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빛낸 클럽챔피언 <연재 ③>
한국을 빛낸 클럽챔피언 <연재 ③>
  • 남길우
  • 승인 2017.05.28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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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빛낸 클럽챔피언 <연재 ③>

 

우승섭

전 JTBC GOLF 해설위원, KGA 경기위원장

클럽챔피언 1세대 (1970년~1989년)

•한국체육대학 강의

•저서 , <타이거 우즈>, <우승섭 골프특강> 전 5권, 수필 다수

  

챔피언 전적

•관악CC(리베라)

   1970년

•한양CC

   1971년

•안양CC

   1972년, 1975년, 1978년

골프를 즐겁게 하는 방법을 배워라

1930년대 미국 모 시인의 골프시에 이런 귀절이 있다. ‘나는 첫째 훌륭한 가장이 됐을 때, 둘째 훌륭한 사회인이 됐을 때, 셋째 회사의 중역이 됐을 때, 비로소 나는 골프를 하러 갔노라’고. 시인이 읊었듯이 이런 조건을 갖춘 후 골프에 입문하고 챔피언이 됐으면 한다. 내가 골프계에 입문한 때가 1963년이니 52년 전이라 까마득한 이야기다. 

초창기 몇 안 남은 골프의 산증인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골퍼라야 전국에 걸쳐 약 350명 정도 되는 것 같았다. 서울 250명, 부산 50명, 제주 50명 정도여서 서로들 잘 알고 있었다. 지방이라도 서울 골퍼들이 주로 내려가기 때문에 어디서든 서로 만나기 마련이었다.

그러니까 전국의 골퍼들을 서로 다 알던 시기였다. 골프장은 물론 심지어는 식당, 술집 등에서도 만나기 일쑤였던 시대였다. 골프는 100을 쳐도 즐거울 줄 알면 된다. 대신 100을 넘기면 남에게 방해가 된다. 100을 깨려면 누구나 열심히 하면 된다. 90을 깨려면 벙커에 들어가지 말아야 한다. 80으로 넘어가려면 우선 3퍼트를 하지 않아야 한다. 어쨌든 노력을 많이 해야 한다. 

어느 날 황인용 아나운서와의 인터뷰 마지막에 “지금까지 골프를 해서 뭘 배웠냐?”고 물었다. “나는 골프를 통해서 인생을 사는 방법을 배운다”고 엉겁결에 대답했다. 다른 인터뷰에서는 “내가 골프를 배우는 건 지금도 철이 들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골프를 시작한 시기와 동기

서울 한가운데 군자리 코스가 자리하고 있을 때였다. 당시 군자리 코스의 담은 가시철망으로 되어 있어 외부에서도 골프하는 모습이 다 보였다. 코스에서 스윙하는 모습이 멋있어서 호기심이 생겨서 시작한 것이 골프다. 그때가 1963년도 한국 골프 초창기다. 내 나이 28살이었으니 꽤 빠른 골프 입문이었다. 골프하는 젊은 또래가 귀했을 때였다. 그 당시 함께 골프를 하던 분들이 신용남, 이병두, 서태윤, 이승호, 연영린, 이헌,이지재 씨 등이다.

골프를 잘하게 된 동기

 

내가 골프를 배울 때는 사람이 없으니까 골프장에 나가면 공이 안보일 때까지 내가 치고 싶으면 쳤다. 당시 골프연습장은 골프장 안에 있었다. 토·일요일 연습공을 많이 치면 월요일은 온몸이 근육통이 심해 돌아눕지도 못하고, 기침도 못하고, 팔이 부어서 세수도 못한 경험도 있다.

그땐 참 열심히 연습했다. 골프를 잘하게 된 것은 그만큼의 연습과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내 공식 베스트 스코어는 안양CC에서 기록한 68타이다. 1978년도인 것 같다.

레슨 책 이야기

한국의 스포츠 문화를 담당해 왔던 스포츠서울에 13년간 골프칼럼 ‘우승섭 골프특강’을 3천 750회 연재해 세계 연재 신기록을 세웠다. 원래 신문사와 1년 계약하고 골프칼럼을 쓰기 시작했는데 쓰다 보니 13년간을 썼다. 그때만 해도 골프교습서가 귀했던 터라 내 골프레슨 칼럼이 인기가 있어 전 국민의 골프교본으로 쓰일 정도였다.

운동선수들은 복사해서 돌려가면서 봤다. 제일 기억에 남는 독자로 전두환 전 대통령과 야구의 양상문 감독이 있다. 지금은 외국서적도 많고 자료들이 많지만 그때만 해도 한국엔 교습서가 귀했다. 예전에 어느 친한 교수가 미국에서 지인과 골프이야기를 하던 중 그가 좋은 책을 소개해 준다기에 보니까 내 책이더란다. 공항에서 사간 

내 책을 보여주더라고 전했다.

나는 글을 쓸 때 3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 내가 쓰는 글은 정확해야 한다. 둘째, 누구나 보니까 쉽게 써야 한다. 셋째, 재미있게 써야 한다. 그게 목표다. 

무슨 글이든 이 세 가지 원칙이 적용된다. 그래야 자꾸 읽게 된다. 신문 칼럼을 집필할 때는 핸디캡3 정도였는데 프로들에게 자문을 구하지 않았다. 프로들은 어떤 이론 속에서 골프를 배우지 않았고, 다만 열심히 공을 쳐서 숙달시킨 것이라 그랬다. 프로들의 경우 체득한 것을 일반인들이 보는 신문에 연재할 것은 아니고, 다만 자기 나름대로 교습을 하면 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용도 독자들이 전문가가 아니라 일반 아마추어인 점을 감안해서 가장 기본적인 것을 위주로 썼다. 우선 아마추어 골퍼는 공을 똑바로 치는 방법만 알면 되는 것이지 훅이나 슬라이스를 내는 방법을 이야기하면 오히려 혼란스러워서 직구를 치는 방법도 제대로 못 배우게 된다. 아마추어 골퍼에게는 스윙도 단순할수록 좋다는 생각에서다.

골프에서 챔피언은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챔피언이란 한 골프장에서 한 번만 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챔피언에 올랐던 골프장은 그 다음부터는 챔피언전에 출전하지 않았다. 물론 사업상 바쁜 관계도 있었지만 챔피언전을 치르면서 상대방과 적수로 싸우며 나쁜 이미지를 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안양CC의 경우는 클럽 측에서 요구하는 바람에 두 번 더 나가게 됐고, 챔피언전에 나가면 우승을 했다.

내가 생각하는 챔피언은 당시엔 전인적인 골퍼가 돼야 했었다. 지금은 공만 잘 치면 사회적으로 타의 모범이 될 수 없는 사람이 챔피언이 되는 경우가 있다.

아마추어 골퍼는 즐거운 골프를 해야 한다. 내가 즐겁기 위해선 남을 우선 즐겁게 해줘야 한다. 자신에게는 룰 해석이 엄격하고 남에겐 관대하면 라운드가 즐거워진다.

챔피언이 되려고 하는 골퍼에게 선임자로서 한마디

챔피언을 하고 난 후 나 자신의 책임감이 더욱 느껴졌다. 클럽챔피언이란 타의 모범이 돼야 한다. 진정한 의미의 챔피언은 공만 잘 쳐서 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직장, 사회, 가정에서 모두 모범이 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챔피언전을 대비한 집중 훈련과 방법이 있었는가

특별히 없었다. 평소의 실력으로 나갔다. 하지만 그 당시 필드에 나가면 해가 뜰 때 공을 쳐서 석양이 질 무렵 공이 안 보일 때까지 쳤다. 죽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관악CC 11번홀에서 17번홀로 가로질러 가기도 하고, 비어있는 옆 홀로 공을 쳐서 건너뛰면서 공을 쳐서 18홀에서 홀 아웃을 마쳤다.

그땐 코스에서 그렇게 연습했다. 골퍼들도 귀했고, 앞 홀도 비어 있고, 뒤에는 사람이 없었으니 가능했다. 지금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젊었을 때부터 헬스클럽에서 몸을 다졌다. 골프를 할 때 필요한 몸 단련법 위주의 집중적인 운동을 했다. 하체운동을 많이 하며, 지금도 가끔 방안에서 혼자 하체운동을 한다.

챔피언전에서 라이벌은

내가 가장 라이벌로 여긴 사람은 故서태윤 씨이다. 한양CC(홀매치), 관악CC(스트로크) 클럽챔피언 결승에서 운좋게 서태윤 씨와 붙어서 두 번 다 이겼다. 그리고 이종민, 김해룡, 허광수, 연영린, 이교신, 조용길, 이수남 씨 등이었다.

골프를 해서 무엇을 얻었는가

 

예우할 줄 알고 겸손할 줄 아는 인생을 배웠다. 그래서 존경할만한 연장자와 함께 골프를 하는 게 제일 재미있다. 

윗사람을 대우하는 골프가 좋았다. 그것이 골프를 통해서 철이 드는 것, 인간이 되는 것이다.

내가 공을 칠 때 위아래로 10년 연배와 공을 치라고 배웠다. 그래야 인생이 즐겁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공을 쳐보니까 20년 정도 차이의 연배와 공을 쳐야 인생이 즐거워진다고 생각된다. 옛날 인생 70일 때는 10년이지만 지금은 80∼90으로 수명이 길어졌는데 20년은 돼야 할 것 같다. 그래야 선배도 이해할 줄 알고, 젊은 후배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20년 전후면 40년의 폭이다. 골프를 하면서 40년의 생활문화 속에 같이 산다. 이것은 골프이기에 가능하다.

에피소드

안양CC 회원으로 들어가기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라고 힘들 때 나는 35살에 회원으로 들어갔다. 특히, 안양CC는 40세 미만은 회원으로 가입 안 된다는 원칙이 있었기에 연령으로도 자격이 없었다.

회원가입서를 낼 때 보증인 두 사람을 세워야 했다. 머리를 썼다. 한사람은 민복기 법무부장관과 다른 한사람은 홍진기 중앙일보 회장을 보증인으로 세웠다.

이병철 회장이 직접 점검했다. 내가 일단 연령으로 안 맞아 제쳐 놓았는데 보증인을 보니까 사돈과 거절 못할 민 장관이라 그분들에게 물어 보니 “미스터 우가 젊긴 해도 괜찮다”는 평가를 듣고 면접을 봤다는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된 내용이다.

향후 어떤 골프를 하고 싶나

 

좋은 분들과 함께 오랫동안 건강하게 골프를 즐기고 싶다. 스코어에 연연하지 않고 부담없이 편안하게 즐거운 골프를 하는 것이다.

이기는 골프만 하려면 상대가 다 적이 되어야 한다. 내 돈 내고, 내 시간 들이는데 결말이 나쁘게 되는 것을 왜 하나. 즐기는 골프를 하고 싶다.

한국 골프가 발전하려면

한국 골프에서 오케이(기브)라는 것이 없었으면 좋겠다. 오케이라는 것은 골프장 진행을 원활하게 돌아가게 만든 제도인데 그건 없는 게 좋다. 가장 룰을 안 지키는 나라가 우리나라다. 그리고 골프선수가 되려는 청소년들에게 부모가 다그치면 안 된다. 아이들은 임시로 혼나지 않으려고 속이는 법만 배운다. 대한민국 골프는 ‘속이는 법을 잘 알아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래서는 생명이 길지 못하다.

골프 팁

골프를 즐겁게 하는 방법을 배워라. 내가 아니라 먼저 남을 즐겁게 하는 법을 배워라. 룰과 에티켓을 잘 지키는 게 방법이다. 

그리고 기본적인 팁이 있어야 한다. 페어웨이를 향해서 곧바로 치는 것을 배워야 한다. 거리가 어떻든 휘는 공이 어떻든 가장 기본적인 스트레이트 구질을 배우는 게 기본이다.

위의 모든 내용은 골프저널 단행본 '챔피언 그들은 누구인가?'에 수록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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