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빛낸 클럽챔피언 <연재 ①>
한국을 빛낸 클럽챔피언 <연재 ①>
  • 남길우
  • 승인 2017.02.19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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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빛낸 클럽챔피언 <연재 ①>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날 회장

대한골프협회 회장

클럽챔피언 1세대 (1970년~1989년)

•한국오픈 베스트아마(1969)

•신한동해오픈 베스트아마

•홀인원 2회, 5홀 연속 버디

챔피언 전적

•남서울CC

1978년, 1982년, 1983년

챔피언이란 아마추어 골프의 최고 정점에 도달하는 것

한국 클럽챔피언 1세대는 1930~1940년대 중반 장병량, 서정식, 김흥조로 이어진다.

한국 골프의 맥을 잡고 있는 서울컨트리클럽이 6.25전쟁이 끝난 후 1955년 김흥조의 클럽챔피언을 첫 우승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 이전의 기록은 무시한 채 말이다. 본지가 발간한 단행본 「챔피언 그들은 누구인가」에서는 클럽챔피언 100인 선정위원회를 통해 선정된 100명의 현역 클럽챔피언에 한해서 세대를 3세대로 구분해서 묶었다. 1970년에서 1989년까지를 1세대라 정하고, 1990년부터 1999년까지는 2세대, 2000년부터 2014년까지는 3세대로 구분해서 원고를 실었다. 100명 중에 최초의 챔피언 기록은 1970년 관악CC 우승섭 챔피언이다. 편의상 나이와 구력과는 상관없이 최초의 클럽챔피언 타이틀 획득을 기점으로 세대를 구분했다.

클럽챔피언 1세대·2세대·3세대 주요 인물들을 본지 특별 연재를 통해 소개한다. 첫 연재에서 소개할 챔피언은 허광수 대한골프협회 회장이다.

 

1974년 한국아마추어골프선수권대회 우승 당시

유유자적하는 골퍼들의 모습을 보고 처음에 골프는 힘이 없는 사람이 즐기는 운동인 줄 알았다. 당시만 하더라도 한참 젊었을 때고, 과격한 운동인 아이스하키를 했던 입장에서 보니 더욱 그렇게 보였다. 골프를 우습게 본 것이다. 하지만 골프의 진정한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최소한 10년에서 15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단기간에 싱글이 됐더라도 골프를 이해하는 데는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 골프나 아이스하키는 채와 스틱을 휘두른다는 공통점이 있어 어렵지 않게 골프에 접목됐다. 중요한 것은 내가 정말 골프에 타고난 재능이 있다고 판단했으면 프로골퍼를 했을 수도 있지만 그게 아니었다. 세계적인 선수가 될 재능이 없다는 판단이었다. 부친이 1970년에 남서울컨트리클럽을 만들고나서 클럽챔피언전을 만들었다. 3연패를 하면 ‘진정한 챔피언’이라고 창안하고 챔피언컵을 가져가게 했다. 그때 이종민 씨와 국정본 씨 등이 3연패를 노리고 나왔을 때, 내가 교만했는지는 모르지만 ‘진정한 챔피언은 나를 이겨야 한다’는 자부심으로 방어전에 나갔던 것 같다. 아버지는 국내 3대 골프협회장을 지내고 남서울골프장을 만들며, 해외 골프단체장을 역임하시는 등 워낙 골프를 좋아하셨다. 그래서 한국골프의 파이를 키우신 뜻을 기념할 일이 뭔가 고민했다. 고인의 뜻을 기리는 제일 좋은 방법 중의 하나로 부친이 정말 좋아하고 사랑한 골프를 위해서 무얼하면 좋을 지 협회 직원들과 의논하다가 메인 타이틀 대회인 한국아마추어골프선수권대회를 여는 게 좋을 것 같아 형제들과 의논 후 허정구배를 도네이션 했고, 또 주니어 선수권배도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나의 골프는 이렇게 시작했다

혜화초등학교를 다닐 때 성균관대 부근의 운동장에서 드라이버 연습을 하셨던 부친의 공을 티에 놓아드리고 친 공을 주워 모으면서 골프에 대한 감각이 싹트기 시작한 듯하다.

내가 골프를 하기 시작했을 때는 골프연습장 시설이 거의 없었고, 그 당시엔 서울컨트리클럽의 전신인 군자리코스 뿐이었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계동 사옥은 그 당시 양옥집으로 집안에 미니 골프연습장을 만들어놓고 공을 치기 시작했다.

만능 스포츠맨이셨던 부친의 영향으로 나는 일찍 부터 스케이트를 배웠고, 중학교시절부터 아이스하키 선수로 이름을 날렸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부친이 쓰시던 골프채를 물려받아 골프를 조금씩 시작했다. 그러다가 대학 2학년때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경기에서 크게 다치는 바람에 결국 아이스하키를 포기하고 골프에 본격적으로 매달려 클럽을 잡은 지 1년 만에 핸디캡 7을 기록했다.

부친을 따라 군자리코스에 처음 나갔다. 처음 골프코스를 둘러보니 모두가 설렁 설렁 걸어서 다니는 모습을 보고 ‘뭘 저런 것을 치느냐’며 골프를 우습게 봤다. 유유자적하는 골퍼들의 모습을 볼 땐 골프는 힘이 없는 사람이 치는 줄 알았다. 당시만 하더라도 한참 젊었을 때고 과격한 운동인 아이스하키를 했던 입장에서 보니 더욱 그렇게 보였다.

내 골프 인생의 스승이자 삶에 큰 영향을 준 아버지! 나의 골프사를 말한다면 근 60여년에 이르지만 골프를 지극히 사랑하셨고 한국 골프계를 위해 힘썼던 부친의 골프 인생에 비한다면 참 미미한 것들이다. 나의 골프는 부친의 자랑스러운 골프 인생의 후광에 힘입어 시작된 것이다. 골프를 함께 하면서 아버지와 친하게 됐다. 인생의 동반자이자 자상한 선배셨고 진정한 친구같이 지낼 수 있었던 행운을 나는 가졌던 것 같다. 특히, 골프 인생에 있어서는 스승이자 내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친 분이다.

프로골퍼의 길을 접고 사업을 선택하다

3형제중 막내였던 나, 두 형은 착실히 공부를 잘하니 어릴 적부터 운동을 좋아해왔던 나에게 프로골퍼의 길을 가는 게 어떠냐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난다.

부친으로서는 우리나라에 국제적인 대선수가 없음을 늘 아쉬워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내 실력을 약간 과대평가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나 역시도 골프를 워낙 좋아해서 프로골퍼를 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가졌지만, 당시 국내 프로골프 상황이 여의치 못하다는 판단을 하고 내 스스로 프로골퍼로의 길을 접었다.

1960년대 초기라 한국은 골프 불모지고 잘 쳐봐야 일천한 골프 역사에서 프로골퍼로서의 대접도 못 받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업을 하는 집안이라 자연히 사업으로 기울어지게 됐다. 내가 정말 골프에 타고난 재능이 있다고 판단했으면 프로골퍼를 했을 수도 있지만 그게 아니었다. 스스로 생각할 때 세계적인 선수가 될 재능이 없다는 판단이었다.

지금도 나는 아마추어골퍼로서 싱글핸디캐퍼로 골프를 즐기고 있고, 나름대로 사업가로서의 꿈도 만족하게 이루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때의 결정에 대해 후회는 없다.

 

1969년 제12회 한국오픈골프선수권대회에서

챔피언전에 나가게 된 동기

이왕 골프를 했고 나름대로 공을 잘 쳤으니까 부친을 비롯해서 주변에서도 챔피언전에 한 번 나가보라고 권했다. 처음에는 챔피언전에 나가기가 좀 꺼려졌다. 남서울CC의 경우 골프장 오너의 아들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전국 아마추어골프대회에서 우승한 사람이 클럽챔피언전에 나간다면 비판을 받을 거라 생각했다.

부친이 1970년에 남서울CC를 만들고 나서 클럽챔피언전을 만드셨다. 그런데 3연패를 하면 ‘진정한 챔피언’이라고 창안하고 챔피언컵을 가져가게 했다. 그때 이종민 씨와 국정본 씨 등이 3연패를 노리고 나왔을 때, 내가 교만했는지는 모르지만 ‘진정한 챔피언은 나를 이겨야 한다’는 자부심으로 타이틀 방어전에 나갔던 것 같다. 운이 좋았다.

골프에서 챔피언은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챔피언이란 그 분야에서 나름대로 최고의 정점에 도달하는 것이다. 모든 스포츠는 시작을 하고 정진하다 보면 최고의 정점에 서 보고 싶은 것이 스포츠맨의 기본적인 욕망이다. 챔피언이란 그 부분에서 최고가 되어본다는 것이니까 꿈이 될 수도 있다. 사업도 그렇고 학문도 그렇지 않은가? 그 부분에서 최고가 되고 싶은 것으로 이해를 하면 될 것 같다.

챔피언을 하고 난 뒤의 변화

챔피언이 되면 여유가 좀 생기는 것 같다. 챔피언이 되니까 내가 실수를 하더라도 실수를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주어졌다. 챔피언이라 해서 항상 잘 칠 수는 없으니깐 말이다. 하지만 챔피언이 되기 전에는 골프가 잘 안되면 ‘실력이 부족해서 그런가?’하고, 다급해지고 모든게 실력이 안돼서 실수를 한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챔피언이 되고 나서는 항상 챔피언이 돼야 하는 법도 아니고, 누구든 실수도 할 수 있는 거라는 생각에서 마음이 느긋해진다. 지닌 자의 여유랄까? 차원이 다르다. 챔피언을 한 번 했다고 해서 골프를 항상 잘 치란 법은 없다. 마음의 폭을 넓혀야 한다. 너무 빡빡하게 자신을 몰아붙이니까 스트레스가 느는 것이다.

챔피언이 되려면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하나

우선은 연습을 많이 해야 한다. 재능이 있어야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근성도 있어야 가능하다.

한 시대를 풍미하는 타이거 우즈나 비제이 싱, 그리고 우리나라의 최경주 등을 보라. 물론 타고난 재능도 갖추고 있는 선수들인데다 얼마나 열심히 연습을 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들만큼 열심히 연습하는 골퍼가 없고, 그들만큼 재능이 있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그러니까 이중 한 가지만 가져서는 안 되고, 운도 따르고 근성도 있어야 한다.

 

2009년 노무라컵 제24회 아시아태평양 아마추어골프대회

골프를 해서 무엇을 얻었는가

많은 친구를 사귀게 됐다. 특히, 미국 유학시절 골프로 외국인들과 사귈 수 있는 매개체가 됐다. 골프는 사업이나 인생살이에서 많은 도움을 준 스포츠이다. 다만, 사업을 하면서 골프에 너무 심취하면 사업을 등한시 할 수 있다. 사업을 잘 하다가 너무 골프에만 심취해서 사업이나 전문업을 등한시한 사람이 주변에 많다.

처음에는 여유가 있어서 골프를 시작했겠지만 자기 본업을 두고 골프에만 기울어지는 것이 문제다. 사업을 한다든지, 전문직에 종사한다든지, 학문을 하는 사람이 본업을 등한시 하고, 골프가 주가 돼버리면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골프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인생과 비교를 하고 싶다. 살아가는데 어려울 경우 그를 극복하고 인내하면서 기회를 찾아내고 인생길을 가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골프를 잘못하면 본업을 망치지만, 잘만 활용하면 자기 본업을 더 키우고 삶을 더 값지게 살아가게 하는 그런 스포츠이다. 또한 아무리 해도 마스터하기 힘든 게 골프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도 즐길 수 있는 유산소운동으로 건강을 위해서도 좋은 최고의 스포츠이다.

에피소드 하나

한국오픈에 초청돼 왔던 로리 맥길로이와 함께 대회 관계자들이 공을 친 적이 있다. 그는 라운드를 마치고 관계자들과 저녁을 먹고 난 뒤 볼일이 있다고 일찍 자리를 떴다. 당연히 내일 본 경기를 위해 쉬러가는 줄 알았다.

대회 관계자들이 모여있던 텐트 틈 사이로 보이는 퍼터 연습장이 있었다. 그 곳에서 맥길로이가 날씨가 싸늘한데도 벙커와 퍼트 연습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때 어떤 충격이 왔다. 세계적인 선수가 라운드를 끝내고 쉬지 않고 연습을 하는 모습을 보니까 잘 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뛰어난 선수들은 뭔가 달라도 다르다는 생각이다. 그런 점을 본받아야 할 것 같다.

 

2012년 아시아퍼시픽 파나소닉오픈 시상식에서

골프 팁

자기 몸에 맞는 스윙을 개발해야 한다. 프로들은 남이 볼 때 멋진 스윙을 가져야 하고, 계속해서 매일 반복적으로 하기 때문에 좋은 스윙을 처음부터 끝가지 구사할 수밖에 없다.

프로처럼 연습을 많이 못하는 아마추어골퍼의 경우에도 한 달을 안 치고 필드에 나가도 자기 스코어의 3타 내외 이상 벗어나면 곤란하다. 그런 스윙을 개발해야 한다. 한 달에 한 번 치더라도 금방 몇 번만 연습해 보면 살아날 수 있는 간편한 스윙을 정해서 내 몸에 맞게 강화시키는게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한다. 괜히 프로의 스윙이 멋지다고 해서 그 스윙을 답습하다보면 스윙이 어긋나기 쉽다.

모든 내용은 2014년 12월까지 기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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