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공 전쟁 : 타이틀리스트 vs 커클랜드
골프공 전쟁 : 타이틀리스트 vs 커클랜드
  • 이동훈
  • 승인 2018.02.07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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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저널=이동훈 기자, 사진=eBay, 셔터스톡]두 선수가 링 위에 등판한다. 챔피언 벨트를 지키려는 자. 그리고 그 벨트를 뺏으려 하는 자. 미묘한 기류가 흐르는 가운데 마이크가 켜진다. “홍 코너, 골프공 리테일 판매 순위 1위, #1 ball in Golf, Choose the best for your Game 챔피언 아쿠쉬네트의 타이틀리스트(Titleist)”, “청 코너 자본금 13조 거대 유통회사, 직원 수 12만 6천 명, 8개 국가에 627개 매장 보유. 도전자 코스트코의 커클랜드(Kirkland)” 최고의 골프공 브랜드라고 자부하는 디펜딩 챔피언 타이틀리스트와 선도 브랜드의 품질 수준을 충족시키거나 능가한다는 도전자 커클랜드. 만나야 할 상대가 만났다. 1라운드 벨이 울린다. 인파이터 코스트코가 아쿠쉬네트를 링 코너로 몰고 간다. 잽이 날라오는 상황, 가드를 올리고 있던 아쿠쉬네트의 눈이 빛난다.

 

사건의 시작

타이틀리스트의 골프공 PRO V1, PRO V1X가 업계를 평정한 가운데 2016년 코스트코(Costco)에서 하나의 골프공이 출시됐다. 바로 코스트코의 PB상품 브랜드(OEM을 맡긴 업체에 제품 생산을 위탁하면서, 생산된 뒤에는 유통업체의 로고로 내놓는 것) 커클랜드 시그니쳐(Kirkland Signature)의 4피스 우레탄 커버 골프공! 처음에는 많은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저 그런 골프공이라는 생각에 사람들은 그냥 지나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리뷰 사이트들과 언론에서 이 골프공에 대해 다루기 시작하면서 “커클랜드 공이 정교한 제어가 된다”는 한 문장이 쓰나미 못지 않은 영향력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이 정교한 제어가 가능한 공은 하나에 $1.25(한화 1,335원)에 살 수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작용했다. 이 글이 퍼지기 시작하면서 미국 전역의 골퍼들은 코스트코로 달려가서 물건을 사기 시작했고 “이 골프공은 정말 좋다”는 의견과 함께 일종의 품귀 현상까지 일어났다. 이 모습을 본 골프용품 비교 사이트들에서는 아주 재밌는 실험을 하기 시작했다. 바로, 골프공 리테일 판매 1위인 타이틀리스트의 공과 커클랜드의 공의 비교. 과연 1개에 $4(한화 4,274원) 짜리 공과 그 30%의 가격에 살 수 있는 공의 품질 차이가 얼마나 날지 그 부분에 대해서 심층 연구에 들어갔고, 이 부분에서 놀라운 의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타이틀리스트 공 보다 커클랜드 공의 품질이 더 좋다는 것. 물론 이 부분은 미국의 각 연구 업체의 의견일 뿐, 골프저널의 의견은 아니다. 미국의 연구 결과로 “오히려 더 좋았다” 아니면 “똑같았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이때부터 미국 현지에서는 광풍이 불기 시작했다. 미국의 트렌드를 좋아하는 골퍼들이 “T는 이제 끝이다. K로 간다”는 소리를 외치며 코스트코로 달려갔고, 미국 포털사이트 레딧의 골프 포럼에 시시각각 골프공을 구했다는 글이 끊이지 않았고, 그 수가 상당했다. 그리고, 리셀링(가치 있는 제품을 사서 비싼 가격에 내놓는 것)하는 사람들까지 사재기를 시작했다. 이후 미국 전역의 코스트코에서 커클랜드 공이 매진 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골프장에서 커클랜드 로스트볼을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에 골퍼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코스를 도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어 미국 인터넷 오픈 마켓인 eBay에서 커클랜드의 골프공이 4배 가격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1개에 $5(한화 5,340원). 이 금액은 이미 타이틀리스트의 $4를 넘는 금액으로, 이 사태의 심각성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아마 이때쯤 아쿠쉬네트는 위기 의식을 느꼈음이 분명했다. 호랑이에게 날개가 달리면, 지각 변동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사진=타이틀리스트 볼]

도전장을 보낸 아웃파이터 ‘아쿠쉬네트’

아쿠쉬네트에서는 이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던 것 같다. 골프공에 대한 2,577건의 특허를 가진 타이틀리스트에게는 가지고 있는 무기와 생각이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신중에 신중을 가했다. 그 이유는 지금까지의 상대와 달랐기 때문이다. 자사 최대의 싸움이 될 가능성을 본 것이다. 타이틀리스트는 골프공 리테일 및 업계의 넘버 1이지만, 상대는 2017년 브랜드 파워 92위, 포춘 지가 선정하는 세계 브랜드 랭킹 36위(미국 내 16위) 등 브랜드 파워에서 큰 차이가 보인다. 점점 커클랜드 볼에 침식 당할 위기를 느낀 아쿠쉬네트는 소송을 먼저 시작하지 않고, 편지를 보냈다. 그 내용은 11개의 특허를 침해했다는 것이고, 코스트코의 광고문구인 ‘선도 브랜드의 품질 수준을 충족시키거나 능가한다’는 이야기가 자사를 겨냥한 허위광고라는 편지였다. 이 편지는 16년간 골프공 사업을 주도해왔으며, 아쿠쉬네트의 수익 중 30%이상을 기록하고 있는 ‘골프공 사업에 차질이 있을까?’는 마음과 ‘합의를 해서 끝내자’는 마음에서 보낸 것으로 보인다. 이를 보면 전형적인 아웃파이터로 사이드를 돌며 잽으로 응수하는 복서의 모습이다. 하지만 코스트코는 즉각 이 편지가 협박이며, 도전장이라 판단해 반격의 불씨를 지핀다.

소송을 제기한 인파이터 ‘코스트코’

도전장을 받은 코스트코로서는 허무맹랑 하다는 듯 2017년 3월 반격에 들어간다. 시애틀 연방법원으로 보낸 문서를 참고해보면 아쿠쉬네트가 주장하는 부분에 대해 반론을 자세히 서술했다. 특허 침해와 관련된 부분은 딤플이 볼 표면의 80%만 차지한다는 점을 주장했다. 골프공 비교에 대한 부분은 소비자들의 자유이고, 그것이 문제가 되냐는 것이 코스트코의 주장이었다. 그리고, 광고 문구에 대해서는 스포츠용품, 세제 용품, 술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포괄한 광고 문구이지, 골프공만을 위한 문구는 아니라는 점을 지적했다. 결국 코스트코는 시애틀 연방법원에 이 영업행위가 정당했음을 인정해 달라는 내용의 소송을 진행했고, 침해 자체는 무효라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타이틀리스트는 2016년 10개의 골프공 제작 업체와 소송에 들어갔고 거의 합의를 도출했지만, 이번 경우에는 서면을 본 코스트코가 합의 없이 소송으로 시작한 부분이다. 코스트코는 아쿠쉬네트와의 법정 싸움 전에 글로벌 쥬얼리 브랜드인 티파니&코와의 자사 제품인 티파니 브랜드 판매에 대한 소송이 들어간 상황이었다. 이를 보면, 코스트코는 인파이터다. 상대가 도전해온다면, 타협보다는 소송이 먼저인 브랜드라 볼 수 있다. 

 

[사진=커클랜드 볼]

 

미국 전쟁? 아니 한국 전쟁

이 골프공 전쟁 이면에는 재밌는 배경이 있다. 이들의 최근 싸움을 보기 전에 먼저 알아야 하는 사실이다. 타이틀리스트는 골프공 업계에서 알아주는 미국 브랜드지만, 2011년 타이틀리스트의 모기업인 아쿠쉬네트를 휠라 코리아(FILA KOREA)가 한국의 자본과 함께 인수해서 자회사로 편입시킨다. 아쿠쉬네트는 한국의 자본력으로 움직이는 기업이 된 셈이다. 그리고 코스트코 공을 OEM 생산하는 업체는 바로 한국의 낫소(Nassau)이다. 낫소는 1971년 세빙물산 주식회사로 시작한 토종 한국 기업이다. 실제 커클랜드 골프공에도 MADE IN KOREA가 새겨져 있다. 또한 낫소는 커클랜드의 공뿐만 아니라, 테일러메이드(Taylormade)의 모든 골프공을 OEM 생산하고 있을 정도로 기술력이 뛰어나다. 이를 큰 틀에서 이야기하자면, 한국의 뛰어난 골프공 제조 기술 vs 한국 스포츠 업계 큰 손의 자본 싸움으로, 속내를 들여다보니 국내 전쟁 중인 사안이었다. 그러나 이 싸움에 또 다른 이가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사건을 뒤흔드는 자  

낫소에 골프공에 대한 모든 OEM을 맡기는 테일러메이드가 낫소에게 불만을 토로한 것이다. 골프공 제작을 의뢰해온 낫소에서 생산한 코스트코의 커클랜드 골프공이 테일러메이드의 골프공보다 더 좋은 품질이라는 평가와 이슈화된 모습이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그리고 판매 점유율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을 문제로 삼았을 걸로 예측해 본다. 불만이 이슈는 되었지만 자세한 내막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테일러메이드 측은 이 상황에 대해서 논평을 아끼고 있다. 이러한 불만이 접수된 낫소로서는 대 고객인 테일러메이드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낫소는 커클랜드 골프공 생산을 중단하기에 이른다. 낫소 측은 “테일러메이드의 제품을 먼저 만들고 나서 코스트코의 물건을 만든다. 더 이상의 대량 공급은 없을 것”이라고 밝힌 상황이었다. 낫소는 테일러메이드의 손을 들어준 것이나 다름없다. 코스트코는 골프공을 더 받지 못하며, 영업을 못 하는 상황에서 아쿠쉬네트와의 싸움을 이어나갔다. 

아쿠쉬네트의 반격

링 사이드로 몰리던 아쿠쉬네트는 코스트코가 낫소에게 제품을 납품 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됐고, 2017년 8월 284쪽 분량의 문서로 맞고소를 진행했다. 아쿠쉬네트는 284쪽의 소송 자료를 통해 11개의 특허를 침해했다는 것에 대한 입증 자료를 제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코스트코 측의 허위 광고라고 주장하는 “모든 커클랜드 시그니쳐 제품은 업계 선두 브랜드들의 품질 기준에 부합하거나 혹은 능가한다”는 부분에 대해, “타이틀리스트의 PRO V1, PRO V1X는 커클랜드의 볼과 같은 품질이 될 수 없다”며 그 테스트 결과를 같이 첨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로 이러한 결과가 도출되는 시험조차 코스트코에서 진행하지 않았다는 점을 중점적으로 문서화 시킨 부분이다. 아쿠쉬네트 측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서 실험을 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 실험 결과 다양한 스윙 속도에서 비거리가 적게 나왔고, 백스핀양이 적으며, 내구성도 떨어진다는 결과를 도출시켰다고 밝혔다. 사실 이 부분은 골프용품 비교 사이트들과는 다른 결론이었다. 글 초입에 쓴 것처럼 대다수의 비교 사이트들에서는 커클랜드 골프공이 타이틀리스트의 골프공과 비슷하거나 좋다고 밝혔다. 이 부분은 앞으로 법정 싸움에서 ‘어떠한 판결이 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 본다. 아쿠쉬네트에서 코스트코에 소송으로 청구한 사항을 확인해 보면, 특허 침해에 대한 손해 배상 적정금액(이 적정금액에 대한 부분은 알려지지 않았다)의 3배와 커클랜드 골프공 판매 수익의 3배를 제시하며, 배심원에게 이 적정금액에 대한 판단을 원하는 상황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큰 금액을 제시한 아쿠쉬네트와 먼저 소송을 접수한 코스트코의 싸움은 계속 진행 중이다. ‘어느 쪽의 손을 드느냐’에 따라, 주류 골프공의 역사는 바뀔 가능성이 있다. 코스트코가 승소한다면 낫소의 납품이 재개될 수도 있고, 그 힘으로 커클랜드 골프공이 선두주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아쿠쉬네트가 승소한다면 코스트코의 골프공 수익 3배와 침해에 대한 비용 3배 그리고, 업계 점유율을 그대로 지킬 힘이 생긴다. 또한, 거대 유통업체와의 소송에서 승소했다는 색다른 이력도 추가하게 된다. 이 소송의 결과에 따라 “큰 수익을 내느냐? 혹은 못 내느냐?”의 갈림길에 서있다는 부분이 너무나 아이러니하고 재밌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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