉급이 5만환, 국무총리와 대법원장이 3만 5천환, 장관들이 3만환 정도 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서울컨트리클럽 50년사』에 재미있는 사실로 기록되어 있듯이, 최초의 서울CC 이사와 감사로 선출된 임원진 가운데 골프를 할 줄 아는 사람은 겨우 5명뿐 이었다. 대부분 공을 칠 줄도 모르고 골프장에 가본 일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군자리골프장 부지가 법적으로 구황실 소유지로써 구황실재산관리국에서 관리되고 있었기 때문에, 서울CC 집행부는 당면 현안을 해결하는데 영향력을 가진 정관계 인사들의 ‘얼굴마담’이었다는 것이다. 나중에 군자리골프장을 ‘권력과 금력의 이방지대’라고 비난했던 당시 언론도 까닭이 있어 보였다. 
6·25전쟁을 거치면서 서울CC를 새롭게 창립했던 일부 정관계 고위층들이 속으로는 일본인들에 의한 일본인들 필요에 의한 식민지 과거와 단절하고 싶었겠지만, 군자리골프장 부지 문제와 관련된 해방 이전부터 살아온 농민들의 소작권 저항과 구황실 소유지 임차문제 등 현실은 녹록지 않아 보였다. 
GJ

 

 

By 강인구 사진 Golf Journal DB, 서울CC, 국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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