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는 인문학이다
골프는 인문학이다
  • 김수현
  • 승인 2021.01.06 13: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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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에는 감정적인 요소가 많이 담겨 있어 희노애락과 관련이 깊다보니 골프와 술과의 관계는 사람에 따라 매우 밀접하게 상호 작용한다.

 

필자가 아는 중견기업 회장님은 골프 때문에 알콜중독이 됐다고 뼈있는 농담을 하시곤 한다. 골프를 치게 되고 나서 잘 맞으면 기분 좋아서 한잔, 안 맞으면 기분 달래려고 한잔 하다 보니 술이 많이 늘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골프를 치면서 술을 마시는 풍류까지 즐기게 되면서 “필드에서 알콜이 안 들어가면 공이 안 맞네”라고 하며 심지어는 라운드 전에 40도의 화요 한 병을 나눠 마시고 첫 홀을 시작하기도 한다.

 

인간의 역사는 승자의 기록

 

술이 약한 난 이런 경우 보기나 더블로 시작하게 되는데 인자하신 회장님은 동반자 중 한 명이라도 파가 나오면 “일파만파지!”라며 첫 홀은 모두가 파로 시작하게 만든다. 만일 한 명도 파가 나오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무파만파야!”라며 그래도 올파로 한다. 
그런데 회장님만 파를 하는 경우 “골프는 공정한 게임이야. 타수는 그대로 적어야지!”라며 첫 홀 올파의 자비로움은 껄껄 웃으시는 장난기 섞인 멘트와 함께 예전의 자비심은 어디론가 사라진다. “이렇게라도 핸디를 더 받아야 어떻게 한번 김 대표 돈을 따볼 기회가 있으니까 이해하게. 허허….”
이렇듯 상황에 따라 다른 해석을 하는 걸 보면 인간의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라고 하는 이유가 납득이 간다. 세네홀 지나 술이 좀 깨면서 샷감이 살아나면 여지없이 9홀을 마치고 그늘집에서 다시 막걸리 한 사발을 강요받는다. 이때도 공평해야 한다며 네 명이 같은 양을 마시게 되는데 주량이 약한 난 결코 이런 룰이 공평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분위기 상 마실 수밖에 없다. 때론 술과 안주를 가지고 10번홀을 향하는데 그리고 나면 다시 10번홀부터 세네홀은 흔들거리는 어드레스와 함께 엉뚱한 실수를 연발하게 된다. 
그래도 나의 실수가 세 명에게 큰 기쁨을 주고 다른 분들도 실수 연발로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걸 보면 어쩌다 즐기는 음주골프는 색다른 풍류를 느끼는 방법이다. 하지만 건강과 매너 유지를 위해서 독자들에게 과음은 삼가해 달라고 부탁드리고 싶다.

 

아마추어들이 첫 홀을 올파로 하는 이유는?

 

보통 아마추어들이 첫 홀을 올파로 하는 이유는 대개 아직 몸이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첫 홀을 시작하기 때문에 부여하는 특혜다. 프로들은 라운드 전 최소 20분의 연습으로 워밍업하는 시간을 갖는다. 미국에서 골프를 칠 때 많은 아마추어들도 일찍 골프장에 도착해서 한 바구니의 공을 때리며 몸을 푸는 모습을 자주 봤다. 
그런데 한국은 대부분의 골프장이 연습장을 보유하고 있지 않으며 있다고 해도 라운드 전 연습장을 이용하는 골퍼는 많지 않다. 나인브릿지 같은 잔디연습장을 갖춘 골프장을 가게 되면 꼭 연습하는데, 타이틀리스트 공을 피라미드처럼 쌓아 올린 연습장에서 실제 잔디에 놓고 연습을 하는 것은 또 다른 골프의 큰 재미가 된다.

 

인간의 속성 이해하기

 

인간의 속성을 잘 이해하면 골프를 더 잘 칠 수 있다. 예를 들어 욕심을 내면 샷을 망치는 이유를 이해하면 마음을 비우고 안정적인 샷을 치게 되며 힘을 줄수록 스피드가 줄어드는 현상을 깨닫게 되면 힘을 빼고 공을 빠르게 치는 자세와 마인드를 갖출 수 있다. 
내기나 경쟁을 할 때는 더더욱 인간적인 면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기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남이 못 치길 바라게 되는데 막상 상대가 못 쳐도 기쁜 감정을 숨겨야 하는데 이것이 골프 매너라는 이름으로 자리매김 되어있다.

 

폐 끼치지 않기

 

너무 잘 쳐도 “비인간적이다”라는 비난을 받고 너무 못 치면 “인간 축에도 못 낀다”며 연습 좀 더 하고 나오라는 묵언의 핀잔을 받는 게 골프다. 그래서 동반자에 비해 실력이 많이 부족한 경우 “민폐를 끼친다”라는 표현을 주로 쓰는데 이는 사실상 틀린 표현이다. 
민폐란 개인 또는 다수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이지만 법으로 처벌하기 어려운 행동들을 말하는데 국어사전의 정의는 ‘민간에 끼치는 폐해’라고 나와 있다. 골프를 못 치는 게 법으로 처벌하기 어려울 정도의 남들에게 주는 피해인가?
원래 민폐라는 행위의 주체는 관(官)이었다. 그래서 관이 아닌 개인은 이 단어의 주체가 될 수 없다. 따라서 골프를 좀 못 친다고 남을 짜증 나게 하는 어떤 개인에게 "민폐 끼치지 마"라고 말하는 것은 틀린 표현이며, "폐 끼치지 마"가 옳은 표현이다. 
이렇듯 본래 생활 속에서 자주 접할 만한 구어적인 단어는 아니었지만, 골프 문화의 발달과 함께 단어가 생명력을 얻으면서 의미가 확장되어 주체 불문하고 타인에게 폐를 끼치는 행동에 대해 두루 쓰이는 일상 용어가 되어 버린 건 좀 안타까운 일이다.

 

인문학적 관점에서 본 골프

 

인문학에서는 사람을 여러 가지 분류로 나눈다. 각각의 사람이 가진 속성이 다르듯이 골프도 같은 노력을 해도 결과가 달라지는데 본인의 마음가짐과 골프를 대하는 태도에 따라 실력이 결정된다. 
어떤 이는 처음부터 제대로 레슨을 받는가 하면 그냥 몇 번 휘두르고 필드에 나가서 평생 잘못된 스윙으로 보기플레이어 수준에도 못 미치는 사람도 있다. 반대로 제대로 레슨을 받으며 시작했어도 연습을 소홀히 하고 자주 못 치면 실력은 퇴보하는데, 어떤 이는 레슨을 받지 않았지만 스스로의 노력과 부담한 연습을 통해 싱글의 경지에 이른다. 
그래서 골프 실력은 유전적인 요소와 초기 골프 기본기를 잡는 것이 30%, 후천적인 노력과 연습량이 30%, 멘탈과 마인드셋이 30%를 좌우한다고 한다. 나머지 10%는 운이다. 
운칠기삼이라는 말은 골프에서 통하지 않는다. 한두 홀은 운 때문에 버디를 잡을 수 있고 심지어 홀인원이나 이글도 운이 좋아서 벌어질 수도 있지만, 전체적인 스코어는 운과는 크게 상관없이 실력이 없으면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시합에서 운의 작용으로 우승을 놓치거나 결정적인 순간 행운이 작용해서 우승하는 경우가 왕왕 있는 걸 보면 골프에서의 운은 막상막하의 실력을 갖춘 자들끼리 겨룰 때는 영향을 줄 수도 있는 게 현실이다. 
결국, 준비된 자에게 운도 크게 작용할 수 있는데 삶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GJ

 

 

By 김수현 사진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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