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J인터뷰] 골프의 참맛을 느끼다 백현범
[GJ인터뷰] 골프의 참맛을 느끼다 백현범
  • 김혜경
  • 승인 2019.01.14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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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저널] 인터뷰를 마치고 그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말은 무얼까 고민에 빠졌다.그는 한마디로 단정 지을 수 없는 입체적인 사람이었으니 말이다.그는 보육원생들로 구성된 할렐루야 골프단 출신 투어프로라는 점과 자신이 받았던 도움의 손길에 대한 감사함을 잊지 않는 속 깊은 청년이자, 남다른 방식으로 자식을 키워야했던 아버지를 이해하는 착한 아들이며, 첫 눈에 반한 상대와 만난 지 5년 만에 가정을 꾸린 사랑꾼이었다.최근 들어 골프의 재미와 참맛을 느끼게 되었다는 그의 골프와 인생 이야기를 들여다보자.

Profile백현범● 출생 1989년 10월● 신체 182cm, 78kg● 소속 부산 대신골프프라자● 데뷔 2011년 10월 24일

보육원 생활은 만 10세 때부터 시작됐다. 아버지(백강기 씨)를 따라 1999년 당시 대전에 위치한 아동양육시설 계룡학사에 방문했었는데 그곳에 큰 수영장이 있어서 맘에 들었다. 수영을 워낙 좋아해서 ‘하룻밤만 자고 가야지’라고 생각했는데,  그날이후로 보육원 생활이 시작됐다. 나중에 들으니 아버지는 큰아버지(백성기 목사)가 거기서 골프부를 발족해 보육원생중 골프에 흥미를 가진 아이들을 골프 선수로 키워야겠다는 뜻을 세운 것을 알고 나를 그곳으로 보낸 것이었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아버지 혼자 어린 나를 케어하기 힘들었던 상황도 어느 정도 작용했던 것 같다.
골프 선수 보다는 수영 선수를 꿈꿨다. 어린 마음에 수영장에 홀려 있다 보육원 생활이 시작됐던 것처럼 골프 보다는 수영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지만, 아버지와 큰아버지의 작전(?)에 의해 보육원생들로 구성된 할렐루야 골프단에 합류하게 됐다.큰아버지께서는 골프 유망주였던 딸을 교통사고로 잃으면서 이루지 못한 프로골퍼의 꿈을 보육원 아이들을 지원하며 이루고자 하셨다.
처음엔 골프채가 없어서 달리기로 체력 훈련을 대신했다. 골프채를 흉내낸 쇠파이프를 이용해 스윙 연습을 하고, 골프공이 없어서 바닥에 폐타이어를 놓고 쇠파이프를 휘둘렀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연습을 시작했는데 그때 당시에는 골프가 뭔지도 몰랐고, 체력 단련을 위한 달리기를 할 때에는 마라톤이나 달리기 선수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초등학생의 작은 손으로 두꺼운 쇠파이프를 쥐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었다. 그러다 골프채를 처음 사용하게 된 것은 5학년 무렵이었다.
지나고 보니 그때 고된 훈련이 도움이 된 것 같다. 내 강점 중 하나가 드라이버샷인데, 그때 쇠파이프로 타이어를 치며 체력을 기른 것이 장타를 칠 수 있는 밑바탕이 된 것 같다. 기초 체력, 정신력에 도움이 됐다.
할렐루야 골프단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버겁게 느껴진 적은 없다. 보육원 골프단 출신이라는 점이 싫거나 버겁게 느껴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과거이기 때문이다. 할렐루야 골프단 출신 세미프로는 9∼10명. 투어프로는 3∼4명 정도로 알고 있다.할렐루야 골프단은 지금은 보육원생뿐만 아니라 탈북 청소년과 소년원 출신 학생들에게까지 골프를 전수하고 있다고 들었다. 또한 외국에서도 벤치마킹을 해서 글로벌 선교골프단이 생겼다고 한다.
사실 골프 선수가 되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다. 그저 연습과정이 힘들게만 생각됐던 것 같다. 할렐루야 골프단의 일원이었지만 말이다. 프로골퍼가 되고자 하는 목표가 생긴 건 중학교 3학년 때(2004년) 골프저널 주니어 골프대회에 참가해 남중부 우승을 하게 되면서부터다. 우승의 맛을 알게 되면서 골프의 맛도 조금 알게 되고 구체적인 목표가 생겼다.
 
 
골프저널 주니어대회는 골프의 매력을 알려준 대회다. 그날 날씨가 굉장히 좋지 않아 17번홀에서 한 홀을 남겨놓고 대회가 중단돼 대회 재개를 기다리며 무척 떨렸던 기억이 있다. 2등을 했던 친구는 나와 라이벌 관계였던 걸로 기억된다. 그 시합에서 처음으로 긴장감과 두근거림을 느꼈다. 그 날부터 골프의 매력에 빠지게 됐고, 프로골퍼의  꿈을 가지게 됐다.
고3때는 골프와 담을 쌓고 지내기도 했다. 골프에 대한 흥미를 잃어 한동안 클럽을 들지 않았다. 골프라는 운동에 너무 지쳐있었던 것 같다. 부모나 코치가 도움을 주는 다른 친구들과 달리 혼자서 골프백을 메고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시합장까지 가야했고, ‘내가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사춘기가 좀 늦게 왔던 것 같기도 하다.운동만 하다 보니 또래 친구들처럼 놀 수 있는 시간도 친구도 많지 않았다. 혼자 스트레스를 해소 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컴퓨터 게임이었고, 컴퓨터 게임에 빠져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방황의 시기에 아버지의 조언이 도움이 됐다. 골프가 너무 싫었던 시절이었는데 인생에서 골프가 떼어지지 않았다.아버지도 아들이 방황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답답하고 힘드셨겠지만, ‘니 마음속에 불씨는 끄지 말아라. 골프에 대한 불씨는 살려놓아라’라고 조언을 해주셨다.방황의 시기가 지나니 내가 그나마 잘하는 것이 골프라는 생각이 들어 프로테스트에 도전했다. 아버지의 조언처럼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던 ‘골프에 대한 불씨’를 꺼낸 셈이다.
투어프로가 되기 전 남다른 해프닝이 있었다. 2009년 KPGA 프로(준회원) 자격 취득과 동시에 투어프로(정회원) 선발전 본선까지 올라갔지만 날짜를 잘못 알고 경기에 참가하지 못해 실격 처리가 됐던 뼈아픈 경험이 있다. 그 일을 겪은 후 2010년에 좀 방황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재도전해, 2011년에 투어프로가 되고 퀼리파잉 토너먼트에 응시해 2012년 코리안 투어 시드를 획득했다.
가장 어려웠던 시기는 코리안 투어 루키였던 2012년도다. 주니어시절부터 어렵게 골프를 했지만 심리적으로 가장 어려웠던 시기는 투어프로가 돼 코리안 투어에서 뛰던 그 해였다. 당시 내가 출전할 수 있었던 시합이 4∼5개 정도였는데, 새내기가 실전 경험을 쌓긴 역부족이었다. 루키들이 투어에 적응하고 실력을 쌓을 수 있도록  상금랭킹 60위이내 이외의 선수들이 기량을 키울 수 있는 대회가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2012년도 이야기를 하니 부활 김태원 삼촌이 떠오른다. 차 없이 코리안 투어 대회에 출전하려니 대회장 이동이 너무 힘든 상황이었는데, 김태원 삼촌이 내 사정을 듣고 자동차를 선물해 주셨다.(그는 아버지 백강기 씨가 부활 초기 매니저를 맡았던 인연으로 부활 리더 김태원을 삼촌이라 부르고 있다.)김태원 삼촌이외에도 프로골퍼로 성장하며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나도 어려운 환경에서 골프하는 학생들을 돕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주니어 골퍼들에게 꿈을 크게 가지라고 조언하고 싶다. 돌아보면 KPGA 투어프로(정회원)가 되고 시드를 따는 것까지가 나의 꿈이었던 것 같다. 시드를 획득한 후 코리안 투어 대회에 출전했지만 시합에 집중 할 수 없었다.  이미 내가 세웠던 목표를 이뤘기 때문에 더 나아갈 수가 없었던 것 같다. 경제적인 문제도 있고 투어에만 전념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이어서 결국 다음 해인 2013년부터 레슨으로 전향했다.
처음 골프 레슨을 시작했을 때는 어려움이 많았다. 골프를 칠 줄만 알았지,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내가 몸으로 체득한 것을 이론적으로 설명하기도 쉽지 않았고,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도 어려워하셨던 것 같다.그러나 계속 하다 보니 노하우도 생기고 내가 알고 있는 내용을 쉽게 풀어서 전달하는 것이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혼자 연습 할 때보다 아마추어 골프 레슨을 하게 되면서 골프에 대해 더 생각하고 배울 수 있게 됐다. 지금도 더 쉽게 가르치려고 항상 공부하고 있다.
지금은 부산 대신골프프라자에서 아마추어 골퍼들을 가르치고 있다. 부산에서 활동하게 된 것은 2016년부터다. 당시 여자친구였던 현재의 와이프가 부산으로 이사를 가게 돼 장거리 연애를 하다 무작정 따라 내려오게 됐다. 그리움을 참을 수 없었다.(웃음) 처음에는 타 지역 출신이라 거리를 두시는 분들도 있었지만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가니 부산에 정착할 수 있었다. 지금은 오히려 부산에서 생활하는 게 더 편해졌다. 본인이 어디에 있던 자기하기 나름인 것 같다.
2013년 10월 13일 운명의 상대를 만났다. 길을 건너가다 지금의 아내(박송명)를 만나 용기를 내 고백했다. 그녀의 친구들과 함께 있었는데 아내 주변만 밝게 보였다. 그렇게 강렬하게 인연이 시작됐고 만난 지 5년째 되던 날인 2018년 10월 13일 결혼에 골인했다.
골프저널에 주니어 골퍼들을 위한 장학금을 전달했다. 아버지의 발상이었는데, “골프저널 주니어 골프대회에 현범이 니 이름으로 장학금을 내놓으면 어떻겠니?”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너무 뜻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합을 통해 골프의 맛을 느끼고 프로골퍼의 꿈을 품게 된 내가, 골프 꿈나무를 위해 작은 힘을 보탠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고 뿌듯하다. 나를 시작으로 다른 선수들에게까지 좋은 영향력을 행사해 주니어 골프 활성화에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나라 골프의 미래는 주니어 골퍼들에게 달려있으니 말이다.

 

근래 들어 골프가 다시 재미있어졌다. 작년까지만 해도 투어 출전은 생각도 안 하고 레슨만 했었는데, 다시 투어에 복귀해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지금처럼 지도자의 길을 걸으면서, 코리안 투어에도 재도전하고 싶다. 또 어렵게 골프를 했기 때문에 나처럼 어려운 환경에서 프로선수를 꿈꾸는 아이들이나 단체가 있다면 도움을 주고 싶다. 코리안 투어에서의 선전과 주니어 꿈나무 육성이 궁극적인 꿈이다.  

글 김혜경 사진 김병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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