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공은 어떻게 발전해 왔나? #History Of Golf Balls?
#골프공은 어떻게 발전해 왔나? #History Of Golf Balls?
  • 나도혜
  • 승인 2020.11.09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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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공부터 솔리드 코어 볼까지 골프 발전과 함께해온 골프볼의 역사 다시 보기.

 

최초의 골프공은 나무 공?

 

최초의 골프공은 무슨 재질로 만들어졌을까? 일반적으로 나무로 만들어졌다는 설이 우세하다. 골프의 원형이 된 ‘공치기 놀이’에서 너도밤나무 같은 단단한 소재로 만들어진 나무 공을 치고 놀았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최초의 골프공이 나무 공이였다고 확언할 수는 없다. 정작 현대골프의 기원으로 인정되는 스코틀랜드 골프에서 나무 공이 사용되었다는 물증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나무 공이 최초의 골프공이라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가죽에 털을 넣어 만든 가죽 공이 최초의 골프공이라는 주장도 있다.

 

페더리 볼의 등장

 

이후 페더리 볼(featherie ball) 의 등장으로 골프공의 역사는 격변을 맞이했다. 페더리 볼의 기원은 확실치 않다. 혹자는 1612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고 주장하고, 혹자는 1700년 이후에 비로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고 주장한다.
확실한 것은 완성된 형태의 페더리 볼이 시장에 등장한 것은 1700년대 이후의 일이며, 시장에 등장한 후 빠르게 업계를 정복했다는 사실이다. 페더리 볼은 물에 젖은 가죽으로 겉면을 만든 뒤 그 속에 물에 젖은 깃털을 가득 채워서 만들었다. 이후 겉면의 가죽이 마르면서 줄어들고, 깃털은 압축되며 줄어드는 가죽을 단단히 잡아주면서 단단한 페더리 볼이 완성되는 구조였다.
페더리 볼을 제대로 만들려면 숙련된 장인의 손길이 필요했고, 따라서 비싸질 수밖에 없었다. 일반적인 제품도 공 하나당 10~20달러의 고가에 팔렸으며 명품은 공 가격이 클럽 가격보다 비쌌다는 기록까지 있다.
하지만 페더리 볼의 성능은 이전까지 쓰이던 나무나 가죽 공을 훨씬 뛰어넘었고, 덕분에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다.

 

구티 볼의 역사

 

페더리 볼 이후에 골프계의 지배자가 된 구티 볼(gutty ball)의 역사는 좀 더 명확하다. 기원에 대해 몇몇 설이 있지만, 성직자이자 골프광이었던 로버트 애덤스 패터슨이 1848년에 발명했다는 설이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구티 볼은 ‘구타페르카’라 불리는 구타나무의 수액을 굳혀 만들었다. 초창기 구티 볼은 페더리볼 보다 성능이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대등한 성능을 자랑하면서도 가격이 훨씬 저렴했다. 수액을 굳혀 만드는 공정 덕분에 구티 볼은 페더리 볼보다 대량 생산이 훨씬 유리했고, 실제로 구티 볼의 가격은 페더리 볼의 5분의 1 정도에 불과했다.
또한, 공이 손상되어도 손쉽게 수리할 수 있었고 수분에도 더 강했다. 압도적인 가성비와 특유의 장점을 바탕으로 구티 볼은 페더리 볼에 이어 골프계의 새로운 지배자가 되었다.
구티 볼은 단순히 한 시대를 지배한 골프공 이상의 의미가 있다. 딤플, 즉 골프공 특유의 올록볼록한 표면 역시 구티 볼에서 시작되었다. 21세기의 골프공 역시 구티 볼에 진 빚이 많은 셈이다. 재미있게도 딤플 구조는 의도적인 발명이 아닌 우연에서 시작되었다. 매끈한 새 공보다 여러 번 클럽에 맞아 표면이 거칠어진 공이 더 멀리 나간다는 사실이 우연히 밝혀졌고, 이에 골프공 제작자들이 일부러 새 공도 울퉁불퉁하게 만들어 비거리를 높였다.
19세기에는 울퉁불퉁하게 만들어진 구티 볼이 가시나무 열매와 닮았다고 하여 ‘브램블(가시나무)’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대량 생산이 가능하고 저렴하며 오늘날까지 널리 쓰이는 딤플 구조까지 처음 도입했다는 점에서 구티 볼은 골프공 역사의 한 전환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

 

뛰어난 성능의 하스켈 볼

 

구티 볼 시대도 영원하지는 않았다. 구티 볼 시대를 끝낸 건 1898년 코번 하스켈이 발명한 하스켈 볼(haskell ball)이다. 작은 고무 심 위에 얇은 고무실을 칭칭 감아 내장재를 만든 뒤 구타페르카로 표면을 씌워 만든 하스켈 볼은 구티 볼을 능가하는 성능을 무기로 빠르게 시장을 장악해나갔다.
하스켈 볼의 뛰어난 성능 때문에 골프가 너무 쉬운 스포츠가 되었다는 비난 여론이 일어날 정도였지만 대세를 막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구티 볼의 시대는 저물고 하스켈 볼이 새로운 지배자가 되었다. 골프공의 울퉁불퉁한 표면인 ‘딤플’이 한 번 더 진화한 것도 하스켈 볼 시대의 일이다. 영국의 윌리엄 테일러가 하스켈 볼에 우묵하고 작은 홈이 보조개 모양으로 고르게 퍼진 ‘테일러 딤플’을 내놓았으며 이는 딤플의 기본이 되었다.

 

솔리드 코어 볼의 등장

 

수십 년간 골프계를 평정한 하스켈 볼의 지배도 영원하지는 않았다. 하스켈 볼의 지배를 끝낸 건 1968년에 등장한 솔리드 코어 볼(solid-core ball)이다. 하스켈의 내장재가 작은 고무심과 고무실로 채워졌다면, 솔리드 코어 볼은 고체 고무를 이용해 내부를 좀 더 밀도 있게 채운 구조로 만들어졌다. 혜성처럼 등장한 솔리드 코어 볼이 하스켈 볼을 시장에서 몰아내는 데는 수십 년의 시간이 걸렸다.
초창기 솔리드 코어 볼은 하스켈 볼과 비교하면 비거리가 월등하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컨트롤과 정확도에 약하다는 단점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솔리드 코어 볼은 단점이 개선되면서 점점 시장을 장악해나가기 시작했고,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가 솔리드 코어 볼을 시장의 지배자로 만들었다. 본래 하스켈 볼을 사용하던 우즈는 솔리드 코어 볼로 장비를 교체한 뒤 US 오픈에서 2위와 15타 차이라는 압도적인 퍼포먼스로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프로들도 앞다퉈 솔리드 코어 볼로 갈아탔으며 이후 프로 무대에서 하스켈 볼은 자취를 감추었다. 100년 동안 골프계를 호령하던 하스켈 볼이 페더리 볼과 구티 볼처럼 역사의 한 페이지로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나무 공, 가죽 공, 페더리 볼, 구티 볼, 하스켈 볼, 그리고 지금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솔리드 코어 볼까지. 이처럼 골프공의 역사는 골프 발전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아마도 솔리드 코어 볼의 지배도 영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기술 발전은 계속될 테고 더욱 성능이 뛰어난 공을 원하는 골퍼의 욕구도 계속 이어질 테니까 말이다.

 

나무 공, 가죽 공, 페더리 볼, 구티 볼, 하스켈 볼, 그리고 지금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솔리드 코어 볼까지. 이처럼 골프공의 역사는 골프 발전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다음엔 어떤 골프볼이 시장을 지배할까?

 

 

GJ 글 나도혜 이미지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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