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저널 30년 특집] 1960년~1970년 한국 골프를 돌아보다
[골프저널 30년 특집] 1960년~1970년 한국 골프를 돌아보다
  • 이동훈
  • 승인 2019.03.2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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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8월 창간 기념호

 

[골프저널] 서울에는 전차가 다니고, 사대문 밖에서는 우마차가 짐을 나르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었다.

노란 샤쓰 입은 사나이와 빨간 구두 아가씨, 뜨거운 안녕이란 유행가가 라디오에서 나오던 그 시절.

 

원시시대

 

그 시절 우리나라에도 골프장이 있었다는 것은 놀라움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현재는 ‘시간’과 ‘돈’이 있어야 할 수 있다는 골프에, 그때는 ‘권력’이라는 또 하나의 요소가 전면적으로 삽입됐다. 골프장이라야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열악했던 상황이지만 이때 한국 사회에서 부와 권력의 최상위에 있던 인사들이 화투를 치듯 기생방을 드나들 듯 골프의 재미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70년대 육영수 여사에 의해 어린이대공원으로 탈바꿈한 군자리코스, 또는 능동코스로 불렸던 서울컨트리구락부가 이때만 해도 한국 골프의 요람이었다. 6·25전쟁이후 한때 인근 주민들이 보리를 경작하기도 했던 이 골프장은 원래 이씨 왕가에서 왕실 소유 땅 일부를 하사해 만들어진 특이한 인연으로 태어났고, 구락부 회원들은 여기에 상당한 자부심이 있었다. 수복 이후 우여곡절 끝에 다시 본래의 모습을 되찾은 서울컨트리구락부는 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반에 몇몇 재벌에 의해 골프장이 건설될 때까지 한국 골프의 모든 것을 대변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중정부장 ‘K씨’

 

신사의 운동인 골프, 그때는 어땠을까?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중정부장 자리는 당시 대통령 다음으로 권력 서열 2위, ‘일인지하 만인지상’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지금은 상상조차 못할 엄청난 자리다. 5·16쿠테타이후 군 출신이 전력의 요지를 독점하면서 중정부장을 지낸 K모씨는 유달리 골프에 관심이 많아 골프협회 회장까지 했다.

남산에 연습장까지 만들며 골프에 몰두했던 그는 당시 국내에서 잘하는 프로를 불러 모아 원포인트 레슨을 받는 등 골프에 대한 열의를 불태웠다. 그의 목적은 골프로 권력의 그늘에서 자란 기업가에게 골프 내기로 돈을 뜯는 것. 당시 S자동차의 K모 대표가 가장 큰 희생양이 됐는데 당시 엄청나게 큰돈인 4천만원(이유는 모르나, 백만원짜리 수표 40장)씩을 준비했다. 그래서 그 정도는 돼야 내기 골프 상대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또한 지인들에 의하면 그의 골프 에티켓은 가히 가관이다. 한마디로 골프를 했다고 할 수 없을 정도. 볼을 밥 먹듯이 옮기고, OB 난 볼을 은근슬쩍 아닌 걸로 하고, 플레이하기 어려운 러프 지역이나 스윙이 안 되는 나무 뒤는 페어웨이로 공을 가져다 놓고, 그것도 모자라 캐디에게 공범이 되길 강요했다.
당시는 이런 골프가 만연했다. 내기가 아닌 그저 날강도에게 당한 느낌. 준비해간 돈을 모두 주어야 하니 어지간히 속이 쓰렸을까? 어쩌다 좋은 기회가 와도 놓쳐야 하니 말이다. 그는 이후 권력에서 밀려나 외국 골프장을 전전할 때에도 이때의 버릇을 못 버리고 캐디에게 폭력을 가해 골프장에서 쫓겨나는가 하면 도박 골프로 망신을 당하는 등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이런 사람이 한국 골프의 한 획을 차지하고, 엉뚱한 방법으로 긁어 모은 검은 돈으로 골프대회를 연다. 프로들에게 격려금을 주고, 나름 한국 골프의 발전을 위해 애쓴 흔적이 있기 때문에 진한 역겨움과 함께 아이러니로 남았다.

 

정경유착의 고리

 

6, 70년대 우리나라처럼 권력자의 뜻이 광범위하게 영향력을 미친 나라는 드물다. 완벽하게 일반인으로부터 은폐된 골프장이야말로 권력자와 추종세력의 주 무대였을 것이라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일반인에게 오픈되기 전까지 정경유착의 고리로 이용됐고, 한국 골프의 비극이 시작 됐다. 적어도 6, 70년대 한국 사회에서 골프장의 주인은 재벌과 권력자들이다. 그나마 골프가 대중매체에 오르내리게 된 것은 80년대 중반. 사람들은 골프의 기능을 익혔을 뿐, 실질적인 룰과 매너를 실천할 위치에 있지는 못했다.
7, 80년대를 통해 어느 정도 골프의 모양이 잡힌 우리나라 골프가 여전히 부와 권력지향형의 인간들이 쓸데없는 일로 소일하는 곳이라는 멍에를 벗지 못한 일은 지금도 한국 골프를 조망하는 하나의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과거 한국 사회에서 그동안 부와 권력이 올바르게 쓰이지 못했다는 저변에 깔린 인식과 이 같은 부와 권력이 야합한 장소를 제공했다는 부정적인 시각이 아직도 우세하다.
한국 사회의 오랜 병폐와 잘못된 관행이 대한민국의 눈부신 발전과 묘한 대립을 이룬다.
골프도 마찬가지다. 양적으로 질적으로 엄청난 발전을 이룩했지만, 그 뒤에는 정경유착과 미흡한 에티켓과 매너가 존재하고 있다. 한국 골프의 수준이 한국 사회의 수준이다. 그것을 직시해야 한다.

 

 

Credit

이동훈 자료 골프저널 DB 사진 셔터스톡

magazine@golfjourna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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