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저널 30년 특집] 원조 스마일 퀸 정일미
[골프저널 30년 특집] 원조 스마일 퀸 정일미
  • 김혜경
  • 승인 2019.02.2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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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저널] 골프계에는 서른 살 골프저널과 희로애락을 같이 해온 많은 스타플레이어들이 있다.

그동안 본지에 실린 그들의 성장기, 그들이 걸어온 발자취를 시리즈로 소개한다.
30년 특집 인물편! 제1탄은 고교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낸 후 KLPGA·LPGA 정규 투어를 거쳐
현재 KLPGA 챔피언스(시니어) 투어에서 맹활약중인 정일미.

 

Profile
정일미 (프로골퍼, 호서대 스포츠과학부 골프 전공 전임 교수)
출생 1972년
신체 164cm, 60kg
데뷔 1995년 KLPGA 입회
주요 수상
2015~2018 KLPGA 대상 챔피언스투어 상금왕
2009 하이원리조트컵 SBS 채리티 여자오픈 준우승
2005 LPGA 투어 BMO캐나다여자오픈 3위
2002 제4회 현대증권여자오픈골프대회 우승
2000 KLPGA MVP, 상금왕
1999 KLPGA 대상, 상금왕
1993 한국오픈 우승
 
1989년 9월호에 내일은 스타로 골프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정일미가 처음 소개됐다. 1989년 당시 그녀는 한국아마추어여자골프선수권 2위, 한국주니어골프선수권 종합우승 등다섯 번의 출전 경험과 구력에 비해 뛰어난 성적으로 성장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1989년 9월호에 내일은 스타로 골프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정일미가 처음 소개됐다. 1989년 당시 그녀는 한국아마추어여자골프선수권 2위, 한국주니어골프선수권 종합우승 등다섯 번의 출전 경험과 구력에 비해 뛰어난 성적으로 성장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1989년 열여덟, 백구의 꿈을 좇는 소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던 소녀가 있었다. 주말이면 화판을 들고 산으로 들로 쏘다니며 아름다운 우리의 산야를 닥치는 대로 화폭에 주워 담았다.
그러다 16세 되던 해 아버지를 쫓아간 곳에서 광활한 미지의 세계를 만났다. 지금까지 그려오던 그림보다 더 멋있게 펼쳐진 골프장이었다. 한순간 가슴이 꿈틀했다. 티잉그라운드를 떠나 하늘을 가르며 날아가는 백구는 무한한 꿈을 가져다주었다.
소녀는 본격적으로 골프수업에 임했다. 그러나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골프에만 전념한 나머지 학교 공부에도 지장이 생겼다. 그러나 골프 때문에 그 어느 것도 지장을 받는 것이 싫어 공부도 열심히 했고, 학교 성적도 계속 상위권을 유지했다.

 

존재감을 드러내다

 

그러던 어느 날 골프 선수로서 소녀의 이름이 알려지게 된 계기가 생겼다. 1989년 프라자CC에서 진행된 제3회 한국아마추어여자골프선수권대회에서 원재숙과 치열한 선두다툼 끝에 2위를 차지했다.
‘부산공예고 정일미 선수’ 골프계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름 없는 부산의 한 소녀가 혜성과 같이 나타나 한국 골프계를 뒤흔들어 놓았던 것이다.
한국아마추어여자골프선수권을 도약의 계기로 삼은 소녀는 얼마 뒤 있을 제7회 한국주니어오픈 골프선수권대회 준비를 위해 대회 개최지인 광주CC에서 피나는 훈련을 쌓았다. 그리고 합계 142타의 기록으로 남녀 토털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그동안 핸디캡 12인 아버지 정경한 씨에게 직접 지도를 받아온 소녀는 앞으로 북경아시안게임에 출전해 금메달을 획득하는 게 꿈이며, 프로골퍼로의 진출은 아직 생각지 않고 있다.

 

1997년 스물다섯 웃음 뒤에 숨어있는 외유내강의 정신

 

정일미가 1997년 12월호 표지를 장식했을 뿐만 아니라 스타 프리즘 코너에 그녀와의 인터뷰가 실렸다. 1997년 당시 프로 3년차 정일미는 톰보이여자오픈과 대구매일여자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해 2관왕의 영광을 안았다. 하지만 그녀에게 그 결과는 결코 만족스럽지 못했다. 아깝게 2위에 머무른 경우가 무려 3번이나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있어 1997년은 조금만 더 잘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한해였다
정일미가 1997년 12월호 표지를 장식했을 뿐만 아니라 스타 프리즘 코너에 그녀와의 인터뷰가 실렸다. 1997년 당시 프로 3년차 정일미는 톰보이여자오픈과 대구매일여자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해 2관왕의 영광을 안았다. 하지만 그녀에게 그 결과는 결코 만족스럽지 못했다. 아깝게 2위에 머무른 경우가 무려 3번이나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있어 1997년은 조금만 더 잘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한해였다

항상 방긋 웃는 모습이 예쁜, 프로 3년차 정일미, 그래서 미스 스마일이라 불리는 그녀는 커다란 눈, 둥근 얼굴, 어른들이 보면 영락없이 ‘맏며느릿감’이라고 칭찬할 단아한 외모가 인상적이었다.

그녀가 골프를 하겠다고 할 때만 해도 ‘여자가 무슨 골프냐’는 말을 할 정도로 우리나라의 골프는 대중화 되지 못한 가운데에서도 남성들만의 전유물이었다. 그래서 그녀의 어머니는 남들과 다르게 살아갈 딸의 선택을 탐탁하게 생각지 않았다. 물론 지금은 여느 부모와 마찬가지로 딸을 응원하고 계시지만….
사실 그녀의 꿈은 프로골퍼보다는 골프 지도자가 되는 것이었다. “대학원에 가서 골프에 관한 공부를 더하고, 골프 지도자가 되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어요. 그런데 골프 지도자는 좀 더 나이가 들어서 해도 늦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프로골퍼의 세계를 경험해보고 싶기도 했고요.” 그녀는 젊었을 때 이것저것 여러 가지 경험을 해보는 것이 자신의 인생을 풍요롭게 만드는 방법이라는 생각에서 먼저 프로 선수의 길을 택했다.

 

마음 다스리기는 책으로, 체력단련은 조깅으로

 

“어떤 책에서 골프는 기술은 10%, 정신이 90%라는 글을 봤어요. 그만큼 골프에 있어서 정신이 중요하다는 이야기겠죠. 그리고 경기 중에는 시합이 풀리지 않는다 해서 화를 내지 않고 웃습니다.”
차분해 보이는 외모만큼 무엇인가 한 가지를 꾸준하게 일궈나가고 있는 정일미. 책을 읽으며 멘탈을 다지고 있으며, 매일 같이 평균 40분 정도씩 조깅을 하며 체력 단련을 하고 있다. 시합은 하나하나 열심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그녀는 자신이 치렀던 경기 하나하나 모두 소중하고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정일미는 서두르지 않는다. 그리고 느긋하게 행동하면서 결코 게으르지 않다. 그녀는 앞으로의 계획을 짧게는 이번 달 말부터 떠나게 될 동계훈련에서부터 길게는 내후년의 해외 진출까지 꼼꼼하게 세워놓고 있다. 그녀는 차근차근 실력을 쌓기 위해 노력한다.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꿈을 위해서. 그런 그녀를 보면서 웃음 띤 얼굴 뒷면에 숨어있는 강한 정신을 엿본다.

 

“다른 운동선수들도 마찬가지겠지만 골프 선수 또한 보통 사람들과 다른 생활 패턴 속에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골프는 일상에서 제가 잃고 사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깨닫게 합니다.
18홀의 코스를 도는 동안 인생의 희로애락을 다 겪게 하는가 하면, 자신을 절제할 수 있게 합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아주 잘 알게 해주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골프죠.” - 스물다섯 정일미
 

2019년 마흔 일곱 그녀는 여전히 스마일 퀸

 
‘골프계 원조 국민 여동생 . 원조 스마일 퀸, KLPGA 투어 상금왕, KLPGA 투어 통산 8승, 늦깎이 LPGA 투어 도전자, KLPGA 챔피언스(시니어)투어 프로, 골프 전공 전임 교수, 챔피언스 투어 상금왕!’ 그녀가 걸어온 길을 키워드로 간단히 정리하자면 이렇다.
한 인터뷰에서 그녀는 프로골퍼 출신 교수가 된 것에 대해 “내 슬럼프를 스스로 연구하려다 여기까지 오게 됐다. 30대 초반 LPGA 투어에 도전하면서 약 7년 동안 슬럼프가 찾아왔다. 미국에서 돌아와 쉬고 있는데 용인대 김순희 교수님의 ‘공부를 더 해봐, 그럼 네 슬럼프의 원인도 찾을 수 있을 거야’라는 말을 듣고 공부를 시작했고 그때 나이가 딱 마흔이었다”고 밝혔다.
게다가 대학원 공부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호서대에서 여자 교수가 필요하다고 연락이 왔으니 그녀에게 골프 지도자의 길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재미있는 사실은 1997년 본지와의 인터뷰 중에 “프로 선수의 길을 택하기 전에 골프 지도자를 꿈꿨다”고 언급했다는 점이다.
 
 

챔피언스 투어에서 꿈을 이어가다

 

또한 그녀는 2014년부터 만 42세 이상 선수가 참가할 수 있는 챔피언스 투어에 도전해 데뷔전 우승에 이어 상금랭킹 3위에 올랐고, 이후 2015년부터 2019년까지 4년 연속 상금왕을 차지했다.

하지만 정규 투어 시절 정상급 실력을 자랑하던 그녀가 챔피언스 투어 참가를 결정하기까지는 쉽지만은 않았다. “성적이 좋으면 다행이지만 못하면 자존감이 더욱 떨어질 것 같아 망설였다. 그러나 도전에 의미를 두고 참가를 결심했다. 학생들에게 항상 ‘도전하라’는 말을 하는데, 스스로 행동에 옮기자는 생각이 컸다.”
그리고 박세리에 대해 “박세리 프로는 세계 골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선수인데 그녀가 챔피언스 투어에 참가한다면 시니어 투어가 더 활성화될 것이다. 1부 투어에서 꿈을 이루지 못한 많은 선수들이 다시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할 수 있는 투어로 자리매김하는데 큰 역할을 해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개인적으로 정일미에 대해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지난 연말 KLPGA 대상 시상식에서 “먼저 저희 KLPGA를 이끌어주시는 김상열 회장님께 감사드리고, 원활한 경기 진행을 위해 도와주신 경기위원분들께 감사하다. 올 한해 제가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었던 건 많은 후원사분들의 후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너무 감사하다. 마지막으로 내가 가장 사랑하는 호서대 골프학과 학생들 항상 고맙고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소감을 밝힌 것이다. 그녀의 말에서 골프계 맏언니로서의 배려와 제자들에 대한 사랑이 그대로 전해졌다.
호서대 골프학과 제자들은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물으니 “내가 지도하고 있지만 가르치며 더욱 많이 배우고 있고, 부끄럽지 않은 스승이 되기 위해 더 노력하고 있다. 나에게는 학생들이 정말 소중하고 큰 힘이 된다”고 답했다.
해마다 거리가 조금씩 줄고 있으니 올해는 더욱 숏게임에 중점을 두고 스코어 관리를 하겠다는 그녀의 목표는 퍼팅 랭킹 1위. 올 시즌에 그녀는 챔피언스 투어 5년 연속 상금왕에 도전한다. 
 

챔피언스 투어를 뛰는 선수들은 인생의 챔피언이다. 몸 관리를 잘 해야 하고, 골프에 대한 사랑과 열정도 유지해야 하고, 대회 경비 등을 충당할 경제적 여유도 있어야 한다 - 마흔일곱 정일미

 

 

Credit

김혜경 자료 골프저널 DB, KLPGA

magazine@golfjourna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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