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J레이더 바비 존스와 월터 하겐의 명승부 뒷 이야기
#GJ레이더 바비 존스와 월터 하겐의 명승부 뒷 이야기
  • 김태연
  • 승인 2019.09.24 11: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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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골프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두 거인

 

바비 존스(중간)와 월터 하겐(오른쪽)

골프저널 대공황의 깊은 수렁으로 빠져 들어가던 1926년 미국! 암울했던 시절이었음에도 골프는 사람들의 위안이 됐다. 동시대를 살았던 미국 골프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두 거인, 바비 존스와 월터 하겐이 프로와 아마추어 골프에서 각각 자기만의 명성을 쌓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풍운아 하겐 VS 겸손한 존스

 

월터 하겐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미국 최초의 프로 선수가 된 33세의 하겐은 단 한 차례라도 돈이 안 걸린 경기는 하지 않는 ‘지독한 프로’라는 평을 받았다. 언제나 실크 재질의 7부 바지와 흑백 수제 골프화를 신고, 시가를 문 채 골프장에 나타나면서 거드름을 피우는 건방진 골프계의 풍운아였다.

반면 남부 조지아 변호사 집안에서 태어난 23세의 존스는 조지아공대와 하버드를 졸업하고 변호사를 개업할 정도의 수재였지만, 늘 겸손했고 사람들에게 친절했다. 같은 시대에 공존했던 두 사람은 결국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도 두 사람의 대결을 원했고, 무엇보다 본인들도 대결을 원했다. 하겐은 ‘존경 받는 존스가 모든 것은 아니다’라는 것을 만방에 알려 ‘프로만이 진정한 골퍼’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했다. 또한 위대한 골퍼라는 칭호가 없음을 목말라했던 가운데 자신이 이긴다면 골프사에 족적을 남길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존스도 골프에 관해서는 동시대에 자신보다 잘 하는 선수를 용납할 수 없었다. 게다가 아마추어여서 돈이 필요했던 그로서는 당대 최고의 프로를 이겼다는 명성을 갖게 되면 겸하고 있던 부동산 판매의 실적을 올릴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존스와 하겐의 세기의 대결

 

바비 존스

고대하던 두 사람의 대결은 1926년 이뤄졌다. 이들은 1926년 2월 28일 플로리다의 화이트필드 골프장에서 하루 36홀 경기를 열고, 일주일 뒤에는 캘리포니아 파사디나에서 2차전 (36홀)을 치르기로 했다.

두 사람 모두 7부 바지를 입고, 하겐은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올빽으로 넘긴 채 넥타이를 메고 나왔다. 말 그대로 세기의 대결이었다.
첫 홀에서 하겐의 드라이버샷이 심한 훅이 나면서 왼쪽 나무숲 바위 속에 처박혔다. 존스는 페어웨이에 볼을 사뿐히 올려놓았다. 하겐의 세컨샷은 용케 빠져 나와 그린 주위 프린지에 붙었다. 버디 의욕이 강했던 존스는 세컨샷이 그린을 오버했고 왔다갔다 하다 보기를 범했다. 가볍게 파를 한 하겐이 첫 홀부터 1업으로 리드했다.
매 홀마다 그런 식이었다. 존스는 하겐을 몰랐다. 존스가 멋있는 페어웨이샷을 하면 하겐은 슬라이스와 훅을 냈다. 잠시 안심을 할라치면 세컨샷을 용케 그린 주변에 보낸 후 어슬렁거리다가 버디를 만들었다. ‘이것이 프로’라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상대방을 교란시키는 하겐의 천부적인 재질 때문에 존스는 갈수록 혼란스러웠다.
12, 13, 15번홀에서 연거푸 버디를 거둔 하겐이 어느새 3업 리드를 지키고 있다. 호숫가에서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존스는 패배의 냄새를 느낄 수 있었다. 7홀 남겨놓고 하겐이 이미 8업으로 앞섰고 존스는 손을 들어야 했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온도차?

 

다음날 신문은 ‘하겐이 69타를 쳤는데 존스는 담배만 69개피 피웠다’고 비아냥거렸다.
1926년 3월 6일 두 번째 대결장인 캘리포니아 패사디나. 존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두 번째 홀에서 존스는 어렵사리 파를 잡았다. 그러나 하겐의 볼은 홀컵에서 15m나 떨어져 있었다. 3퍼트도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퍼팅 라인에 선 하겐은 잠시 고개를 들어 갤러리 중에 백인 아가씨를 보았다. 그 후 윙크와 동시에 퍼팅한 볼은 그대로 홀컵으로 빨려 들어갔다. 존스는 끌려갔고, 하겐은 끌고 갔다.
파 3홀. 존스는 20m 퍼팅을 성공시켜 모처럼 버디를 잡았다. 8m를 남긴 하겐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내가 넣을 것 같은가?”라고 물었다.
존스는 “넣는다면 비기는 홀이겠지”라며 퉁명스럽게 답했다. 이어 하겐은 주저없이 버디를 해버렸다. 말문이 막혔다. 이미 승부는 갈렸다.
이후 11홀을 남겨두고 하겐이 무려 12업이 돼버렸다. 존스의 완패였다. 하겐은 승부사다운 프로 기질을 보여주었고, 존스는 겸허하게 고개를 숙였다.

 

각자의 길을 가다

 

이후 재대결은 없었다. 하겐은 상금 1만달러를 쪼개 5000달러를 병원 기금으로, 나머지 5000달러는 존스에게 줄 커프스 버튼으로 바꿨다. 존스는 “내가 저 커프스를 할 때마다 그날의 패배가 떠오를 것”이라며 하겐이 자신을 두 번 죽이는 것이라고 했다. 각성한 존스는 4년 후인 1930년 인류 최초의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다.
하겐도 1929년 브리티시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등 그 후 두 사람은 각자의 길을 걸어갔다. 하지만 두 사람만의 그 매치 이후, 마스터즈를 개최할 때의 친선 라운드 외에는 어떠한 게임에서도 맞붙지 않았다. Golf Journal

 

 

Credit

김태연 사진 GettyImages

magazine@golfjourna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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